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맛구름
닉네임 (nick name) =별명
내가 나를 지칭하는 별명. 박하맛구름.
2004년 7월.
재수해서 들어간 미대를 휴학하고 학비를 빙자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미술학원에서 일하게 된다.
학교가 밀집되어 있던 아파트 대단지의 상가에 있던 큰 미술학원. 고작 휴학생이었던 21살의 내게 유치/초등 전임강사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었다. 그림을 가르치는 목적이 1순위도 아니었고, 가난했던 집안 상황에 학비를 낼 수 없어 한 학기를 꾸역꾸역 다니다 휴학을 했기에 무조건 ‘돈’이 1순위였다. 그러다 보니 일이 즐거울 리도, 아이들이 예뻐 보이지도 않았다. 거기다 미술학원 막내강사라는 이유로 잡다한 일은 모두 내 차지.
지치고 반복되는 날들 가운데 유난히 빛나던 6살 친구를 만났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유치원 하원 이후 흔히 말하는 저녁까지 학원 뺑뺑이를 돌던 아이.
첫 타임에 만났던 유치원 원생들 중 가장 마음이 가던 아이. 그때도 나는 이상한 감정에 집착이 심했던 것 같다. 편애하는 마음으로 늘 그 아이에게 많은 질문들을
던졌다. (사적인 질문은 아님.) 그 아이가 답해주던 빛나던 말들이 유일한 숨구멍 같았던 시간. 1년이란 시간을 그 아이 때문에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공룡 뱃속에 뭐가 있을까?
수업 커리큘럼의 주제였다. 뭐 대충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 크~~ 게 그려서 엑스레이 사진처럼 공룡뱃속에 있을만한 것들을 상상해서 그리고 색칠하게 하자라는 생각으로 준비한 수업이었다.
역시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기, 닭다리, 작은 공룡 등등 단순한 상상을 하고 시간 때우기식의 그림을 그리다 갔다. 내 애정을 가득 받고 있는 그 아이만 빼고!
8절 도화지 가득 목이 긴 공룡(아이를 낳고 나서 알게 된 거지만, 브라키오사우르스였던 것 같다)을 그리고 공룡의 뱃속 가득 온통 구름만 그렸다. 엥?
“왜 구름만 있어? 공룡이 구름을 먹었어?
“얘는 목이 길고 커서 구름밖에 못 먹어요!”
“아~ 그래? 구름은 무슨 맛인데?
“박하맛이요!!”
한참을 멍하니 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왜 그렇게 그 말에 집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내 시선으로 이학원 저 학원을 뺑뺑이 돌던 그 아이가 안쓰러웠는데, 늘 밝고 생각이 상냥했던 그 아이가 내심 부럽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핸드폰 카메라나 개인SNS공간이 활발했더라면 아마 그 아이도, 그 아이가 그렸던 그림도 잘 저장되어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이게 전부다.
신선했던 아이의 생각으로 빚어진 나의 닉네임.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던 애정 깊은 나의 닉네임.
내 이야기를 해보기로 마음먹고 처음으로 이야기해 본다.
내 이름을 숨기고 싶었던 그 시절.
나를 보호해 준 두 번째 이름. 박하맛구름.
신선하고 상냥하게 내 이야기가 채워져 가길.
정확히 20년이 흐른 여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