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너무 먼 그대들의 도시에 대하여, 평양냉면
대한민국에서 서울에 태어나지 않은 시골 쥐는 혼란함을 가지고 성장한다.
접하는 모든 미디어는 상세하게 서울을 보여주지만 나는 그 정보에 공감을 하지 못한다. 공감은커녕 이해도 잘 안 된다. 롯데타워니, 여의도 공원이니, 한강이니 아무리 떠들어 봐야 내가 보는 건 동네 하천과 집 앞 공원, 적당히 높은 이름 모를 건물이다. 아주 어릴 적에는 우리 도시의 높은 건물이 63 빌딩인 줄 알았고 시내로 나가는 다리가 올림픽 대교인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서울과 내 도시 무지했다. 다만 자라면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서울을 분리했다. 이제는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서울이 대한민국인 것처럼 보일 때면 그냥 넘어간다. 그래 서울에는 사람이 많잖아. 수도니까. 인구의 사분의 일이 사는 도시가 대한민국이겠지 다른 도시가 대한민국의 대표가 되기는 아무래도 어렵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방 사람으로서 서울은 그저 수도다. (서울의 뜻조차 수도일 뿐이지 않나)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나는 서울보다 해외를 많이 나갔다. 사실 지방 사람이 서울 갈 일은, 서울에만 있는 공공기관 말고는 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은 수도일 뿐 내게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했고, 자라면서는 관심조차 시들어졌다. 나와는 좀 먼 곳일 뿐이었다. 서울은 도쿄, 뉴욕, 파리, 런던 그리고 서울 정도의 대도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앞에서 나열한 도시에서 내가 친밀함을 느끼지 못하는 남들의 도시인 것처럼. 서울 역시 외국 같은 이방인의 도시라는 감상이었다.
내 시선이 바뀐 것은 시답잖은 이유이다. 지난 몇 년간 해외에 나와있으면서 한국에 대한 미디어를 접할 때면 여전히 서울을 보여준다. 이제는 좀 궁금해졌다. 서울에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능력이 되었고, 심지어는 서울에 자리 잡고 살 수 있는 기회도 생겼지만 아직까지 서울에 그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제 성인도 됐고 서울에 가야 할 개인적인 명분도 생긴 김에 이제 내가 미디어로만 경험한 서울을 실제로 체험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자, 한국인으로 우리의 인사는 무엇인가? 밥 먹었어 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애초에 남에게 관심 없는 인간이 유일하게 진심으로 묻고 답하는 것이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저녁으로 무얼 먹을 것인지 궁금해한다. 자연스러운 이치이고 물 흐르듯 묻는 티키타카 같은 것이다. 진성 한국인으로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밥 먹었어를 묻고는 한다. 안부인사를 묻는다. 예를 들면 나의 외할아버지가 늘 그러셨다. 같은 동네에서 살고 같은 교회를 다니고 매일 같이 할아버지의 아파트를 방문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내게 밥 먹었냐고 물으셨다. 그게 대화의 전부였다. 밥 먹었냐? 그 건조한 인사에 나는 넵, 하고 답했다. 그러면 인사는 끝이었다. 더 이상 묻는 건 자연스럽지 못했다. 서로의 약속을 깨지 못한 채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여전히 밥 먹었냐고 누군가에게 물어볼 때면 할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스몰토크에 취약한 나라 출신답게 나는 스몰토크에 약하다. 외국 거주 당시 스몰토크에는 젬병인 주제에 매번 밥 먹었냐고 물었고 뭐 먹었냐고 꽤나 집착적이게 물었다. 하루는 외국인 친구가 그게 왜 궁금하냐고 답해왔다.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일주일 간 점심 먹었어 뭐 먹었어라고 묻는 질문에 파스타 먹었다고 일곱 번이나 같은 답을 하고 나서였다. 아, 그거 그냥 인사야 유 굿/하와유 같은 거야. 그렇게 답하자 그제야 이해했다는 것처럼 아 그래서 그랬나고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한국 친구들과 만나면 다들 밥 먹었냐고 묻는다고. 그게 참 이상하다고 했다. 나라가 잘 산 지 얼마 안 돼서 그렇다고 농담처럼 덧붙이자. 그냥 웃고 만다. 참내, 풍족하게 살아서 이제야 나라 위기라고 말이 오가는 나라 출신이 뭘 알아.
