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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n 12. 2024

네 식구가 함께 떠난 런던,파리

나의 결혼생활. 10

작은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걸 확인한 건 나다.

큰 아이때도 그랬지만, 작은 아이때도 마찬가지로 발표당일 아침 9시가 되기도 전부터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예비번호가 떴고, 될만한 순번이기에 될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작은 아이도 큰 아이처럼 대학생이 되었다.


작은 아이가 고3을 앞두고 있을 때, 작은 아이도 대학에 합격하면 네 식구가 다 같이 유럽 여행을 가자는 얘기를 했다. 이후 아내는 집 앞 새마을금고에서 월 70만원짜리 1년 적금을 들었다. 늘 쫓기며 살고 있을 때니 네 식구 여행 가려면 적금을 들지 않고는 힘들 거같다는 이유가 첫째였고, 이렇게 여행 적금을 들어야 '그 때'가 오면 진짜 여행을 갈 수 있을 거같다는 이유였다. 

큰 아이의 개별 여행 비용 일부와 네 식구 여행 경비를 모두 합해 1,100만원이 조금 더 들었으니, 아내가 미리 준비한 적금이 아니었다면 네 식구 유럽 여행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여행 3주 전 큰 아이가 친구와 함께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먼저 떠났고, 우리가 런던에 도착한 날 큰 아이가 우리 숙소로 합류해 네 식구의 여행이 시작됐다.  

우리의 여행은 런던에서 4일, 파리에서 5일을 머무는 단순한 일정이었는데, 각각 건축과 미술을 하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생각한다고 미술관, 공연장, 오래된 건축물 등을 많이 보러 다녔다. 


런던에서는 내셔널갤러리, 로니스콧 재즈클럽, 코벤트 가든, 노팅힐, 런던탑, 타워브릿지, 테이트모던, 켄싱턴 가든 등을, 파리에서는 루부르, 오르셰, 오랑주리, 퐁피두센터와 노틀담성당, 서점, 오페라가르니에, 파리시청사, 개선문, 에펠탑, 사크레 쾨르 대성당, 몽생미셸 등을 다녔다. 런던과 파리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닐만한 곳을 쫓아다니느라 강행군을 한 셈이다. 그 외에는 여러 카페와 소소한 가게들과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 둘째날 저녁엔 아내가 감기몸살인 거같아, 큰 아이와 함께 밤에 한인마트를 찾아가 신라면과 김치를 구해서 온 식구가 먹었더니 좀 나아졌다. 파리에서는 첫날 숙소 근처에 있는 동네 식당에서 퇴근한 직장인들 틈에 끼어 돼지순대와 샐러드, 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어가 통하지 않자 영어를 몇 마디 할 줄 아는 옆자리 사람이 이게 맛있다며 알려준 음식이었다.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아 마지막날 또 갔는데, 그날은 비도 오고 분위기도 축축해 괜히 또 왔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숙소 근처에 까르푸가 있어,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와 시간이 남았을 때 까르푸에서 산 와인을 여러 병 마셨다.


코로나가 터지고 출입국 폐쇄가 단행되기 직전인지라 런던과 파리 모두에 외국인 특히 아시아쪽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파리에서 몽생미셸을 가느라 딱 한번 가이드 투어를 했는데, 가이드가 '여행하기 정말 좋은 때 오셨습니다. 파리에 외국인이 이렇게 적은 때가 없었고, 특히 중국인은 거의 없어서 조용히 다닐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다들 웃었다.

몽생미셜은 너무 멀었다

런던과 파리에서 모두 저녁때 비가 여러차례 왔는데, 길가는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는 걸 보며 의아해했다. 또, 파리에서 한밤중에 시내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어둑한 길마다 노숙자들이 누워있는 걸 보며 어느 나라나 빈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숙제라고 생각했다.


여행지에서 아침에 일찍 눈을 뜨면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습관이 있는데, 네 식구 여행중에 딱 한번 그랬던 적이 있다. 파리에서 이틀째 아침에 눈을 뜨고 앉아있으려니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 혼자 문을 열고 나섰다. 숙소가 퐁피두 센터에서 몇 블럭 안되는 거리였는데, 이제 막 출근을 시작하는 사람들 틈에 끼여 거리를 배회했다. 베이글 샌드위치 집에서 혼자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켜먹고, 하나를 포장해 숙소로 돌아왔다. 

유럽 여행 중 어느 샌드위치 집에서 혼자 커피&샌드위치를 먹으며 바깥풍경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고 싶었는데, 그 날 아침에 그런 시간을 가진 셈이다.

우리는 작은 아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한 채 입시 기간을 보냈다. 그리고 부족한 돈이나 닥쳐올 미래같은 것들에 대한 많은 고민을 안고 있었지만, 네 식구가 함께 유럽 여행을 가자라는 위시 리스트를 작성했고, 작은 아이의 대학 합격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나는 우리 가족의 삶이 비너스처럼 아름답게 만들어지기를,
 아내가 샤갈의 그림속 신부처럼 앞으로 더 행복하기를,
내가 하는 일이 승리의 여신 니케의 기운을 받아 더 잘 되기를 소망했다. 
비너스와 에펠탑의 신랑신부와 니케


여행지에서 마주한 풍경과 사람들, 미술품, 건축물, 음식들이 모두다 생생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대부분은 사진과 함께 그리고 이야기와 함께 새겨졌다.우리 네 식구가 언제 또 다 같이 장거리 여행을 할 지 모르겠지만, 그때 여행은 우리에게 살면서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앨범과 지워지지 않는 '행복한'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이후로 이렇게 '또' 잘 살아왔지 않았을까.



--- 아래는 제가 쓰고 있는 글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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