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꿈에 나온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15년 전 암으로 돌아가셨다.
사무직으로 정년 퇴직하신 분이 무슨 폐암에 걸려 돌아가시나 했는데, 아버지 사후에 경력증명서를 떼러 갔다가 아버지가 실은 소위 '막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채탄부로 10년을 넘게 일하시다가 타고난 필력과 공들인 로비를 배경으로 사무직으로 옮겨 정년까지 일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아버지의 이력 탓인지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공부공부를 주문하셨다.
내가 학교를 마칠 때쯤엔 공무원과 공기업 등을 열거하시며 안정된 직장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나는 아버지는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면서 그런다며 늘 아버지와 날을 세웠다. 아버지가 내게 너그러운 미소를 보여주신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아내를 인사시켜 드렸을 때였고, 그 후로는 아들과 딸이 태어났을 때 그리고 딱 한번 우리 집에 오셨을 때였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버지와 나는 마주 보고 앉아 좋은,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할만한 때가 거의 없었던 셈이었다.
브레드 피트가 나온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We cannot completely understand, but we can completely love)'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대사를 조금 이용하자면,
나는 아버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완전하게 사랑하지 않았던 거 같다. 내가 아는 아버지 또한 나를 충분히 그리고 완벽하게 사랑하거나 이해하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거나, 아버지와 쌓아온 관계를 되돌아보자면 말이다.
갑작스럽게 아버지 얘기를 꺼내게 된 것은 며칠 전 꿈에 나타난 아버지 때문이다.
15년 전 돌아가실 때 어찌어찌하여 여러 가족 중 임종을 혼자 지키게 되었는데, 이후 최근까지 아버지는 내 꿈에 나타나신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꿈에 보여도 다음날 아침이면 그저 어젯밤 꿈에 아버지가 보였어라는 말로 퉁칠 만큼 얼굴만 비치시고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꿈에 나타난 아버지는 여태 꿈에 나타난 그리고 생전에 나와 대화를 나누던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꿈속에 나타난 아버지에게 토로한 이야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요새 나는 어떻게 지내며 이런 계획을 갖고 있어요'라는 식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이었을 것이다. 대신 아버지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 말씀을 듣고 깨어난 아침에 나는 너무 행복해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 쌓여있던 안 좋았던 기억은 물론 나의 형제들에게 가지고 있던 불편한 감정들마저 조금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한참이나 나와 얘기를 나누시던 끝에 내 어깨를 두드리며,
'천천히 해, 생각한대로 하다보면 다 잘될 거다. 이제부터 잘 될 거야'라고 하셨다.
살아계신 동안 한 번도 이렇게 따뜻하게 말씀을 해주신 적이 없어서 그렇게 해주시기를 내가 바란 것이 꿈으로 나타난 건지, 아니면 나의 간절함을 아버지의 영혼이 듣고 오신 건지 그게 뭐가 됐든 잠에서 깨어난 토요일 아침엔 행복한 기분이 충만했다.
엄마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내 꿈엔 한 번도 안 나타났는데, 너한테 나왔다니 좋은 일이네. 앞으로 잘 될 건가 보다'라고 하신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제서야 아버지를 완전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된 거같아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