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 -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들어가며 :
마음이 어지럽고 힘들던 시절에 이런 저런 책들을 많이 찾아읽었었다.
이 책은 제목이 내 생각과 너무 잘 맞아서 자연스럽게 고르게 되었다.
프롤로그; 괜찮아, 경험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다 해봤다.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가봤고, 먹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먹어봤다. 만져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 만져봤고,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직접 느꼈다. 그건 엄마, 아빠의 방식이었다. 입술 대신 손과 표정으로 말하는 부모는 몸의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했다. 모르니까 일단 해보고 가보고 만져보고 느껴보는 것. 자연스레 내 삶의 방식도 그리되었다.”(13)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이 아프던 즐겁던 간에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이 더 미련을 갖는 것은 해보지 못 한 것이다. 이런 저런 핑계로 미뤄 둔 일들을 후회하기 전에 시작하고 싶다.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말이다. 그저 읽기만 하고 제대로 생각하고 소화한 적이 없었는데 이 책만큼은 제대로 소화하고 글을 써보고 싶었다.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다름’이 지닌 풍성함은 알지 못했었다.”(16)
차이로 생긴 차별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지만 그 차이로 가진 나의 이점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게된다. 생각이란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내가 갖지 못한 좋은 환경을 원망하면서도, 내가 지금 갖고 누리고 있는 것들은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 너무 숨 쉬듯 당연하게 느끼게 되어버렸기 때문인가 보다.
언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나는 학교 밖에서의 배움을 <로드스쿨러>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로드스쿨러Road-schooler는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학습 공간을 넘나들며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32)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어떻게 더 큰 세상을 만나고 여행했는지에 대한 경험을 [길은 학교다]로 펴냈다.”(33)
난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학교를 자퇴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표면만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을 판단한다. 물론 많은 사람 또는 많이 배운사람들이 정해놓은 것이 정답이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맞는 길을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성격과 기질을 가졌는데 다 똑같이 그 길을 가는 게 맞을까.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너무 다른데 말이다. 그걸 한 가지 틀에 우겨넣는다고 그 사람이 맞는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을까. 인생은 각자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난 내 인생에서 많은 자율권이 주어져서 더 어렸을 때 부터 자유롭게 답을 찾아다니고 많은 시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는 것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36)
이 책에서 말한 언어는 수어 이다. 내가 다양한 언어를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공부하고 표현할 수록 느끼는 것이 있다. 그 표현 방식에 맞춰서 내가 더 자유롭고 나 자신을 더 표현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지
“생각해보면 이게 ‘기본’이고 당연한 ‘디폴트값’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타인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관계 맺음의 가장 기본일 텐데 왜 그리 어렵고 힘든 것일까.”(80)
사람들은 저 마다 개인의 이야기가 있다. 나 보다 잘 살아서 배부른 소리한다. 나 보다 못 사는 데 잘난 척 한다. 이런 식으로 남의 이야기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 다 그 시절에 자신이 있어서 지금의 자기가 있는건데 말이다. 세상에 안 힘들었던 사람이 어디있고, 자신만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그리고 타인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고통을 훨씬 크게 느끼는 게 사람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니까 말이다.
크라우드 펀딩 장학금 마련기
“앞으로 써나갈 글들과 만들어갈 영화가 나만의 성취가 아닌 이 사회를 위한 것이라 믿었다. 그렇다면 그건 내 개인과 부모만의 부담이어서는 안되지 않나.”(87)
“나와 같은 처지에 있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돈이 없다고 공부를 못하고, 유학을 가지 못하고, 작업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사회의 손실 아닐까.”(88)
저렇게 일찍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 멋있다. 나도 내가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 것은 사회적인 손실이라고 믿는다. 아직 세상에 내놓지 못 하더라도 꾸준히 칼을 갈아서 멋지게 내보이고 싶다.
암스테르다머가 되는 법
“여행을 좋아하지만 매번 어려운 일을 하나 꼽자면 낯선 도시에서 숙소 밖으로 첫발을 떼는 것이다.”(97)
이 말에 굉장히 공감했다. 처음 엘에이에 갔을 때,사람들이 밖이 얼마나 위험한 지 아냐면서 왠만하면 택시를 타고 다니라고 했었다. 지금은 그 사실을 안다. 사람 사는 곳은 사람 사는 곳 이라는 것을. 조심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걱정 때문에 움츠러드는 것은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런 잠깐의 생각을 감수하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다.
필름아카데미에서의 첫 주
“서울에서 사는 것은 그렇게 어려웠다. 나도 안다, 나 예민한 거. 엄마도 그렇게 예민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다. 맞다. 그래서 못 살았다, 살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살아내고 싶었다. 민감하고 까다로운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곳이 한국이었으면 좋겠다고 백만 번 생각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119)
나도 한국에서 일어난 말도 안돼는 일들을 나열하려면 끝이 없다. 일년에 한번 정도 방문할 때도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누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여러번 눌러보기도 했고, 그래서 경비실에 얘기하니 경비아저씨가 코웃음 치며 별일 아닌 듯 상대하고 반말로 응대하곤 했다. 옆집 젊은 남성이 조용히 자고 있는 우리집 문을 막 두드리면서 조용히하라고 소리치기도 했었다. 이런 일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 때로 돌아가더라도 정말 입에 담기도 힘든 일들이 일상에서 비일비재했다.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 한테도 너무 흔한 일 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일은 너무 취약하고 어려운 일이다.
