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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능 May 20. 2024

자연스럽게 시선처리하고 지나가기(3)

K-배려가 절실했던 나의 덴마크 산부인과 경험담  

유럽인들의 몸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확실히 한국보다 특히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 하지 않는데서 나도 덩달아 누릴 수 있는 해방감. 상당히 코코볼 유두인 나는 거의 속옷을 착용하며 다니는데 정말 가끔은 속옷 없이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볼 때가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며칠 전 몰도바 친구집에 초대를 받았다. 집에 들어오니 큰 구멍이 듬성듬성 보이는 러프한 느낌의 니트나시를 입고선 직접 만든 거라고 자랑을 했다. 


"직접 만든 옷이야~ 어때?"

"(흠... 니플이 좀 보이긴 하는데) 예쁘다 잘 만들었네~"


유럽 여성의 탑리스 문화를 동경하면서도 약간의 민망함은 솔직히 피할 수 없다. 조금 보여도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함과 시크함 보다는 조금이라도 보여지면 민망해야 하고 가릴 곳은 가릴줄 아는 예민함에 대해 더 배울 기회가 많았다. 나의 민망함과 호들갑은 본능에 가깝다. 물론 유럽에 살면서 조금씩 학습이 되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남들이 어떻게 입던지 벗던지 딱히 신경 쓰이지 않지만 아직도 내 친구가 앞에서 속옷 없이 보일랑 말랑 패션으로 앉아 있으면 솔직히 아무렇지 않진 않다. 


사람 몸은 그냥 몸인거다! 응.. 알고 있지만 조금 민망해~ㅠ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개방적인 태도가 쿨하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 엄마 따라서 산부인과에 갔을 때 진료실에 있던 여러 장의 성병 걸린 생식기 사진을 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성생활 잘못하다 이렇게 될 수 있다고 하셨고 나는 성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청소년처럼 보이고 싶었다. 


"아~ 그래서 섹스할 때 콘돔을 껴야 하는 거네요!"


의사 선생님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칭찬하셨고 나는 내가 의도한 대로 보인 거 같아서 뿌듯했었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달랐다. 집에 가는길에 뭔가 언짢은 표정에 말이 없더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병원에서 굳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한거야? 콘돔같은 얘기하면 마치 해본 애처럼 보이잖아. 섹스같은 말은 결혼전에 꺼내지도마!"


(엄마는 내가 성교육을 잘 받은 청소년이 아니라 자칫하면 성에 대해 이미 해봐서 너무나도 잘 아는 청소년으로 보일까봐 굉장히 우려가 됬던 모양이다.)


한 달 전에 산부인과 진료를 볼일이 있었다. 덴마크에서는 처음 병원에 가는 일이었다. 도착하고 나서야 내 주치의가 남자인 게 생각났다. 나는 산부인과 진료를 남성의사한테 받아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는 내가 필요에 따라 선택해서 병원을 가기 때문에 항상 여성의 산부인과를 골랐었다. 뭔가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예상한 대로 의사가 몇 가지 물어본 다음에 직접 검사를 해야겠으니 뒤에 있는 진료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그러니까 콘돔을 껴야 하는군요~'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던 그때의 나는 부끄럽다며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결국 우물쭈물거리다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한 때 섹스라는 단어 사용을 금지받았던 사람입니다... 탈의실도 없고 진료용 치마도 없는 상태에서 가림막 커튼조차 없는 의자에 앉아 남성의사에게 받는 진료라니 제가 하기엔 너무 민망한 일이라구요..'


"한국에서 왔고요. 남자의사 처음이고요. 그래서 긴장되고요.."


의사 선생님은 걱정 말라면서 밖에 여자 간호사가 있으니 원하면 부르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는 환자 편의를 위해 여자 간호사가 대리 진료도 하나? 하긴 무슬림 여성인구도 꽤 되는 나라니까 여기도 나름의 배려가 있나 보다!'라고 내 멋대로 해석하고선 좋다고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내 예상과 다르게 여자 간호사는 방에 들어와서 그냥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니까 진료는 너무나도 당연히 의사가 보는 거고 간호사는 그냥 나 마음 편하게 가지라고 응원하러 온 것... 


'여긴 덴마크다. 그냥 빨리 벗고 끝내자' 결국 눈 질끈 감고 주섬주섬 벗은 다음 쭈뼛쭈뼛 의자에 앉았다. 


어디서 왔어요? 덴마크 병원은 처음인가 봐요? 덴마크엔 언제 오셨나요? 


앉자마자 여자의사로 바꿔야겠다 솔직히 이건 두 번 할 짓이 못된다고 속으로 생각없이 남자의사로 등록한걸 후회 중인데 여자 간호사 분이 계속 아이컨택을 시도 하면서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나의 심신 안정을 위해. 내가 이런 서비스를 원하고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란 건 아니지만 아무튼 신경 써주셔서 감사했어요~^^;


이제는 탈의실이 있고 치마가 제공되고 끝나면 수고했다며 질정까지 넣어주는 대한산부인과의 섬세함이 결코 당연한 서비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게 당연하지 않은 곳의 진료는 그 어떤 것도 나의 민망함을 가려주지 못했다. 심지어 하필 그 전날 브라질리언 왁싱을 해서 가려줄 털조차 없었음.


친구의 니플이 솔직히 조금 불편하고 남자 산부인과 진료를 앞두고 민망한 마음에 호들갑 떠는 나는 아직 유럽 감성을 따라가기엔 멀었나. 이제는 그냥 내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구간에서 머물겠다. 더 개방적 여질 필요가 있나? 아무도 강요한 적도 없다. 니플이 보일랑말랑 하는 시스루 니트 나시는 다른 사람이 입으면 된다. 그리고 그 사람한테 내 주치의 소개 해주고 나는 여자 의사로 바꾸면 된다. 


-문제 해결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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