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방송 PD가 되었다.
14년 만에 꿈을 이루었다. 나는 행복한가?
14살이었다. 처음 PD라는 꿈을 꾼 것은.
KBS 1박 2일을 즐겨보던 나는, TV 속 화면에 매료돼 옹기종기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 좋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
외국인 근로자 편'과 '백두산을 가다 편'.
TV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의 눈이 반원을 그리며 위아래로 휘어지며 웃고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엔 꼭 밝아진 표정인 것도 좋았다.
(다리, 허리 등등이 다친 정형외과 병동에서 '제빵왕 김탁구'를 보고 나면, 그다음 날은 꼭 희망차게 재활운동에 임하는 것도 인상 깊었기도 했다.)
그렇게 PD를 쫓았다. 그러면 행복할 것 같았다.
전혀 관계없는 전공을 선택한 덕에, PD까지 오는 길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12년 만에 그 꿈에 가까워지며 14년이 지나 완전히 그 꿈을 이뤘다. 너무 바쁘게 사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말에, 꿈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사람은 꿈이 있어야 행복한 거 아니겠냐며, 어쩌면 단언적이고 무례한 말도 서슴없이 뱉었다.
꿈을 오랫동안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늘 내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시는 엄마가 이 질문을 묻기 전까지
"너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해?"
꿈 바보였던 나는, 당연히 PD가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종류의 프로그램들을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이미 3년 전, 한 번의 경험으로 이 업계의 워라밸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보람찬 일을 한다는 나만의 의미부여와 일이 재밌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가장 심각한 건 수면이었다. 4일 동안 8시간 회사에서 쪽잠을 자거나, 극강의 촉박한 일정으로 6일 간 하루 1~2시간 남짓의 의자에서의 쪽잠은 제작 기간 중 일상이었다. 당연히 주말은 없었다. 허리디스크는 덤이었고.
워라밸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살 수 있는 일정. 지속할 수 있는 스케줄이 필요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이 모든 과정이 행복할 수 있지만, 나는 아니란 걸 깨달았다. 혼란스러웠다. 망망대해 속 폭풍우가 오지만 조그만 돛단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침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전,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시간이 주어지면 생각이 많고 깊어지는 법이라도 있는지, 짧다면 짧은 삶을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2019년부터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인 '행복에 관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세계 각국에서 또래를 만나고, 인터뷰하며 행복의 정의나 조건 그리고 의미 등을 알아가는 프로젝트. 2020년 코로나라는 핑계로 멈췄었던 프로젝트였다.
2024년 이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했다.
꿈 바보였던 나는, 더 이상 꿈이 절대적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다시금 깨달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양의 행복에 대해 알아가며,
내 행복의 모양을 다시 그려보겠다 다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공유하며 따로 또 같이 걸어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