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동안 바이올린과 글쓰기, 하루 만에 브런치 작가.

하루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된 후기

by 에원

나는 굉장히 평범한 열다섯 살 중학생이다.

공부에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해야 하기에 한다.
특별한 꿈이 있다기보다는 정해진 대로 살며 매일을 나아간다.

여태까지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고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을 붙잡고 낑낑대기도 하며 살았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 ’이라는 존재가 스며든 지는 사실 꽤 됐다.



‘글’은 처음에 소설이란 형태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어쩌면 그렇기에 문학은 나에게 스트레스가 아닌 재미로 다가왔다.

어렸을 적 나는 책을 읽고 누구나 그렇듯 뒷 이야기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쭉 사용해 왔던 태블릿을 열어보았다.
그 속에 있던 가장 오래된 글의 생성 날짜를 확인하니….
2019년 11월 14일.


그때 내가 첫 소설을 쓴 것 같다.


한 페이지 정도 되는 적은 분량에 뻔하고 간단한 내용.

8살이었으니까.
그때 나는 아마도 그때 ‘인어공주’를 매우 인상 깊게 본 모양이었다.
너무 뻔하게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한 인어공주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쓴 소설이랄까.

내가 각색한 인어공주, 즉 ‘니너공주’의 줄거리는 인어공주가 수화를 배워서 왕자와 소통을 해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렇지만 ‘니너공주’의 위력은 대단했다.


머릿속으로만 상상을 이어오고 그림을 그리면서 그 스토리를 상상하던 나는, 그 이후부터 태블릿에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짧고 간단하게, 그렇지만 천천히 발전하는 형태로 글을 썼다.



그리고 그로부터 1~2년 정도 지난, 내가 10살 때 무렵.

그때는 코로나 시대 초기이자 최절정이라 불릴 수 있는 2020년으로 나는 그때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도 제일 친한 친구를 만나 그 친구와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지금까지 4년가량 동안 나와 같이 글을 썼고, 이제는 ‘독빛'이란 이름으로 같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나의 소설들은 더 풍부해졌고 넓어졌다.
크면서 다양한 책을 읽으며 글쓰기 능력도 늘었다.
정확히 그때부터 소설 이외에 글도 쓰기 시작했다.

독서록 대회에서 상을 타고 학교에서 각종 글쓰기대회 (초등학생이었으므로 주로 친구의 날 기념 편지 쓰기 등 유치한 주제이긴 했다만)에서 상을 받아왔다.

그렇게 나의 스펙 아닌 스펙(?)은 쌓여갔고 나는 글에 매료되었다.



그러면서 브런치 작가를 꿈꾸게 되었다.



사실 본업 작가를 꿈꿀 용기는 나지 않지만, 작가’라는 빛나는 꿈은 항상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는 했다. 작가 지망생인 내가 꿈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방법은 브런치스토리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쓰는 양에 비해 아무런 커뮤니티에도 글을 올리지 않았던 나로서는 브런치는 큰 도전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브런치에 대해 생각을 진짜로 하게 되었고 올해가 되어서야 정말로 브런치에 도전할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문학창작 동아리를 만들고, 아까 말했던 그 친구와도 여러 소설을 성공적으로 써내며 자신감을 얻던 터라, '도전이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후기



부모님의 엄격한 통제 밑에서 인터넷의 자유로운 이용이 중2 때부터 허락되었기에(물론 시간제한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때부터 브런치스토리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불합격 썰들이 가득했고, 수많은 정보를 마주한 나는 꿀팁을 찾아 헤맸다.
사실, 찾으면서도 내가 그 팁들을 통해서 실제로 합격하리라는 희망은 없었다.

그러나 사실상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모은 그 ‘브런치스토리 합격 꿀팁’들을 얼추 추리고 신청서를 쓰기 위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시작하기 앞서서 여러 가지 매체를 살펴본 결과 강조되는 것을 간추렸다.


