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니고 한창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에는 전업주부인 아내를 보면서 "여자들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갑갑해서 어떻게 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퇴직을 하고 몸이 안 좋아 집에만 있으니 이제는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
어떤 때는 갑갑증에 이유도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어렴풋이 누군가 글을 써보면 정서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핸드폰 메모장에 마음속으로만 되뇌던 말을 써보고, 심지어 욕도 써봤더니 가슴이 조금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글을 써내려 가면서 마음이 안정된 다음 내가 쓴 글을 읽어보니, 내가 이렇게 거친 말을 쓰는 사람이었던가? 하는 반성을 하면서 점차 순화된 말로 채워져 갔다. 그리고 지난날 고생했던 기억, 즐거웠던 기억이 하나 둘 떠올라 모양새를 갖춘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쓰려고 하니 어휘도 잘 떠오르지 않고 나도 모르게 띄어쓰기가 안되고 있었다. "50대에도 치매가 온다는데 내가 설마?" 하다가 예전에 젊은 사람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카톡 문자를 보내던 기억이 떠올라 "그렇지. 그동안 문서를 작성하거나 서류를 읽을 일이 없어서 그럴 거야"라는 결론을 내리니 안심이 되었다.
직장에 다닐 때 법률서적이 아니면 독서다운 독서를 해보지 않았으니 글재주가 빈약했다. 남들은 어떻게 쓰는지 인터넷 블로그 글들을 검색하다가 '자기 고백 글쓰기의 치유 효과'라는 심리상담 전문가의 글을 발견했다. 정말 몇 번 끄적여 본 경험에 비춰 보니 공감이 되면서 글을 쓰려고 마음먹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내면에 가득 찬 불안한 생각이나 감정을 효과적으로 배출하는 안전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다.
둘째, 글쓰기를 통한 자기 고백은 자기 객관화와 자기 치유의 지표가 되어 준다.
셋째,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독려해 주는 작업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고 말수는 줄여야 한다고 한다. 젊을 때부터 말수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도, 나이가 드니 젊은 사람 앞에서 "예전에는 정말 고생이었는데 요즘은 세상 정말 좋아졌다"는 말이 입 밖으로 툭툭 튀어나온다. 글쓰기가 바로 이런 버릇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인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니 마음의 안정도 찾고 잔소리로 인한 '꼰대' 이미지도 벗어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어쨌든, 고상해 보이는 취미 하나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