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27살 여자가 사장과 맞담배 필 각오
* 저는 27살 때부터 언더그라운드 잡지사의 팀장, 아트디렉터였습니다. 그 실화이자 일화로서 소개합니다
ㅡ.
벌써 며칠째다.
드디어 밤을 새워 전체페이지 교정교열을 완료하였다. 3교 4교 5교 빨간 글씨들을 검정 글씨들로 기자들과 지워나간 시간들이다. 최종 디자인데이터를 출력소에 넘기기 위해 외장에 데이터를 저장한다.
기자들은 교정교열이 끝나고 지하철 첫차가 다니지 않는 시각이라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권력의 서열로 긴 소파는 기자팀의 남자팀장의 차지였다. 지 침대처럼 하고 누워 자고 있었다. 무좀 걸린 발을 꺼내놓고서.
디자인팀에는 팀장인 나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나는 항상 마감에서 최후 생존자가 되어야 했다.
언더그라운드 잡지사 직원은 여러 가지 일을 다 해내야 한다. 월급이 밀리는 것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침 8시가 넘어 9시가 되면 출력소 과장이 와서 데이터로 저장한 이달 월간매거진 꼭지별로 모아둔 jpg이미지들, 그리고 pdf 데이터, 인디자인들을 20*15*, 8센티 두께의 외장하드를 들고 와서 카피해 갈 것이다. 나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잘 부탁한다는 말을 서로 전하며. 인쇄감리 날짜만 알려주고 떠나면 이번달 잡지 마감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3일간 마감휴가를 맞는 순서다.
새벽 4시 30분. 다들 지쳐 잠이 든 시각, 잠시 여유가 있었다. 커피를 타왔다. 새벽이라 곧 아침이 온다.
통유리 밖으로 태양이 다시 내게 다가와 "수고했다'라고 말을 건넬 것이다.
"멋지고 훌륭하고 잘 해냈다"라고 웃어주고 나를 쓰담쓰담해 줄 것이다.
더 업그레이드된 스스로를 보며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이른 아침 눈부신 태양은 환하게 미소 지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항상 지켜보고 있었기에,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를 이른 아침 태양은 내게 또 전해줄 것이다.
출력소 과장이 왔다 갔다. 인쇄감리 날짜는 가서 알려주겠다고 했다.
보통은 데이터를 넘기고 1~2일 정도면 필름출력을 하고, 하리꼬미 작업이 제판실에서 있었다. 그 후 소부작업을 하고 인쇄판, 즉 소부판 CMYK 판이 인쇄소에 도착해서 그걸 인쇄기계에 걸면 인쇄가 시작된다.
나는 팀장이라서 가능하면 내 눈으로 감리를 봤기에 그 공정은 자세히 알고 있었고, 인쇄날짜가 잡히면 회사에 보고 후 인쇄소에 들고 갈 음료수, 보통 박카스 1박스를 가지고 인쇄소인 충무로로 갔었다. 우리 회사가 돈을 주고 하청을 주는 일이라 엄밀히 갑이지만, 인쇄소 기장들과 직원들이 모두 남자라서, 여자인 내가 꼼꼼하게 볼 테니 미리 양해를 구한다는 그런 의미이기도 했다. 또한 컴작업에서 실수를 인쇄소 기장님이 발견하고 인쇄사고를 막은 경우도 있기에 서로 상부상조하며 파트너십의 유대를 갖는다. 스텝이란 이유로.
그런데 몇 달간 잡지가 발행이 늦어진다며 광고부 부장이 투덜댔다. 무엇보다 인쇄가 자꾸 다른 매체에 밀리고 있었기에, 이번 달는 특히 인내심의 한계로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설마 이번에도 우리 잡지 인쇄가 다른 업체의 인쇄물에 밀린다면 가만있지 않으리라 작심하고 있던 터였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팀장, 내가 과연 어떠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왔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보다 그렇게 담판을 짓던 내가 나는 좋았다.
머라고요? 또요?
이렇게 인쇄날짜가 밀릴 거면
우리 팀이 왜 밤새워서 마감을 지켰습니까?