나만이 가진 특별함

남들이 하기 힘든 경험

나만이 가진 전문지식

나만의 독창성이 드러나는 글+지원동기기

글을 올리는 타 블로그나 사이트가 있어야 유리

통일성



그러나 나는 말했다시피 타 사이트에서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집중할 수 있을 만한 것은 통일성’과독창성’, 그 두 부류로 나뉘는 듯했다.


통일성은 어느 정도 뭐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응?? 독창성? 특별함?

나는 정말 평범한 중학생인걸?


이 정보를 얻은 순간부터 나의 뇌는 정지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인생동안 해온 건 무엇일까,
내 인생이 남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나는 뭐가 특별할까?

내가 느끼기에 나는 특별할 게 없었다.
남들이 하기 힘든 경험을 하지도 않았고 전문지식도 없었다.
특별히 아프거나 다쳐본 적도, 인생이 뒤바뀔 사건을 겪지도 않았다.
주어진 일을 충족하고 그에 만족하며 소소히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의 인생의 특색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이올린’


내 뇌를 잠시 스쳐 지나가던 이 친구를 발견한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질문은 작가소개를 300자 이내로 입력하는 것이라고 알아냈다. 그 질문에서 부족하나마 최대한 나만의 특별함을 드러내려 했다.



중2 학생으로 인생의 절반인 7년 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글을 써왔다. 우연히 시작했으나 재능이 있어 취미로 무려 7년 동안 레슨을 받는 중이며 학교 오케스트라 단원이다. 글쓰기도 재능을 인정받고 좋아했기에 현재 문학창작 동아리 회장으로 활동을 하며 개인 창작도 하는 중이다. 짧은 14년 간의 인생에 애증의 바이올린과 고뇌의 글쓰기를 이어왔다. 그동안 쓴 글을 타인에게 알리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고 나만의 글을 쓰고 싶었던 찰나에 음악이란 소재가 떠올랐으며 인생에서 가장 깊은 이 둘을 연결할 유일한 장소가 이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썼던 신청서다.
내용도 중구난방 하고 솔직히 말해서 잘 쓴 느낌이 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만의 특색을 충분히 드러내어서 분량을 꽉꽉 눌러 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질문인 '개요', '이후 목차'에서는 나름 통일성을 녹여내려고….
노력했다ㅎㅎ



소설
학교 관련 ex) 학교 오케스트라, 성적의 압박감, 학교폭력의 색다른 접근, 교우관계 등
음악적 배경 소설들 ex) 음악을 통한 성장물, 판타지

에세이
주제) 애증의 바이올린의 기록
내용)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는, 애정과 열정, 그리고 짜증과 화를 유발하는 바이올린과 7년간의 역사를 정리하는 글
-바쁜 일상에서 계속되는 레슨과 오케스트라의 버거움과 기쁨
-오케스트라와 레슨의 분위기 차이
-바이올린과 얽힌 개인적 서사
-과거 추억(바이올린을 실수로 부수고 그걸 감추던 때 등)
-현재 상황(그만두게 된 계기)


정말 이대로 똑같이 붙여 넣기 했던 기억이 난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가 소개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이와 함께 내가 옛날에 써놨던 글 세 개를 같이 첨부했다.

동아리를 위해 썼던 단편소설로 ‘인생의 5교시’라는 현대 판타지물 하나,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독빛이랑 같이 쓰는 ‘이레의 조각글’이라는 모음집 중에서 ‘거짓말’과 ‘낮에 뜨는 별’을 주제로 하는 글 두 개를 첨부했다.

(이 글들도 브런치에 차차 올릴 계획이다)


"안되면 말지 뭐, 그냥 눈감고 딱 해야겠다!"


이렇게 결심하고 오랫동안 신청서를… 방치했다….



그리고 한글날 무렵 연휴 어느 날…


정말 눈 감고 딱 제출했다.

