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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Jun 06. 2024

흰머리 염색과 누군가의 죽음

늙음이란 무엇인가?

작년 4분기부터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던 몇몇이 사망했다. 나이대는 칠십 대 이상이 없었다. 최측근은 아니었다. 믿지 않고 있는 편이다. "사실 살아 있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이라며 다시 나타날 것만 같다. 장례식과 시신을 눈으로 봐야지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참 바보 같다, 나는.

칠팔십 대 이상만 죽음을 맞이한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당부하고 싶다. '부정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편견도. 사실 삶 자체가 지옥인 누군가에게는 곧 평화이고 휴식의 의미일 수 있다. '나 좀 그냥 넣어달라'며 지구대를 찾아오는 노숙인이 하루에도 몇 명씩 된다.

흰머리 염색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현재 '사무직 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 출근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면 이삼십 대에도 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고 출근한다면 상사에게 불려 가서 한 소리 들을 수도 있다. 직원은 곧 간판인 셈이니까.

미용실에 갈 때마다 듣는 소리가 하나 있다. 대화체로 써서 쉽게 재현해 보겠다. "천연 샴푸 써본 적 있어요?", "네.", "어땠어요?", "가려웠어요.", "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두피가 안 좋아서요.", "예리하네요. 정확해요."

벌써부터 이렇게 두피가 벌겋고 가려우면 나중에 사십 대, 오십 대 되어서 염색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먹고살 돈이 아예 없거나 두피가 빨갛고 아픈 것이 아니라면 꼭 하기를 추천한다. 안 하면 본인 실제 나이보다 다섯 살 이상은 더 들어 보인다. 열 가닥 중에 한두 가닥만 흰 것이면 안 해도 되지만, 사실 그 이상을 넘어서면 숲을 봤을 때 '회색'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머리가 첫인상에 있어서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하는지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실제로 머리를 매일 풀고 다니다가 묶고 나갔을 때 필자를 못 알아본 사람도 있었다. 그 정도로 중요하다.

엄마는 몇 해 전부터 삼 주에 한 번씩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물었다. "왜 그렇게 집착해?" 흰머리의 지분이 팔 할을 넘어서서 안 하면 그 부분이 마치 두피처럼 보이기 때문에 머리칼이 빠져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팔십 대 노인들도 다 하고 다니기 때문에 사오십 대가 안 하면 상대적으로 더 들어 보이는 것도 있다. 머리색 하나로 죽음이 가까워 보이지 않도록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은 늘 속지 말아야 한다고 되뇌면서도, 관념이라는 이름의 손에 사지를 묶여서 산다. 검은 코팅으로 겹겹이 흰머리를 덮으라, 마트에서 산 염색약보다는 천연 염색약이 더 좋다. 검은 물을 흘려보내며 머리를 빡빡 감으면 느낄 것이다. 한층 젊어진 착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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