다만 한국인의 식문화가 집착적인 수준이라는 건 멀리 떠나 있으면서 뼈저리게 와닿았다. 우리 조부모 세대는 일제강점기를 끝내고 광복에 걸쳐 태어나고, 전쟁과 국가 부도 위기 등을 겪으며 배고프게 자랐다. 물질의 풍요는 몇십 년 전부터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당신들의 마음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밥 한 끼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괴로워하신다. 그들의 자녀들은 그 트라우마의 아래에 자라나서 여전히 식사에 집착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우리 세대는 전쟁이나 배고픔에서 한참 멀어진 세대이다. 오히려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다만 먹거리의 유행이 들불처럼 번진다. 마라탕, 로제 떡볶이, 흑당 버블티, 탕후루, 요거트 아이스크림, 두바이 초콜릿, 쫀득 쿠키 등 쉽게 유행이 번지고 너무 빨리 가라앉는다. 그 유행 사이에서 우리는 체험의 영역으로 음식을 경험하고, 공급이 넘쳐 음식을 쉽게 버린다. 또한 쌀밥 문화는 여전해서 빵을 먹고도 밥을 먹고, 국물 음식을 먹고도 밥을 먹고, 볶음 요리 후에도 밥을 먹는다. K-디저트에 대해 나의 외국인 친구에게 소개하자 말이 된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그 친구와도 즉석떡볶이를 먹고 밥을 볶아 먹었다. 진정한 케이 문화에 그 친구는 뒤늦게 맞은 혈당스파이크가 제법 만족스러웠던 것인지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아직도 그 한식당 얘기를 한다.
해외 살이를 하고 나서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지금은 한류가 뻗어져 나가서 먼 이방나라까지 영향을 끼치는 시대라 김치, 라면 등의 간편 식품은 일반 마트에서도 구할 수 있다. 새로운 한식당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비빔밥, 떡볶이, 닭갈비 등의 음식은 쉽게 사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공허하다. 비빔밥을 사 먹는다는 건 졸부의 영역이 아닌가. 한국인의 소울은 삼순이 비빔밥에 가깝지 전주비빔밥이 아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정갈하게 호박, 당근, 버섯 등을 볶아서 담아낸 예쁜 모양의 돌솥 비빔밥 만이 나를 반긴다. 한식당에 둘려 쌓여도 공허한 건, 그 음식들이 그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한국인인 나는 소외된다. 그렇게 외국인을 위한 한국 음식에게 배척당한 나는 유튜브로 한국인의 밥상으로 다친 마음을 조금이나 달랜다. MUKBANG으로 분류되는 카테고리는 조금 부담스럽다. 음식들이 너무 거대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이며 그걸 너무 가까이에 있는 얼굴이 와구와구 먹는 걸 보면 비위가 상한다. 소인국을 침범한 걸리버의 식사 시간으로는 상한 마음이 해결되지 않는다. 일박 이일의 강호동 봄동 비빔밥이나 라면, 생로병사의 비밀의 짬뽕 세게 하나, 무한도전의 유재석 마라도 짜장면 정도가 적당하다. 유년시절의 추억과 함께 들어오는 자연스러운 식사를 보고 나서야 좀 채워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밤이면 한국 식당을 리뷰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다가 평양냉면을 마주하게 된다. 걸레 빤 물이라느니, 아리수 물에 국수를 타먹는다는 무시무시한 후기와 평양냉면 광신자들 사이의 간극이 너무 넓어서 도무지 그 음식을 가늠해 볼 수도 없다. 한국에 가면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간단했다. 호불호의 영역은 직접 먹어보기 전까지는 해결이 안 되는 영역이기에 기꺼이 도전해 보겠다는 마음이었다.
