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수 Oct 29. 2024

계세요?

아들 입에서 구린내가 났다. 

그걸 의식한 듯 내가 안고 있는 동안 아들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좀 씻어야겠다고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선 나는 또 아들 눈치를 살폈다. 2월에 집에 들어온 이후로 딱 한번 자른 머리는 이제 더벅머리가 되었다. 까칠한 얼굴과 기름기를 머금은 머릿결, 시큼한 체취가 풍겼다. 작년 가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헤맬 때, 우연히 집 앞에서 만났을 때, 그런 일이 마치 기적 같아서 나도 모르게 와락 껴안았을 때 맡았던 냄새였다. 


다시는 그때의 너로 돌아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어쩌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말을 하고 말았다. 아들이 나를 밀쳐냈다. 그리고 제 방 대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려했다. 나는 문을 잠그면 참지 않을거라는 듯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쇼파에 앉아서 텔레비젼을 보며 마시던 커피를 마셨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커피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문을 잠갔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태연하게 기다리면서 평소보다 느리게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싱크대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안방 문을 열었다. 잠그지 않았다. 

대신 화장실 문이 잠겨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캄캄한 곳에서 또 무슨 생각에 빠졌을까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노크를 하고 불을 켰다.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연거푸 두번이나 노크를 했을 때 옷장 문이 웃음소리와 함께 열렸다. 내가 아들 손아귀에서 놀고 있는 한심한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감정까지 읽어낸다. 자기가 어떻게 행동했을 때 내가 동요한다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어떨 때 행복해 한다는 것도. 나는 너무 쉽게 아들 행동 하나에 동요되어 버린다. 그게 나의 약점인 걸 아들은 알고 있다. 그런 장난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이 그런 장난을 칠 정도로 기분이 좋다는 건 안심이었다. 

참을성은 거의 없고 모든 걸 자기 감정 위주로만 생각하는 아들, 겁 많고 비겁하고 나약한 아들, 이젠 아들이 어떤 아이인지조차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결과물을 보는 기분, 그게 마치 나라는 기분, 내 지나온 삶이 그렇다는 기분,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기분, 아들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서 자유롭지 못한가보다. 아들 행동에 늘 전전긍긍하나보다. 


저녁에 퇴근하면서 치킨을 샀다. 단지 아들이 치킨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면서 한숨이 나왔다. 집에 올라가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상한 기대감과 걱정스러움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치 전투장에 출전하는 기분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자포자기하는 마음이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천천히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텔레비젼이 켜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치킨을 내려놓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끊임없이 동요하는 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나는 지금 차분한 마음 상태라는 걸 아들이 느끼게 하기 위해서.


계세요? 계세요? 


쇼파에서 아들 머리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하회탈 같은 익살스럽지만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표정으로 아들이 나를 봤다. 멋쩍은 마음이라는 걸 알지만 괴로웠다. 치킨을 탁자에 내려놓고 스물 여덟 아들을 꼭 껴안았다. 아침과는 달라진 옷차림, 달라진 머리, 아들이 씼었다는 걸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또 희망을 꿈꾸며 아들을 안고 또 안았다. 오늘 나는 얼만큼 나를 내려놨을까. 조금은 편한 저녁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