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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y 10. 2024

자동차를 예술로, 너무 무겁지 않게

클래식카라는 예술 작품을 잔잔히 음미할 수 있는 곳, 버틀러C 라운지

지금까지 우리가 자동차를 관람하기 위하여 갈 수 있던 장소들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장소로는 자동차 메이커의 영업소나 기획전시관, 연마다 열리는 모터쇼 정도. 더 나아가서 클래식카를 보고 싶을 때에는 갈 수 있던 장소의 폭이 단칸방만큼 훨씬 좁았다. 전국에 몇 없는 자동차 박물관이나 자동차 메이커가 이벤트성으로 기획하여 전시하는 행사 그 외에는 사실상 클래식카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더군다나 따뜻한 커피를 들고 조용한 장소에서 하나의 작품을 보듯 교양 있게 차량을 관람한다?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최근에 다녀온 이곳의 존재가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진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갓 내린 커피와 함께 온전히 클래식카에 빠질 수 있는, 상상 속에서나 그려봤던 일이 가능한 라운지 '버틀러C 라운지'를 소개한다.



이곳은 클래식카 전문 정비업체인 '오일랩'과 어느 전문 건축가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공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기는 '라운지(Lounge)'이다. 단순히 자동차를 보관하거나 전시하는 곳과는 달리 휴식 공간의 의미를 담고 있는 라운지라고 정의한 이유가 무엇일까? 편안한 마음으로 쉬어가듯 자동차를 관람하고, 또 한데 모여 자동차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여기가 어떤 곳인지를 잘 표현하는 문구가 벽 한편에 쓰여있기는 하나, 그것을 굳이 읽지 않더라도 이곳에 들어가기 직전에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실내의 모습을 보면 이곳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벽에 쓰여져 있는 소개 문구


이곳은 시흥 배곧신도시에 위치해 있다. 위치가 약간 애매하다고 느낄 수 있다. 수도권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기에 접근성이 이상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동차 메이커가 구축한 공간을 빼고는 자동차 문화공간 대부분이 지방에 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수도권 안에 자동차 문화 공간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환영할 일이기 때문에 여기도 충분히 좋은 위치라고 본다. 수도권 주민이라면 굳이 하루를 전부 투자하지 않고도 생각날 때마다 방문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장소와 굉장히 잘 어울렸던 커피를 제공한 카페


미리 관람료를 지불하고 관람 예약을 했다면 옆의 카페에서 커피를 교환할 수 있는 교환권을 준다. 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받은 후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도 좋고, 커피를 들고 와서 관람을 하면서 마셔도 좋다. 참고로 나는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했기에 커피 맛에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산뜻한 산미가 있는 깔끔한 맛이어서 꽤 놀랐다. 커피의 향과 맛이 관람에 큰 시너지 효과를 주니 마시면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잔잔한 빗소리와 부드러운 배경음악, 따스한 조명


실내는 꽤 감각 있다. 따뜻한 색감의 조명과 잔잔한 배경음악 덕에 편안한 환경에서 클래식카를 관람할 수 있다. 통유리 창가 전체적으로 하얀색 커튼이 쳐져 있는데 고급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 차분덕에 전시품의 관람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창가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따사로운 햇빛을 맞으며, 혹은 창 너머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차량을 볼 수 있고, 소파와 잡지도 마련되어 있어 그곳에 앉아서 말 그대로 라운지에서 쉬어가듯 차량을 관람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있던 자동차 전시 공간이 다소 딱딱하고 정적인 공간이었던 것과 비교하여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다는 점이 굉장한 장점으로 다가온다. 전시된 차량들은 윈도우가 열려 있어 실내를 볼 수 있다. 선글라스와 하이패스 등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 운행하는 차량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이 차에 타서 저 선글라스를 쓰고 드라이브를 하는 상상을 해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기에 오너들의 소품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점이 오히려 좋은 포인트로 작용한다.