평양냉면은 서울음식이란 이미지가 있다. 차가운 도시인들의 대표적인 소울푸드, 평양냉면을 하나의 공식처럼 외워뒀다. 냉면을 식사로 인식하게 된 건 식객 만화책이었다. 전직대통령이 냉면 면을 가위가 아닌 앞니로 끊어 먹던 장면이 강하게 박혔다. 내게 냉면은 고깃집 후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냉면이 식사가 될 수 있나. 내겐 그것부터가 의문이었다. 유튜브에서는 평양냉면 미치광이들을 자주 목격한다. 그들은 평양냉면은 신성시한다. 그들을 보고 있자면 평양냉면이 하나의 종교 같이 보이기도 한다. 지켜야 할 규율도 많다. 첫째, 냉면의 면을 가위로 자르지 않는다. 앞니로 끊어서 먹는다. 둘째, 냉면 육수를 먼저 맛본다. 셋째, 달걀을 먼저 먹어 위를 보호한다. 넷째, 식초 고춧가루 겨자등의 조미료 첨가는 신성 모독에 해당한다. 정확하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취합한 계명은 이 정도가 있다. 음식은 기호의 영역이다. 그런데 개인의 기호는 중요하지 않고 정해진 규칙을 따라먹어야 하며 그 외의 모든 행동은 이단처럼 여겨지는 것은 호들갑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북한과의 교류, 해외에 있는 북한 식당들을 리뷰한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북한에서는 그렇게 먹지 않는다더라의 반박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냉면 사계명 을 철제하게 지키라는 열성분자들은 많이 사라진 듯 보인다. 그러나 추종자가 많은 음식은 경계가 되는 건 사실이다.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이기 때문일까. 성정대로라면 절대 참여하지 않은 리그에 이번에는 참여해 보려고 한다. 타향살이를 하다 보면 무모해지는 법이다. 나이가 먹으며 사람이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평양냉면 하나에 이렇게 비장할 일인가 싶다가도, 지방에서 서울까지 먹으러 가는 길을 생각하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도 이미 결심한 거 해보자.
1. 우래옥(을지로)
내 첫 평양냉면을 어디로 하면 좋을까. 사실 깊은 고민도 없었다. 아, 한국에 도착하면 우래옥에 가봐야겠다.라고 결심한 까닭은 역시 유튜브였다. 유튜브 숏츠를 넘기며 초심자에게도 맛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유튜버의 말을 홀라당 믿었다. 그 후에 알게 된 역사 등은 당신께서 더 잘 아시리라 믿는다. 아무튼 그렇게 즉흥적으로 고른 주제에 가장 오래된 정통의 강호를 맛보는 행운을 얻었다. 이런 게 초심자의 행운이리라. 아무튼 서울에서 개인적인 일을 끝내고 을지로에 있다는 것만 안 채로 지하철을 탔다. 겨울이었고 비도 내리는 날이었다. 서울에 무지한 나는, 아 비도 오니까 사람들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2호선 을지로 4가 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자 식당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앞에 인파에 당황한 것도 잠시, 테이블링 등록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문 앞에 있는 작은 테이블링 기계는 보지 못한 채 무작정 식당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 안에도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직원분 들은 너무 바빠서 멍청하게 홀 한가운데에 서있는 나를 신경 써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다가 안내데스크에 어디서 등록하면 되냐고 물었을 때 문 밖이라는 소리를 듣자 한 발 늦었다는 생각만 났을 뿐이었다. 점심시간은 조금 넘긴 1시 50분경 내가 받은 대기 번호는 191번, 내 앞 대기팀은 28팀이었다. 그렇게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하필 동행자가 있었고, 그 동행자가 웨이팅이라면 학을 테는 우리 아빠였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렇게 우리가 몇 번인지 말하지 않았고, 우리 앞에 몇 팀이 있는 지도 말하지 않고 띵동 울리며 번호가 뜨는 화면만 죽어라 쳐다보고 있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앞에 두고 나는 추위에 떨었다. 그러면서 평양냉면 얼마나 맛있나 두고 봐라 라는 마음이었다. 아침 6시에 나와 2시가 되도록 나는 공복이었다. 당장 웨이팅 하는 사람들을 잡아먹고도 입 쓱 닦고 냉면을 후식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굶주린 상태였다. 약 2시 20분쯤 스크린 화면의 우리의 번호가 떴다. 30분의 기다림 끝에-오래 기다린 건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설마 이게 "얼마 안 기다렸네?" 