거기 사장님과 내가 담판을 짓겠습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네요. 도저히,
내가, 지금 인쇄소로 가겠습니다.
인쇄소 사장님과 대화하겠습니다.
데이터를 송고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우리 잡지가 인쇄가 걸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머 뻔했다. 인쇄소가 우리 거 일 대신
다른 업체 일을 한다는 것을.
어딘가에서 날아온 담배냄새를 개코처럼 알아내는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어쨌건 지금 담배를 골라야 하고, 넘사벽 기센 애로 보여야 한다.
처음엔 말보로 맨솔(박하향)을 들었으나, 이걸로는 코웃음 칠 인쇄소 사장님과 그 직원들이 떠올랐다.
순하게 보이면 안 되니까요.
이대로 갔다간 애송이 취급할 테고,
나는 가서 판을 뒤집어야 해요.
나의 분노는 그런 것이었다.
물러서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야 했다.
ㅡ.
인쇄소는 필동면옥 근처에 있었다.
3층으로 가니 과장이 경색된 듯 인사를 하더니 대회의실로 안내했다. 사장님을 모셔오겠다고 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말보로 레드 담배와 라이터를 한 묶음으로 테이블에 꺼내놓고 사장을 기다렸다. 사장보다 먼저 들어온 상무가 그걸 보고는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작전은 일부 성공한 것 같았다.
나를 아주 기센 애로 봐주길 바랐는데,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자가 담뱃갑을 어른 앞에 올려놓고 있느니 속으로 무슨 욕을 했을지. 바라던 바였다.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키가 작은 사장이 들어왔다.
이 회사는 상무도 키가 작고, 사장도 키가 작고... 어쨌건 내가 174센티인데 나보다 작으니 이것도 뭐 내가 유리했다. 겉으로야 뭐 장군 같으니. 흐.
사장이 앉더니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 나를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요. “
"사장님, 보고는 받으셨나요? "
"인쇄가 늦어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이렇게 업체 담당자를 처음 만나네요."
"사장님,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우리 회사 총무팀에 들러서 인쇄소와의 결재내역을 확인하고 왔습니다. 인쇄소에 결재가 한 번도 밀린 적 없이 현금으로 클리어하게 해 드리는데, 왜 우리 잡지가 다른 업체보다 인쇄가 번번이 밀리고 있나요? 아직 우리 회사 대표님에겐 말씀드리지 않고 제가 여기 왔습니다. 잡지 마감 맞추려고 기자들과 제가 얼마나 밤새웠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그 데이터가 인쇄소에서 썩고 있어요. 지금쯤 서가에 배포되어 독자를 만나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몇 번째이며,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우리 잡지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아직도 책이 안 나오다니요?! “
책상 위에 올려진 담뱃갑을 두들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전적인 방법은 고전적으로 해야 씨가 먹힌다.
인쇄소 거친 남자들을 상대하는데, 고상 떨어봤자 호구 잡히기 일쑤기 때문이다. 또한 객관적으로도 인쇄소가 잘못한 게 명백했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릴 보태는 순간, 여기 직원들이 다 보게끔 나의 분노로 뒤덮을 테니까.
사장이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상무를 부른다.
상무가 귓속말로 뭔가 말한다. 이번이 처음 밀린 게 아닌 걸 몰랐나 보다.
"몇 번 밀린 거 같은데, 너무 미안합니다. 다음에는 이런 일 없도록 조치를 해둘게요. “
"사장님, 인쇄기계가 풀로 차서 인쇄를 맡을 수 없다면 맡지를 마세요. 저희 독자와 한 약속을 지키려고 한 달 전부터 준비한 결과물입니다. 또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업체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저희꺼 걸어주세요. 전페이지 인쇄되는 거 감리, 보고 가겠습니다. 더는 양보 못하겠습니다. 날밤을 또 세우더라도 우리 거 찍는 거 제가 끝까지 다 보고 가겠습니다. “
"그 부분에 대해서 정말 미안하고, 여기 권상무도 같이 들었으니 인쇄소 일정을 특별히 신경 쓰라고 할게요. 먼 길 왔는데, 차 드세요. 인쇄, 바로 걸라고 할게요. “
담배는 피울 일이 없었다.
