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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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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전연 Nov 04. 2024

폭설

한소희. 끝.

순전히 한소희 때문에 본 영화. 무슨 영화인지 궁금해서 예고편을 봤는데 한소희가 너무 예뻐서 바로 극장에 달려갔다. 배우 한소희보다 자연인 한소희를 좋아해서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꽤 방문하는데, 이 영화는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이고 배우 한소희도 충분히 매력적임을 깨닫게 해준다. 여담이지만 자연인 한소희를 좋아하는 이유는 솔직하고 충동적인, 날것의 모습 때문이다. 어느 여자 연예인이 칼 든 강아지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겠는가. 그리고 새로 사귄 남자 친구의 전 애인에게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띄우는 건 또 무슨 경우고. 교양 없어 보일지라도 감정을 시원하게 표출하는 그런 모습이 나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약간 불구경하는 느낌으로 좋아하는 게 사실이지만 다른 연예인은 몸 사리며 이미지 관리만 하므로 한소희에게 유독 관심이 가는 게 당연하다. 나는 그녀가 자숙이나 자제를 몰랐으면 좋겠다. 계속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당당한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반항'과 '퇴폐'의 아이콘이 되길 바란다. 그건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서 한소희밖에 못 한다.


영화 얘기를 하자. 총 네 장으로 구성돼 있다. 설이, 수안, 바다, 폭설. 앞의 두 장은 영화 속 현실이고 뒤의 두 장은 그 현실 속 허구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설이'와 '수안'은 등장인물인 설이와 수안의 현실 이야기고 '바다'와 '폭설'은 현실의 수안이 각본으로 쓴 그 허구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영화 보고 있을 때는 '바다'와 '폭설' 부분이 이전 부분과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현실의 연장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다 보고 나서 곱씹어 보면 그게 아니라 액자식 구성처럼 수안의 상상이자 창작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근거는 '수안'의 마지막에 그녀가 고향 강릉 집에 돌아와서 옛날에 쓴 시나리오를 발견하고 그것을 제대로 다시 쓰겠다는 듯이 공책에 "바다. 눈발이 흩날린다. 재회."라고 적는 장면이다. 그 뒤에 '바다'의 타이틀이 뜨고 귀신같이, 수안이 눈 내리는 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도 또 놀랍게도 그 바다에서 서핑을 끝낸 설이가 해변으로 걸어 나온다. 현실의 수안이 공책에 '재회'를 썼듯이 두 사람이 만난 것이다. '바다'의 시작이 '수안'의 기록대로 됐기 때문에 이건 그녀의 창작 속 내용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근거를 하나 더 보태자면 수안이 고등학생 때 쓴 시나리오의 제목이 <너의 12월>인데 그 대본의 일부를 노트북 화면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미친 듯이 노는 거야."라는 대사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허구의 두 장에서 설이와 수안은 서핑을 하다가 조난을 당해 아무도 없는 섬에 도착하고 그곳의 눈밭에서 신나게 논다. 이처럼 '바다'와 '폭설'은 수안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므로 그 부분은 그녀가 지어낸 허구 속 세계라고 해석하는 게 영화적으로 옳다. 수안은 설이와 바다에 처음 갔을 때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자기 영화를 찍을 거라고 천명하는데 그런 말도 후에 나올 '바다'와 '폭설'이 그녀의 창작 내용임을 증명하는 단서로 작용한다.


그럼 그녀가 그려 낸 세계가 그녀가 겪은 현실과 얼마나 연관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이건 영화의 네 장을 앞뒤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의 구조를 비교하는 작업과 같다. 결국 이 영화는 수안의 현실과 그녀의 상상으로 이뤄진 것이니까 두 부분을 분석하는 게 작품 이해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설이와 수안은 레즈비언이다. 근데 고등학생 때는 어려서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껴 두 사람이 맺어지지 못한다. 설이는 둘만 있는 분위기를 이용해 용기의 키스를 날리지만 수안은 좀 받아주다가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거부하고 자신이 찍을 영화의 장르를 우정 드라마라고 말한다. 설이와 자신의 관계가 사랑이 아님을 넌지시 전달한 것이다. 비밀스러운 성향을 같은 성향이라고 생각한 친구에게 드러낸 건데 그것이 거절당했다고 느낀 설이는 수안의 우정 영화 대신에 텔레비전 드라마에 참여한다. 그리고 촬영 때문에 학교 결석이 잦아지고 그녀가 남자 아이돌과 사귄다는 소문이 나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수안의 영화와 다르게 남녀의 일반적인 사랑 얘기일 것이고, 설이의 스캔들은 동성애가 거절당한 것에 대한 반항심이었을 것이다. 실망과 배신으로 인한 결과 행위는 반동적인 경우가 많은데 어쩌면 설이는 자신이 진짜로 남자와 사랑할 수 있는지 마지막으로 시험해본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정말 여자를 사랑하는 게 맞는지 남자와 사귐으로써 확인해본 것일 테다.

