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신불산 칼바위를 오르면서 문득 생각난다. "예전에 지리산 천왕봉도 8~9번이나 올랐었는데…." 중산리, 백무동, 노고단 코스까지 다 섭렵했었는데, 왜 이렇게 힘든 거야? 그때는 산 정상을 정복할 때마다 지구를 지배하는 기분이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신불산 이 작은(?) 산 하나가 나를 작살 내고 있다.
'그래, 이제 40대 중반이라 그런가…'라고 한참 생각하다가 '아참, 그때가 20대였지!' 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젊음이 날개를 달아줬고, 지금은... 날개 대신 무거운 짐들이 달렸나 보다.
신불산 칼바위 미친 경사가 끝난 순간, 드디어 다 온 줄 알았다. "이제 끝났구나, 살았다!"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두 장년 어르신들의 대화.
"이제 정상까지 1킬로 남았네."
... 뭐라고? 정상까지 1킬로? 아니, 나는 지금 생을 마감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 1킬로를 더 가야 한다고?
순간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며 한숨만 나온다. "1킬로가 대체 이렇게 길 수 있나?" 고개를 푹 숙이고 슬며시 다시 산을 향해 발을 옮기는데, 심장이 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와이프를 볼 때보다 더 설렌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