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부디,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그의 교만을 보며 내 속의 교만을 응시한다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모멸감? 열등감? 둘 다 일 것이다. 나는 왜 유독 돈을 밝히는 사람을 싫어할까. 아마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전쟁 후 산업이 없던 육칠 십 년대, 아버지는 시골의 과수원을 팔아 도시로 나와 ‘아이스케키 공장’을 했다. 아버지는 공장의 기계를 기술자 없이 직접 관리할 만큼 뛰어난 엔지니어 형이었다. 팔순이 넘은 지금도 인터넷 스핑의 귀재다. 그 시절 근검절약은 몸에 배어 있었고. 돈이 제일 중요해 보였다. 그런 아버지 덕에 별 어려움 없이 잘 자랐다. 그러나 어릴 때는 그런 아버지가 무섭고 싫었다. 해태 ‘브라보 콘’이 나오기 전까지 돈을 많이 벌었다. 


  매일 돈을 자루에 쓸어 담아 오토바이에 실고 농협에 저금하러 갔다. 농협 직원이 “사장님은 뭘 하시는데 이렇게 돈을 자루에 담아 오세요?” 하고 물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책상에는 지폐가 쌓여 있었다. 공장은 기계소리와 여러 일하는 사람과 배달꾼의 거친 대화로 항상 시끌벅적 했다. 가끔 돈 계산이 맞지 않아 아버지는 배달꾼과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기 위해 언성이 높아지곤 했다. 아버지는 불의를 결코 용남하지 못했고 매사 정확해야 했다.


  나는 아버지가 선생님인 아이를 부러워했다. 오빠와 남동생도 그런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둘 다 교육자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공장의 모든 소음과 돈다발들은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 같았다. 지금도 소음에 매우 민감하다. 조금만 시끄러워도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소화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돈이 제일 중요해 보이는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덕에 나는 지금 ‘가난한 선비’가 되어 있다. 그 동안 아버지는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손자들에게 돈을 잘 준다.


  글만 써서 먹고 살 수가 없으니, 명리학을 공부해서 ‘역학연구원’을 하고 있다. 그 일을 한 지도 벌써 십삼 년이나 되어 간다. 그 동안 한 번도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 모멸감이나 굴욕감을 받은 적이 없다. 그들은 내게 깍듯하게 ‘선생님’이라 호칭했다. 사람들에게 명리학이란 ‘통계학’이며, 인생의 ‘네비게이션’이자, ‘일기예보’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해도 ‘광팬’이 많다. 역학이란 그저 선택의 순간에 참고서를 커닝하는 것쯤으로 여기면 된다. 간명지(看命紙)에 사주를 풀어 설명해 주면 답은 그들이 스스로 찾는다. 


  일 년, 열두 달을 풀어주는 ‘신수(身數)’는 기가 막히게 맞다, 고들 한다. 그러구로 난 입에 풀칠하고 산다. 늘 덕담을 한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도 분명 알려주지만, 그 사람 사주의 특징 중 좋은 점을 강조하는 편이다. 나쁜 점도 말해주지만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인간은 영물이라 스스로 안다. 또한 나쁜 운을 만났을 때의 지혜로운 마음가짐이나 태도에 대해 말해주는 편이다. 그런데 십삼 년 만에 얼굴에 화롯불을 뒤집어쓰는 듯한 모멸감을 받았다.  


  구청장을 지낸 남자가 지인(남편이 모 종합병원 병원장의 부인)의 소개로 상담을 왔다. 원래는 남자의 부인이 미국에 사는 여동생 팔자를 알고 싶어 예약을 했는데, 그 남편이 따라온 것이다. 불행한 사람의 사주는 한 눈에 알 수 있다. 물론 굉장히 좋은 사주도 한 눈에 들어온다. ‘아리까리’한 사주는 삶도 ‘아리까리’하다. 


  오십 대 후반인 그 처제의 사주는 불행한 사람의 사주였다. 

  - 이 사주는 두 번 시집가는 사줍니다. 명줄 긴 남자를 만났으면 이혼했고, 명줄 짧은 남자 만났으면 사별할 사줍니다.


  도끼로 한 방에 내리찍듯 그 사주의 가장 특징적인 면을 말했다. 남자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62세부터 운이 바뀌니 그 때까지는 미국에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걸로 상담을 마무리했다. 남자는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처제의 인생을 놀랍도록 잘 알아맞히자, 자신의 사주도 보고 싶어 했다. 내년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만 65세, 남자의 사주는 좋았다. 내년(2017년)은 반반운이다, 대항마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돈이 안 든다면 나가 보시라고 했다. 대운이 살짝 꺾어지긴 했어도 2018년, 2019년은 관운이 있으니 국회의원이 안 되더라도 정부에서 부를 수도 있겠다고 했다.


