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대화가 즐거운 이유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만삭 때 마지막으로 만났는데 벌써 출산한 지 80일이 되었다며 잠시 은행 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출산과 육아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아니, 쏟아졌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아기가 어릴 때는 하루종일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기회가 생기면 신이 나서 이야기를 쏟아내게 되기 때문이다. 새삼 숭이가 이만큼 커서 나의 말벗이 되었다는 게 기적적으로 느껴졌다.
숭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내 배에서 나온 이 생명체가 너무 작고 소중해서 좋은 말만 한단어 한단어 골라서 들려주었다. 마치 아끼는 꽃에게 물을 주듯 말이다. 이때 아이에게 한 말은 메시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랑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나와 눈을 맞추고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더 내용이 담긴 말을 해주었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어느새 나는 엄마 미소를 지으며 ”그래쪄? 맛이쪄요~?“ 하는 혀짧은 엄마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아이는 점점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의사표현을 해주었다. 응, 아니, 좋아, 싫어 같은 짧은 말을 시작으로 그 작은 입에서 새로운 단어가 나올 때마다 얼마나 신기하고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자기 자신을 '아꿍이'라고 부르던 숭이는 자기만의 단어를 만들어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 나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렇게 나의 언어를 바탕으로 한 숭이의 언어는 본인만 아는 수준에서 엄마인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을 거쳐 보통의 한국어 사용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만의 생각과 이야기로 나의 세계를 더욱 다채롭고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옛날에는 조개를 화폐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그런데 화폐로 사용한 게 조갯살이야, 조개 껍데기야?" 라는 물음으로 단조롭던 나의 아침에 활력을 주는 식이다.
자기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아이의 말에는 힘이 있다.
다른 속뜻이 전혀 없는 사랑 고백이나 위로의 말에 치유받는다.
이것만은 지켰으면 하는 가치관이 담긴 말에 나까지 더 단단해진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무신경하게 넘어가려던 나의 행동을 콕 집는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이에게 가닿아 돌아온 말이 나에게 와닿는다.
친구가 외로운 신생아 시기를 지나 어서 이런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와 닮은, 그러나 더 놀라운 존재와의 대화에서 발견한 것들을 공유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