정도의 웨이팅이었다면..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거죠..?- 따듯하고 북적이는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건물은 밖에서 예상한 것보다 컸고, 오래된 중국음식점 같은 인상을 주었다. 우리는 식사 시간이 지났는데도 북적이는 여러 개의 식탁을 지나 이층 안 쪽에 앉게 되었다. 앉자마자 나는 평양냉면을 먹겠다고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얘기했다. 그러나 아빠는 불고기를 먹을래? 다른 음식도 많은 데 하며 한참이나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내가 불고기는 절대 싫다고 말하자 아빠는 비빔냉면과 육개장을 시켰다. (아빠가 아침을 먹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불고기도 시켰을 거다) 아무튼 우리는 따끈한 면수를 마셨다. 대화는 없었던 것 같다. 대화할 기운도 없이 너무 배고팠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나온 냉면은 너무 간단하게 생겨서 이모티콘으로 만들기 쉬울 것 같이 생겼다. 적당히 갈색빛이 도는 국물에 짙은 색깔을 하고 잘 정돈돼있는 면, 그 위의 잡다한 고명 역시 그다지 식욕을 돋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부정적인 마음과 색안경을 끼고 들이킨 국물의 맛은 "고기"의 맛이었다. 그 육향이 너무 진하지만 역하지는 않은 정도였다. 너무 깔끔한 고기국물이었다. 육수가 너무 맛있어서 감탄이 나왔다.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아 호들갑은 아니었구나"였다. 평양냉면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같이 시킨 비빔냉면과 육개장에 대해서도 감상을 말하자면. 비빔냉면은 비빔냉면 이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 맛이 기억도 안 나는 걸 보면 그냥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육개장은 역시 미친것 같은 고기맛과 벌건 국물에 비해 자극적이지 않아 맛있게 먹었다. 숟가락으로 뜨면 줄줄이 달려 나오는 건더기가 많았다 정도의 감상이다. 이 집은 소에 원수진게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 이렇게 잔인할 정도로 진한 국물 맛이 날 수가 있나. 아무튼 굶고 가서 먹은 거라 약간 편파적일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겠다. 그러나 정말 맛있었고 또 다른 평양냉면을 먹을 의향이 충분히 들었다. 좋은 시작이었다.
2. 진미평양냉면(논현)
두 번째로 간 집은 진미평양냉면이다. 이 집 역시 같은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결정했다. 사실은 이 집의 만두와 제육을 먹고 싶은 마음이 컸다. 육즙 가득한 만두와 제육볶음도 아닌데 제육이라고 불리는 돼지고기 수육을 맛보고 싶었다. (알고 보니 돼지고기를 제육이라고 하고 수육은 소고기를 칭한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우래옥의 충격을 뒤로하고 몇 주 뒤였다. 역시 개인적인 일을 끝나고 12시 반에 강남역에서 진미평양냉면을 지도에 쳐봤다. 지도 내에 성의 없이 찍찍 그어져 있는 직선에 걸어갈만하다고 생각하게 된 건 오산이었다. 내가 지내던 해외의 도시는 유명세에 비해 작아서 늘 걸어 다녔다. 더럽고 좁은 지하철보다는 쾌적하게 걷는 게 여러모로 최선인 곳에 살았던 탓일까. 아직 해외생활 뽕이 빠지지 않은 시골쥐가 뭘 알겠는가. 깊게 생각도 하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다. 카카오맵에서 40분 정도 걸린다고 찍혀있었지만 내비게이션이 뭘 알아 하는 인간의 오만함은 늘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한다.
그렇게 걸으면서 느낀 점은 서울은 보행자에게 다정한 도시가 아니하는 것이었다. 추운 날씨 탓이려니 생각해 봐도 길거리에 사람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평지가 아닌 울퉁불퉁한 언덕길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강남대로를 빠져나오자 현저하게 줄은 인적도 나를 당황시켰다. 그렇게 영하의 날씨에 패딩도 없이 무거운 가방을 손에 들고 하염없이 빌딩 숲을 지나쳤다. 핸드폰은 한국 유심이 없어 불통이었고 다운로드하여 놓은 라디오를 들으며 사람 없는 거리를 걷는 게 좀 비현실적인 경험이었다. 서울은 차가 너무 많다. 사람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엔 길거리엔 나 혼자여서 어불성설이 됐다. 건물도 아파트도 너무 많았다. 너무 과잉의 도시다 서울은.