참나, 담배가 아군이라니...
그런데 몇 달 후 그 인쇄소 사장이 내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였다. 자기네 디자인팀장으로 오지 않겠냐며.
나는 그 사실도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연장자 분께서 제안하신 일에 전화로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찾아뵙고 정중히 거절하였고, 또한 그 이유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담뱃갑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목소릴 높이던 27살 여자팀장인 내게 왜 입사 제안하셨는지를.
그때 홍팀장은 거래처로 본다면야 일하기 껄끄러운 상대, 같이 일하기 싫은 상대가 맞지요. 그러나 반대로 그 회사입장에서는 일을 잘하는 직원인 겁니다. 자기 회사를 위해 거래처에 그렇게 담판 지으러 갈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그런 직원을 내 직원으로 둔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믿고 일을 맡겨놓을 수 있고. 그래서 제안한 겁니다."
27살에 나는 그런 생각은 못해봤다. 나를 불편하게 한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정말로 도량이 큰 '대표'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담판을 지으러 갔던 나도 대단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아닌 아군으로 쓰고 싶다는 발상의 전환과 논리는 굉장히 합리적이었다.
또한 그런 안목 있는 분을 만난다는 것이 내 인생에서 큰 가르침이고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함께 일하지 않아도 그런 대단한 분들의 모습을 통해 내가 어떤 리더로 성장해야 하는지를 느끼게 해 준 계기였고 참 어른이셨다.
그런 고마움에도 나는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이유는, 나름대로 내가 정한 원칙이 있었는데 충무로에서 디자인을 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 당시에 나는 굳이 세부류로 나누어 생각을 했었다. 충무로 스타일/ 강남스타일/ 홍대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중 충무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홍대의 키치한 분위기가 나랑 맞지가 않았다.
그래서 충무로와 홍대는 이력서조차 내질 않았다. 가능하면 디자인회사를 강남 쪽으로 선택하려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선택의 폭이 좁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주 틀린 생각이 아닌 것은 밑에 팀원을 뽑아서 일을 시켜보면 어디서 일을 해왔는지 그 스타일이 묻어나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라선 그 스타일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굳이 예를 들어보면, 보그VOGUE 잡지도 같은 영어라도 영국판. 미국판이 디자인적 느낌이 다르다. 특히 국내잡지로 이해를 시키자면 중철지와 라이센스지의 차이랄까. 그 당시 내가 어떤 디자이너로 성장을 해야 하고, 어떻게 보고 배워야 하는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다는 걸 알지만 그 좁은 경쟁을 뚫어야 내게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의 그 인쇄소 사장님과의 담판_ 말보로 담배 한 갑과의 일화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남겼다.
회사의 대표, 리더는 인재를 골라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과 필요에 따라서 적에게도 과감한 악수를 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조직을 이끄는 '대표'라는 자리와 '어른'의 모습인 것을 한 수 배운 의미 있는 일화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여자라고 우습게 볼 수 있었던 상황을 우세하게 이끈 심리적인 전략으로 임한 나에게도 칭찬하고픈 일화다. 특히 월간매거진은 몇 달 전에 기획하기도 하고 수많은 스텝이 함께한 작품인데, 발행일을 지켜 서가에서 독자를 만난다는 것은 신념과도 같은 데드라인인 것이다.
마감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면 책상 위에 인쇄되어 나온 매거진이 마치 나의 분신처럼 그토록 좋을 수가 없었다. 수도 없이 사표를 가슴에 품고, 원고 밀리고, 급여 밀리고, 4대 보험 안되고, 또 밤을 지새우는 언더그라운드 잡지사의 환풍기 소리가 매번 그렇게 힘겨웠지만 그 순간을 이겨낸 나를 향해 눈부시게 웃던 태양과 더 잘 만들지 못한 미안함이 섞인 감정은 다음 달에 더 잘해야겠다는 열정과 내가 한 단계 더 멋지게 성장해 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희열이었다. 또한 일을 향한 지극한 나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