실내를 통해 보이는 소품들


내부를 둘러보면 여기저기에 설명들이 쓰여 있다. 앞서 소개한 이곳을 홍보하는 문구를 포함하여 현재 전시 중인 차량들에 대한 설명, 또 그 차량들의 의의 등이 아크릴판에 쓰여 벽에 붙어 있다. 설명이 너무 장황하지 않고 딱 필요한 작품 관람 포인트 및 정보가 쓰여있어서 읽기에 부담되지 않는다. 재밌는 점은 전시품들에 대한 설명이 크게 두 군데에 나뉘어 쓰여 있다는 점인데, 한 곳에 설명을 길게 써놓지 않고 적절한 위치에 나누어 놓음으로써 읽다가 지루해지거나 몰입이 떨어지는 일 없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차량 옆의 안내판에는 딱 기본적인 제원만 써 있다. 단기통, 저마력 등등의 어찌 보면 하찮을 수치들이 오히려 당시 소형차들만의 개발 방향이나 목적을 잘 보여준다. 과한 tmi가 없더라도 감상에 필요한 설명은 벽에 충분히 써 있으니 차량 옆에 이렇게 간단한 스펙만 써놓은 것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간단한 스펙이 기재된 간결한 안내판


한 켠에는 자동차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니어처들을 전시해 놓으니 눈이 즐겁지만 아쉽게도 여기에 전시된 모형들은 포르쉐들 뿐이다. 좀 더 다양한 차량 모형들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장에 놓여져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각종 브랜드들의 제품들을 전시 및 판매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오일류나 케미컬은 물론이고 디테일링 용품과 작은 스케일의 모형들도 판매하고 있다. 여러 업체의 제품들이 있지는 않고 특정 브랜드들의 제품만 전시되어 있으니 참고하길. 간단한 음료도 판매하고 있다. 계산대가 있는 걸 보니 현장 결제도 가능해 보인다. 공간의 중앙에는 기다란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이곳의 운영 방안 등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는 듯하다.




전시는 수입차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번 전시는 물론이고 이전에 열렸던 두 차례의 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국산차의 부재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필자도 그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러나 자동차 분야 전체적으로 뭔가를 소개하기에는 역사적으로 굵직한 축을 담당했던 전 세계의 차들을 전시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해 보인다. 억지로 국산차를 끼워넣기보다는, 정말 역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차가 있고 그 차량의 역사적 의의가 현재의 전시 목적과 부합하다면 그때 한 대 정도 함께 전시하는 것이 괜찮아 보인다. 아니면 따로 언젠가 국산차만 전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버틀러C 라운지'라는 공간을 만들어낸 그 시도가 너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자동차를 예술로써 교양 있게, 그러면서 너무 진부하거나 무겁지 않게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많은 자동차 애호가들이 아쉬움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이와 같은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 메이커들의 전시는 브랜드 홍보성이나 상업성이 짙었고, 박물관들은 칙칙하고 경직된 공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자동차 애호가들에게조차 이 점들은 하나의 벽이 있는 듯한 거리감으로 다가왔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오죽했을까? 그들에게 있어 자동차 문화는 아예 들여다보기도 싫은, 재미없는, 어렵기만 한 무언가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라운지에서 쉬어가듯 편안히 그러나 너무 무게감 있지는 않게 자동차를 접할 수 있는 이 공간은, 어려운 무언가로만 다가왔던 자동차 문화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전시 중인 차량의 수가 적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지루하지 않았으며, 핵심적인 몇 차량을 엄선해서 전시함으로써 전시의 목적도 더 분명히 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며 커피 한 잔 홀짝이면서 미술품 감상하듯 차를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와서 행복하다. 부담감이 없다는 점, 허들이 높지 않다는 점 때문에 어느 누가 오더라도 만족할 공간이라 생각된다. 주말에 마침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면 이 참에 이곳에 와서 자동차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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