설이의 빈자리를 통해 자신도 그녀에게 호감이 있음을 깨달은 수안은 설이의 집 앞까지 찾아가 그녀를 기다린다. 밤에 촬영 마치고 돌아온 설이는 마스크를 끼고 있다. 그건 상처 받은 맘 때문에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상징한다. 사람은 삐치면 소통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마스크를 벗고 "놀러 갈래?"라고 말함으로써 마음의 문을 연 설이. 드라마 촬영과 연애 스캔들을 통해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억누를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번화가로 나간 두 사람은 거리 데이트를 즐기고 카페에 들어간다. 자신을 알아본 팬들에게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해준 설이는 연예인으로서 인기가 없어지고 대중에게 잊힐까 봐 걱정이 많다고 토로하는데 수안은 이를 자신과의 관계에는 무관심한 것으로 오해하여 설이에게 불평과 불만을 내뱉는다. 둘의 관계가 멜로임을 끝내 인정하지 못한 수안은 설이를 붙잡지 못하고 그녀의 전학으로 인해 서로 헤어지게 된다.

'수안'의 첫 장면에서 그녀는 '설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연기를 하며 시작한다.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그녀의 뒷모습을 비추며 연기 동선을 따라간다. '설이'에서 숏컷으로 총은 든 채 햄릿 대사를 뱉은 수안은 '수안'에서 긴 머리를 하고 남자와 키스하는 연기를 한다. 그리고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돌아서자마자, 참기 힘들었다는 듯이 허리의 벨트를 푼다. 마치 그것은 코르셋을 연상시킨다. '설이'와 '수안'의 첫 장면의 대조는 수안 또한 과거의 설이처럼 성 정체성을 숨기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매니저가 운전 중에 다른 감독이 수안의 연기를 칭찬했다며 다음 작품을 함께할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리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현재 모습과 연기 역할은 레즈비언인 그녀의 자아와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유명한 배우가 되었지만 사적으로 여성과 연애하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에("어플 못 쓰겠구나, 배우라서." "나 진짜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거 지겨워. 별로 안 하고 싶어.") 그녀의 삶은 공허하고 불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아직도 설이를 잊지 못했다는 게 진정한 문제. 수안이 선배 집에서 약에 취해 갈매기를 언급한 것과 자다가 사라져 그녀를 찾는 선배 전화에 지금 자신이 바다에 있다고 한 것은 무의식에 설이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남아 있음을 뜻한다. 수안이 설이와 함께 처음 추억을 만든 곳이 바다였기 때문이다.

마약 사건 때문에 연기를 쉬게 된 수안은 고향으로 내려오고 방 정리를 하다가 자신이 고등학생 때 썼던 시나리오를 발견한다. 자신이 주인공이고 설이를 출연시키기로 했던 영화. 수안은 창작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잊고 설이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고 싶은 건지 노트에 시나리오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 내용이 바로 이어지는 '바다'와 '폭설'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설명한 '설이'와 '수안'은 실제(현실)고 '바다'와 '폭설'은 허구다. '바다'의 첫 장면인, 수안이 모래사장에 앉아서 바다를 구경하고 있다 서핑 끝내고 뭍으로 올라온 설이와 마주치는 사건은 그래서 너무 우연스럽고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현실에서는 수안이 설이를 만났다 헤어지므로 '설이' 다음에 '수안'이 나오지만 그 뒤의 허구의 세계에서는 수안이 설이를 만나러 찾아가므로 '바다' 다음에 '폭설'이 오는 순서로 진행된다. 설이와 함께했던 수안이 혼자가 되는 구조와 혼자인 수안이 결국 설이를 만나는 구조가 서로 반대의 순서를 지닌 것이다. 이는 '바다'가 수안을 뜻하고 '폭설'이 설이를 뜻한다는 걸 전제하는데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두 사람의 이름을 통해 그걸 짐작했을 것이다. 수안은 물 수(水)에 평안 안(安)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바다다. 거친 파도는 설이를 그리워하는, 근데 만나지 못해서 슬픈 그녀의 감정 상태를 상징한다. 설이의 도움으로 서핑 실력이 느는 것은 수안이 자신의 감정(파도)을 극복하는 데 설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파도의 원인이 그리움이므로 그리운 대상을 만나면 자기 마음(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안전하게 보드를 탈 수 있는 것이다. 설이는 본명이 이윤설인데 눈 설(雪)일 확률이 높다. 수안에게 데면데면했던 그녀가 오래전처럼 수안과 우정 같은 사랑을 나누는 곳이 눈 내리는 섬이다. 수안은 드디어 설이의 맘을 얻고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므로 수안이 만든 그 눈 내리는 상황과 공간은 설이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설이는 눈이다. 폭설은 그녀를 향한 수안의 마음이 그만큼 절절하다는 것이다.