서울 싫어 사람으로 불평불만을 하다 보니 대로변 건물 사이로 내려가야 찾을 수 있는 진미 평양냉면에 도착했다. 건물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보이는 건물은 별관이었다. 별관 앞에서 알짱거리다가 뒤를 돌면 그제야 본관 건물을 찾을 수 있다. 식당 내에는 역시 사람으로 바글거렸다. 매번 서울의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멍청해지는 걸 피할 수가 없다. 그렇게 멍청하게 서있으면 저 멀리서 종업원 분께서 몇 분이냐고 물어온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 펼친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곳에서 소리 지를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못 된다. 그렇게 나는 구석의 메뉴판 아래 책상에 앉았다. 테이블 사이에 간격은 적당했지만 같은 테이블을 반으로 나눠 따로 앉는 시스템에 옆자리 손님의 소주병이 내 테이블에 올라와 있었다. 바글바글한 식당 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옆 자리 손님들은 어복쟁반에 소주를 까고 있었다. 바글바글 끓는 폭력적인 비주얼의 어복쟁반은 혼자서 먹기에는 비싸고 많았다. 제육 역시 그렇게 먹고 싶다고 생각해 놓고도 양이 많아 시키지 못했다. 혼밥러는 이런 순간에 가장 외로워진다. 그렇게 냉면에 만두 반 접시를 시켰다. 역시 빠르게 냉면이 나온다. 우래옥에 비해 투명한 국물에 파 고명이 둥둥 떠있다. 저번보다 더 간단한 비주얼이다. 계란에 고기 몇 점, 무 채 조금을 올린 냉면은 저번에 비해 하드코어처럼 보였고 좀 더 편견 속의 평양냉면 같은 비주얼이었다. 그렇게 역시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추위에 떨면 40분의 유산소까지 하고 먹은 육수의 맛은 짭짤했다. 고기향이 스치는 짠 국물은 입안에 쩍쩍 달라붙었다. 공복에 먹는 탓에 자꾸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도 있겠지만 맛있었다. 처음 먹은 냉면에 비해 밍밍하다고 느껴지는 맛이었지만 그래도 짭짤한 국물에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고기 육수의 맛은 맛있다고 평하기 적절하다. 냉면을 허겁지겁 먹고 있으면 만두가 느지막하게 나온다 손바닥 만한 만두 3개에 7,000원이라니 무서운 서울 물가다라고 생각하며 만두를 먹었다. 촉촉한 고기만두였다. 커다란 크기에 입 안 가득 차는 만족감과 질질 흐를 정도의 육즙은 좀 비싸지만 꼭 같이 먹어야 할 것 같다는 평을 남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만두를 먼저 먹고 냉면을 먹으면 냉면에서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 무시무시한 악평의 실체는 선만(선만두) 탓은 아닐까?
사실 이 식당은 이후에 한 번 더 방문했다. 웨이팅이 없는 게 큰 장점이다. 동행자와 함께 가서 만두 한 접시와 제육 반, 평양냉면 두 개를 시켰다. 배고파서 조금 과하게 시킨 것도 있다. 하지만 과식은 현대인의 축복이니까 그냥 즐기겠다.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에는 만두와 제육이 먼저 나왔다. 그렇게 먹게 된 제육은 촉촉하고 야들한 고기였다. 야한 고기라고나 할까. 너무 야들야들하면 야하게 느껴진다. 누가 한 말은 아니고 내가 한 말이다. 아, 섹시푸드라는 말이 잠시 유행했던 것을 보면 보편적 감상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야들이라는 글자가 야한 것처럼 느껴진다. 별 형편없는 감상이다. 나도 안다 사과하겠다. 아무튼 야들 제육과 촉촉 만두를 즐기고 나서 나온 냉면은 쉽게 빛을 잃는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호흡을 잃은 냉면을 꾸역꾸역 다 먹고 나니 진짜 내가 평양냉면을 좋아하는지 헷갈렸다. 그러나 고기와 만두는 소주의 귀한 친구이고, 평양냉면은 유명한 해장음식이다. 나는 소주와 함께 무시무시한 애피타이저를 해치웠고 동시에 해장을 했다. 어른은 너무 무식하고 무서운 거다. 어김없이 과식한 배를 부여잡고 생각했다.
일단은 여기까지 얘기하겠다. 냉면은 더 먹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인지 아닌지. 일단 가성비 면에서 가히 최악인 게 큰 진입 장벽이다. 그 간단한 차림새에 허기가 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 불만족스럽다. 먹고 나면 배부르기는 하다. 그러면 불만족을 잊고 부른 배를 문지르며 넘치는 웃음으로 계산을 한다. 그리고 그 배부른 느낌만 기억한 채 평양냉면 식당을 가면 또 같은 문제에 충돌한다. 불만족과 만족 그 사이를 기가 막히게 걷는 음식이 바로 평양냉면이 아닐까. 음식계의 터키 아이스크림이다. 그래서 생기는 호불호의 영역은 여전히 우리를 궁금하게 한다. 아무튼 서울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의 세계에 들어온 것은 나 스스로 환영하겠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다녀보겠다.
냉면이여 영원하라.
냉면: 네 제가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