이토록 꿈같은 공간
“조교실 벽에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123)
언니랑 함께 봤던 나의 인생 영화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언니가 먼저 얘기해주고, 같이 영화보자고 이것저것 보여주곤 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는데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될 수록 내가 그 동안 못 보던 것들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다.
“여성이며 유대계이자 레즈비언인 샹탈 아커만은 벨기에의 영화학교에 다니다가 열여덟 살에 학교를 자퇴하고 혼자 영화를 만들었다. 첫 영화 <내 마을을 날려버려>의 주인공은 가부장제에 의해 억압된 공간의 상징인 부엌을 날려버린다.”(125)
“영화 <잔느 딜망>은 샹탈 아커만의 첫 영화와 닮은 작업으로 1970년대를 대표하는 페미니즘 영화다. 3시간 21분의 길이를 자랑하는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부엌과 실내, 침실에서 행하는 가사노동을 ‘리얼 타임’ 그대로 볼 수 있다. (127)
“교수 자리가 극히 적다는 건 알지만 다섯 명의 전임교수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학 내에서도 진보적이기를 자처하는 학과였다. 국가에 의한 폭력, 노동, 인권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커리큘럼이 있었지만 여성주의는 다뤄지지 않았다. 여학생이 더 많은 학과 였는데도 그랬다. 대학 내에는 총 여학생회가 없었고 여성주의 동아리, 소모임도 없었다. 그럼에도 다들 서로가 진보적이라고 믿었고 남녀평등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믿었다. 나도 그렇다고 착각했다.”(127)
“다들 예술가는 진보적인 사람들이며 진정한 예술은 그런 것들을 뛰어넘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면 그거 하나 못 참고 어떻게 예술가가 되느냐며 지탄했다.”(127)
내 국적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국적’으로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정체성과 문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131)
“학교의 보수적인 성향과 부딪쳐 중퇴하고 이곳으로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멘토 중 한 명인 샌더 역시 학교를 그만뒀다.”(133)
“학교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학교를 그만둔다’는 것이 생경하고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133)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만난 사람들에게는 굳이 학교를 그만 둔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봐 온 나의 모습과는 별개로, 그저 학교를 그만 뒀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어떻게 판단할 지 알기 때문이다. 가끔 믿는 사람에게 얘기하고는 했는데 나의 약점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런 경험 이후에 이 글을 읽고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자꾸 마음 어딘가가 답답했던 이유도 찾게 되었다. 내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왜 많은 것을 판단해 버릴까 하는 생각에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해온 작업의 맥락들이 이곳에서는 그다지 놀랍고 특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떤 것을 다루어야 하는 걸까. 무얼 가지고 작업해나갈 수 있을까. 관객의 성격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맥락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나의 작업 역시 달라져야만 했다.”(133)
또 다른 환경에서는 학교를 그만뒀던, 어쨌던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문화가 있다. 남들 시선 보다는 그저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곳. 나도 해외에 오래 살면서 다른 사람 시선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다. 한국에서는 화장 안 한 채로 돌아다니는 것 조차 창피한 일로 여겼으니까 말이다.
보라는 보라의 속도대로
“한 동기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말 잘 듣는다며 그 점이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라 했다.”(135)
이 구절에 나도 동의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 그리고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건 지 어느 정도 추측도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해결책 보다는 따듯한 공감과 위로를 원한다. 나 또한 그렇다. 개인의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하는 거지만, 그 얘기하는 순간 만큼은 위로를 받고 싶을테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보라는 보라의 속도대로 성장해나갈 거 고, 중요한 건 보라가 자신의 연구를 해나가는 거예요. 제가 아는 보라는 빠르게 습득하는 사람이니까 여기서도 굉장히 많은 걸 저 나름의 속도로 배워나가겠지요. 저는 그걸 굳게 믿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 끝없는 불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나 보다 잘난 사람들이 많다는 거 안다. 그렇지만 나도 누구보다 잘 살아갈 자신이 있다. 이미 남들 보다 훨씬 못한 시작점에서 지상으로 까지 많이 성장해 왔다. 이 만큼 달려온 만큼 앞으로도 나는 계속 나아갈 거다.
마무리 하며 :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어려운 환경과 많은 힘든 일에도 꾸준히 노력하고 시도한 게 너무 멋있고 닮고 싶다.
나도 삶을 평범하게 걸어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단단하고 곧게 잘 자라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경험과 삶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글을 풀어나가고 싶다. 이렇게 너무 좋은 책들과 한 줄 한 줄 나의 생각을 녹여서 말이다.
2년 만에 다시 이 글을 쓰는데 그 때 그 뜨거운 감정이 아직도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 주고 치료를 받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쓸 때도 굉장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늘 내 못난 모습, 혹은 불행한 과거를 들킬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런 괴리감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런 괴리감에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