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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거 Jul 18. 2024

아버지는 개띠이다.

젓가락 마스터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나의 가난한 가정은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남들은 6살, 10살 등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한다는데 '그게 뭐람' 나는 예전 기억들이 흐릿할 뿐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본다.


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었다. (지금 형제들과 이야기할 때는 분노조절장애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당시에는 그런 용어가 없었다. 요새는 무언가 잘못된 상황이 되면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잘 나오는 그 말, 진짜는 우리 집에 오래전부터 살고 있다.)

그의 거친 탱자나무(고등학생까지 부서진 담벼락 한 곳엔 이 나무가 벽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었음) 같은 말들은 집안 곳곳에 메아리치며 어둠을 드리웠고, 그 분위기는 그의 기분에 따라 춤을 추듯 변했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 주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언제나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슬은 그녀의 깊은 슬픔과 상처를 드러내는 유일한 창구였을 거라 생각한다.


Pixabay_ ymyphoto


집은 2채가 있었는데 무너져 가는 초가집과 시멘트로 대충 바른 2칸짜리 작은 집이었다. (이걸 집으로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컨테이너 박스가 더 나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물론 당연히 화장실은 밖에 있었고,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나는 초가집에 호박 같은 등불이 좋았다. 작은 마루 바닥에서 그 불에 의지해서 책을 읽고 공부했다. 그곳은 나의 작은 피난처였고, 세상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주말의 점심식사로 기억한다.

평소에 집안일, 농사일에 바쁜 어머니는 항상 따스한 밥과 국을 우리에게 해주셨다.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볶음으로 기억한다. 빨간색 돼지고기 볶음에 집 된장으로 끓은 맛있는 된장찌개!! 최고의 조합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반찬 투정을 한다. 그 개 같은 사람이,  8살짜리도 안 하는 반찬 투정을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투정이 아니다. 개가 다른 개와 싸우기 위해서 짖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시끄럽고 소름이 끼친다.


반찬 투정을 빙자한 욕지거리가 한차례 휘몰아친 후 무엇으로 투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밥상은 태풍 뒤에 오히려 죽은 듯 조용해지듯 우리도 그러했다. 나는 싫은 표정을 내면서도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 다급하게 젓가락질을 하며 허겁지겁 고기를 먹었다. (막내인 나는 항상 누나와 형에게 경쟁의식이라도 느끼는지 급하게 식사를 하곤 했다.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고, 그 이유를 지금 생각해 보면 개랑은 같이 밥을 오랫동안 먹기 싫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때였다. "저 병신 같은 새끼 젓가락질 하는 거 봐!" "여태 안 가르치고 뭐 했어!!! 어!"라는 말이 다 나오기 전에 젓가락이 날라 왔고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살짝 젖혔는데 내 고개가 있던 곳인 가슴에 젓가락이 날아왔다.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네가 가르치지 그랬냐!! 엄마는 새벽부터 농사일에 아침점심저녁 다 해먹이고 빨래 청소까지 다하는데 그럴 시간이 어딨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입에서 맴돌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는 어버버 하고 있었고, 아직도 화가 덜 풀린 그 개는 젓가락질을 잘 못했다는 이유로 화를 내며 자신의 젓가락을 내게 던지고, 국그릇을 바닥에 '쾅'하고 내리쳤다. 모두의 침묵과 당연하듯이 어머니는 그릇을 치우고, 형하고 누나는 밥을 허겁지겁 먹고 뭐라고 쭈뼛하더니 들어갔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젓가락질을 잘해야겠구나,. 그래야 이런 분위기를 안 만들겠구나..라고 어린 마음에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분위기는... 더운 여름에 비는 오지 않고 습도가 너무 높아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그리고 그 땀이 가끔 증발하면서 서늘한.. 그런 더러운 기분이다. 그날 그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온 건 처음이었다. 처음이라서 놀란 것이지, 생각해 보면 공주 집에서 살던 대부분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 개가 떠나고 나서 빨간 돼지고기 볶음을 그래도 나는 꾸역꾸역 먹었다. 엄마가 우리를 생각해서 해준 거니깐.. 그리고 형하고 누나에게 젓가락질을 배우고 두 명의 형제이며, 선생님이며, 친구인 그들의 도움을 받아 2일 만에 완벽하게 연습했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가 나를 젓가락질 마스터로 만들었다. (제기랄..) 그날 일은 흐릿하고 짜디 짜게 기억으로 남았다.




이렇듯 집에서 젓가락질을 마스터하고 그걸 뭔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58년 개띠의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반항기가 가득한 나도....  아비개가 화내고 욕하고 부수지 않고 기분이 좋을 때면 뭔가를 얻어 내려 꼬리를 살랑살랑 치는 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런 자신을 혐오하기도 하였다.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들어선 난 여전히 젓가락질을 참 잘한다. 친구들과 오티에 가서 게임을 할 때 젓가락을 이용해서 쌀 옮기기에서도 1등을 하였을 정도로 잘한다.


하지만 쇠 젓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노라면 그 차갑고 서늘한 감촉은 가끔 어둠 속에서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그릇이 깨지고 젓가락, 숟가락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모습과 함께 칼이 되어 내 왼쪽 심장을 겨눈다.


그리고 조금씩 다가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결국 어둠에 묻혀서 젓가락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 차가움은 나의 붉은 심장을 관통한 뒤이다.



pixabay... 가지 마 내 심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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