  남자는 대권주자 A씨나 B씨가 되면 무조건 청와대에 입성할거라고 자신했다. 이름도 묻지 않고 인맥도 묻지 않았지만, 남자는 경남억양을 썼다. 그러나 관상을 쓰윽 본 바로, 하관이 빨리고, 턱이 짧고, 입술이 얇고 작았다. 전체적으로 ‘쭈꾸미상’ 이었다. 속이 좁고 인색해서 자신의 운을 갉아먹을 상이었다.


  아무튼 내 고객으로 왔으니 덕담과 립 서비스로 기분 좋게 상담을 마쳤다. 상담료는 십 만원이다. 근데 그 부인이 만 원짜리 다섯 장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계좌번호를 적어 줬다. 종종 있는 일이다. 상담료는 줄 생각도 하지 않고 먼저 일어나서 현관 쪽으로 나가던 남자는 돌아보며, “뭐야? 얼마야?” 하고 물었다. 부인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오만 원 더 드려야 합니다.” 하자, “오만 원?” 하더니 반지갑에서 사만팔천 원을 꺼내, “이거, 줘!”라고 말했다. 부인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갈듯 한 표정으로 “선생님...” 하며 책상 위에 그 돈을 놓았다.


  나는 아직도 상담료를 직접 받지 못한다. 대부분 단골들은 깨끗한 봉투에 상담료를 넣어오지만, 처음 온 사람들에게 돈을 받을 때는 그냥 책상 위에 두라고 한다.  


  책상 위에는 반지갑에서 꺼낸 만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와 천 원짜리가 구겨진 채 뒤섞여 있었다. 그런 돈은 십삼 년 만에 처음 받아본다. 그 돈을 집어 내 정갈한 지갑에 넣으려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생업’에 종사한 지 십삼 년 만에 처음으로 모멸감과 굴욕감을 느낀 것이다. 돈이 모자라니, 이렇게 드려도 되겠느냐고 물었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뭐야? 내게 돈을 받는다고? 내가 누군 줄 알고 돈을 받아?” 하는, 돈을 줄 때의 그 표정과 말투. 순간 남자는 평소 ‘공짜 접대’만 받던 ‘관료주의’와 남의 ‘사주’나 봐주고 앉아 있는 ‘여자’를 깔보는 ‘권위주의’를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또한 전직 구청장까지 지낸 남자가 ‘지적자산’에 대해 이토록 문외한일 수 있단 말인가.


  그 남자는 공짜로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삼보일배’로 백두산까지라도 기어갈 것이다. 어쩌면 선거는 청렴하게 치룰 지도 모르겠다. 돈이 그렇게 중요하니. 아니면 돈을 쓰고 당선된 후, 그 몇 배의 돈을 긁어모을 지도 모를 일이다.   


  대권주자 A씨든 B씨든 둘 중 아무나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 입성을 자신하니,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할 수 있는 남자인 것이다. 대권주자 A씨와 B씨는 지지층이 완전히 다르기도 하지만 성향도 보수와 진보로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소개시켜준 지인만 아니었으면 분명 한 마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도 있는 지인을 생각하며 그 한 마디를 꿀꺽 삼켰다. “청장님, 그렇게 다른 사람을 깔봐서 정치하시겠어요?” 혹은 그냥 단호하게 “은행으로 입금하세요.” 라고 했었어야 그 ‘쭈꾸미상’의 남자를 바로 잊어버렸을 텐데. 


  지인의 말에 의하면 수십 억 하는 강남의 아파트에 살며 지방에 땅이 엄청 많은 부자라고 했다. 그렇게 돈이 많은 남자는 부인에게 생활비 외는 십 원도 더 주지 않아, 그 부인이 늘 쪼들리며 산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부인의 얼굴이나 차림새에 궁한 티가 났다. 가족보다 돈이 매우 중요한 남자들은 도처에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 욕구를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일 이 단계는 생존과 안전에 대한 욕구이며, 삼 단계는 성취와 실적의 욕구이며, 사 단계는 존중과 공감의 욕구이며, 오 단계는 베품의 욕구라 했다. 그는 삼 단계에 머물러 있는 ‘미숙인간’인 것이다. 오 단계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위정자(爲政者)라면 ‘존중과 공감의 욕구’까지는 가 줘야 하지 않을까. 정치하는 사람이란 뜻의 ‘위정자’가 난 늘 ‘위선적인 정치를 하는 인간’으로 읽힌다.


  난 물건 값을 잘 깎지 않는다. 그 상인이 내게 바가지를 씌웠다면 그 사람의 ‘업(業)’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야박하게 값을 깎아서 물건을 산다면, 상인은 어쩔 수 없이 물건을 팔기는 하겠지만 그 사람의 ‘원(怨)’을 사게 된다. 그러면 내 ‘업’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카르마를 짓고 싶지 않다.   


  한 이틀 쯤 그 남자는 나를 불편하게 했다. 결론은 ‘내 탓’으로 돌렸다. 언젠가 나도 그 남자처럼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줬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는 나의 스승이다. 그의 교만을 보며 내 속의 교만을 응시할 수 있었으니. 이글을 빌어 과거에 알게 모르게 모멸감을 준 모든 이들에게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부디,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작가의 이전글 [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인생이란 무대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