다음날 오후쯤, 바로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바이올린은?


나의 ‘인생의 특별함’이었던 바이올린에 대해 이야기를 한 번쯤은 하고 싶다.

이 녀석을 찾아낸 덕분에 이 글을 쓰고 있기도 하니...

요즘 어렸을 때 악기를 한두 개씩 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그렇지만 나의 바이올린 이야기는 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1월경에 시작을 해, 현재까지 7년 동안 같은 곳에서 레슨을 받고 있다.
만 14살인 나에게는 인생의 절반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바이올린을 꽤 잘하기도 하고 해 놓은 게 아깝기도 해서 그만두지 않은 게 이렇게 오랫동안 쌓이게 된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많은 아이들이 하던 악기를 그만둔다.
학교 오케스트라에 활동하는 아이들은 모두 악기를 하긴 하지만, 나처럼 레슨까지 병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거기에 나는 전공을 할 목적도 없으며 바이올린을 하면서 엄청난 행복을 느껴보거나 바이올린을 사랑한 적이 없다.
그런 아이가 지금 7년 동안, 인생의 절반동안 바이올린을 해왔다.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거의 타의로.



그리고 그런 아이가 이제 바이올린을 그만 둘 예정이다.



오케스트라와 레슨을 병행하고 선행학습과 내신, 수행평가가 겹치면서 내가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 연습시간이 따로 있지만, 레슨 연습은 사실상 거의 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합주와 레슨을 함께 하며 비싼 돈을 내는 곳을, 스케줄 때문에 합주도 안 하고 레슨만 받으면서 연습마저 안 하는 모습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부모님으로부터 여러 번 그만두자고, 이만하면 됐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에서 내가 내년에 악장 자리를 가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확정 나고,
더 이상 레슨은 의미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고집부린 나도 이제 하나를 내려놓게 되었다.


타협 끝에, 올해까지만 레슨을 하기로 했다.


오케스트라는 계속하겠지만, 단체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개인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선생님과 1대 1로 하는 레슨은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오케스트라를 계속하는 이유는 그저 단체생활의 재미, 그리고 실력 유지 정도의 수단으로, 그 이상의 의미는 띄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온전히 나의 바이올린 실력을 위한 ‘레슨’은 멈추는 셈으로,
나는 바이올린을 그만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여태까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그만두지 못한 이유가, 나의 특색이 사라진다고 생각해서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비록 바이올린을 특별함으로 브런치스토리에 입장하게 되었으나, 더 이상 '바이올린을 하는 것'을 내 특별함 아닌, '바이올린을 그만 둘 줄 아는 것'을 특별함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추석 연휴에 고즈넉한 어느 저녁, 충동에 휩쓸 린 나는,

“그냥 하자. 언제까지 기다려.”

를 외치며 신청서를 제출했다.


다음날 아침,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다른 사이트에서 활동 중이기도 했고, 브런치에 대해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상황이어서 꽤 당황했다. 당연히 걔가 신청서를 제출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연휴 초반에 신청을 해서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한다.

솔직히 그 친구의 글실력이 나보다 좋기에 ‘정당한 결과다’라는 생각으로 질투를 눌러내고 축하를 진심을 해주었고 아침부터 1시간가량 통화를 했다.


그 오후, 나도 단 하루 만에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7년 동안 바이올린을 켜고 글을 쓰던 나는, 내 글의 범위와 독자들을 넓히고자 도전한 브런치스토리에 하루 만에 작가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하는 것도 재능이더라’
‘꾸준히 하는 것도 재능이더라’
라는 소리를 꽤 들었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던 바이올린을, 사랑하던 글쓰기를 이렇게 열심히, 꾸준히 해 온 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재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잘하지 않는 나만의 꾸준한 노력을 발견하여 그것을 녹여낸 결과 나는 하루 만에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다시 한번 느낀다,
오랫동안 열심히 한 것은 실패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을 빌며,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