수안은 자신을 알은체하지 않는 설이를 쫓아 술집에 들어간다. 한 남자가 설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합석을 요구한다. 수안이 그 순간에 끼어들어 자신과 설이가 친분이 있고 자기들끼리 할 얘기가 있음을 알린다. 현실에서 자신과 헤어진 설이가 남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동성애적 정체성에 아직도 힘들어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수안은 그런 장면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무시로 일관했던 설이는 자기 옆자리에 앉은 수안에게 드디어 말을 건넨다. 아직도 예쁘다는 수안의 칭찬에 설이는 귀걸이로 자기 입술을 뚫어 피를 흘린 다음 지금도 예쁘냐고 묻는다. 정말 생뚱맞은 행동인데 이것은 모두 수안의 창작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그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근데 수안은 왜 설이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했을까? 현실에서 수안이 설이와 처음 말을 나눴을 때('설이'의 첫 신) 거울에 묻은 빨간 페인트(총에서 나온)를 설이가 대신 닦아주었기 때문이다. 설이의 입술에 난 피와 그 페인트는 색깔이 같고, 상식을 깬 도발적 행위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도 유사성을 가진다.

설이는 바닷가의 카라반에 산다. '설이'에서 엄마 차 타고 바다로 향할 때 설이는 자기 집이 바다라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그걸 기억하고 수안은 자기 창작물에 설이가 바닷가에 사는 설정을 넣은 것이다. 파도가 거세게 치던 날 설이와 수안이 무작정 바다로 뛰어든 것은, 그런 돌발적 행위는 '설이'에서 두 사람이 밤늦게 만나 즉흥적으로 서울에 놀러 간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재밌는 점은, 설이가 수안의 엄마 차를 타고 바다와 서울로 떠날 때 그 차는 녹색이고 수안이 설이의 도움으로 바다에서 보드를 탈 때 그것도 녹색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현실 부분('설이' '수안')과 허구 부분('파도' '폭설')으로 나누어 둘의 유사성을 줄곧 밝히고 있는데, 이뿐만 아니라 '설이'의 서울 명동과 '폭설'의 눈 섬도 같은 맥락에 해당한다. 둘 다 일탈과 무모함으로 도착한 곳이고 설이와 수안 외에 아무도 없으며 두 사람은 결국 창 있는 건물에 들어간다. 명동의 빈 건물에서 설이는 수안에게 안기고 섬의 빈집에서는 수안이 설이에게 안긴다. 전자의 설이는 맘을 먼저 표현한 것이고 후자의 수안은 설이를 그리워하며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낸 쪽이기 때문이다. 그럼 두 사람이 명동에서 쓰레기를 차고 논 것과 섬에서 눈싸움을 한 것도 유사성의 맥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수안은 '파도'와 '폭설'을 그냥 만든 게 아니라 과거의 경험('설이')을 반영하여 만든 것이다. 이런 유사성은 '파도'와 '폭설'이 수안의 허구적 이야기임을 더욱 뒷받침해준다.

하나 부언할 것은, 설이와 수안의 옷차림이다. 현실인 '설이'에서 두 사람은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을 입었다. 허구인 '폭설'에서는 동일한 슈트를 입었다. 현실에서는 두 사람이 개별적인 존재이기에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감독이 빨강과 파랑을 입힌 것이다. 하지만 허구에서는 그 모든 게 수안의 창작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즉 그 속의 설이 또한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수안의 마음과 상상으로 만들어 낸 존재이므로, 그러니까 설이가 수안이나 다를 바 없으므로 두 사람이 동일인인 것처럼 똑같은 슈트를 입고 있는 것이다. 이걸 알면 빈집에서 설이가 수안을 안고 있을 때 한 말, 네가 다른 사람한테 한 얘기가 너 자신한테 한 말일 수도 있다는 그 대사가 이해된다.


거센 파도 위에서 서핑 하는 데 성공한 수안은 섬에서 바닷가로 돌아오지만 설이는 끝내 바닷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죽은 게 아니다. '폭설'은 수안이 창작한 허구의 세계이므로 현실의 설이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파도에 휩쓸려 죽은 것처럼 보인 장면은, 결국 현실의 설이는 수안을 떠나 있고 수안이 그만큼 아파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설이가 곁에 없으므로 수안의 파도(마음)는 여전히 사납다. 바다 깊이 가라앉았을 것이므로 수안은 평생 설이를 잊지 못할 것이다. 결말이 매우 슬픈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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