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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 Jun 19. 2024

이름을 지어야 꽃이 된다

온라인 글쓰기(10)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저녁.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구(꽃)는 글을 쓰는데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내가 쓰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적확하고 명확한 이름을 짓는 것이 의미 전달에 핵심일 때가 많아서다. 전라도에서는 '거시기'만 넣으면 다 알아듣는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지만, 모호성으로 글에 재미를 부여하는 건 노련한 글쟁이들도 쉽지 않은 영역이라고 들었다. 기본적으로는 모호성을 탈피할수록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일례로 2024년 6월 1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법 개정안,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 등 4개의 법안이 통과됐다. 여기서 방송법 개정안,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을 특정 언론은 '방송4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다른 언론은 '방송3+1법'이라고 했다. 또 다른 곳은 '방송3법과 방통위법'이라고 불렀다.

  사실 방송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은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 회기가 만료되면서 폐기됐다. 민주당은 이를 22대 국회에서 재발의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법(방통위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했다. 따라서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폐기된 방송3법과 새로 발의된 방통위법을 명확히 반영한 이름은 '방송3법과 방통위법'이다. 하지만 독자가 법안에 대한 과거사를 전부 알아야할 필요가 없는 글이라면 '방송4법'이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글을 읽을 독자가 이미 이런 상황을 다 아는 전문가들이라면 '방송3+1법'으로 표현해도 의미가 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름짓기'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뜬 건 취재 경험이 쌓이면서다. 2015년 5월 서울 중랑구 중랑천변에 5km가 넘는 장미터널이 생겼다. 약 10년간 조성한 것인데 장미가 한창 피는 5월이면 이곳에서 장미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축제 주최기관인 중랑구청은 이 축제가 커져서 중랑구 상권 회복에 기여하길 원했다. 이에 2015년에 축제전문가 류재현 감독이 투입됐다. 그는 하이서울패스티벌, 홍대 클럽데이(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한 장의 통합 티켓으로 홍대 앞의 클럽들을 자유롭게 오가며 즐길 수 있는 이벤트) 등에 관여했다고 한다. 류 감독이 진행한 2015년 장미축제에는 15만 5520명이 다녀갔다. 다른 해의 31배가 방문했다. 류 감독의 작업 중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라고 본 것은 축제 이름을 '중랑천장미문화축제'에서 '서울장미축제'로 바꾼 것이었다.

  그 전 이름이 중랑천에 국한된 문화 이벤트를 뜻한다면, 류 감독의 서울장미축제는 장소적인 개념을 중랑천에서 서울로 확장하고 문화 이벤트보다 장미 자체에 집중한 이름이었다. 서울의 어떤 곳에도 장미를 테마로 한 대형 축제가 없다는 점에서 서울의 대표 축제라는 의미를 넣은 것 같았다. 실제 축제의 내용도 1000만 송이 장미가 연출하는 5.15㎞의 장미 터널에 집중했다. 성인의 평균 걷는 속도가 시간당 4~5km이니 거의 1시간 동안 장미터널을 통해 걸을 수 있는 셈이다. 그는 콘크리트 도시에서 식물만큼 사람의 눈과 마음을 끌고 움직이는 것은 없다고 했다. 장미가 사람들을 유인할 가장 큰 무기이며, 그것을 돋보이도록 이름을 바꿨다는 것이다.

  반면 2015년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에 공원을 만들겠다며 공사명을 ‘서울역 7017 프로젝트’라고 이름 지었다. 7017은 '1970년 만들어진 고가가 2017년에 재탄생한다', '1970년 생긴 차량길이 17개의 사람길로 바뀐다', '1970년에 만들어진 17m 높이의 고가다' 등의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시는 보행환경의 향상, 남대문시장 활성화, 도시재생 촉진 등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서울역 7017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그런 뜻을 유추하기는 어렵다. 현재 이 도로의 이름은 '서울로7017'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서울역고가도로공원이라고 부른다.

  이 이름이 그리 적확하지 않다는 것은 이 고가 공원의 벤치마킹 모델인 ‘하이 라인 파크(High Line Park)’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이 라인은 미국 뉴욕 시에 있는 길이 1.6km 정도의 공원이다. 원래  이 곳은 맨해튼의 로어 웨스트 사이드에서 운행되던 고가 화물 열차 노선이었는데 자동차와 지하철이 발달하면서 폐허로 변했다. 사실 뉴욕시는 이를 철거하고 재개발을 하려 했는데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내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 공원으로 재이용했다. 폐허였던 근처 부동산은 개발이 한창이고 죽었던 상권도 크게 살아났다. 이 공원의 이름은 고가 화물 열차 선로의 이름인 '하이 라인'을 그대로 차용한다. 자생한 이름만큼 부르기 편하고 명확한 이름이 없어 보인다. 

  2015년 메르스가 한창일 때 지자체들은 관련 용어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메르스 환자와 접촉해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이들 중에 임의로 외출을 하는 사람을 언론은 ‘무단이탈자’라고 표현했다. 사실 범죄자의 느낌이 난다는 점에서 지자체는 ‘임의이탈 시민’으로 불러주기를 바랬다. 또 여러 사람에게 메르스를 옮긴 사람을 언론은 ‘슈퍼전파자’라고 표기했는데, 과장된 느낌이 있다는 점에서 ‘다수전파 환자’로 표기하기를 원했다. 이외 언론은 기사마다 ‘메르스 신고전화번호’를 안내했지만 메르스 발병이 신고할만한 일은 아니라며 ‘메르스 상담전화’로 바꿔 달라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이름 변경은 꽤나 합리적이었지만 사람들은 예전대로 불렀고, 언론도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5년 5월 20일에 메르스가 발생하고 한 달간 정부나 언론이 함께 쓰던 용어를 단숨에 바꾸려니 오히려 독자나 시민에게 혼란을 주기 쉽다고 본 셈이다. 그래서 용어나 표현은 처음부터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르스가 너무 불안을 주고 있으니 ‘신종변형감기’ 정도로 바꾸자는 아이디어가 정치권에서 나왔지만, 메르스가 창궐해 사망자가 나오는데 외려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이름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3년 8월에는 정부가 소득세를 올리겠다고 해서 시끄러웠다. 복잡한 세금 문제이니 내용은 생략하자. 문제는 정부가 소득세를 인상하는 대상을 중산층 이상으로 잡았는데, 그 기준이 총급여 3450만원이었다는 것이다. 중산층 이상이 세금을 더 내고 저소득층이 세금을 덜 내는 구조를 만들자는 소득세 인상 취지에 반대하는 이들은 적었는데, 외려 수익이 3450만원 보다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을 모두 중산층으로 본 기준이 논란으로 불거졌다.

  정부가 그저 총급여 3450만원 이상인 사람에 대해 차등적으로 소득세를 인상하자고 발표했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중산층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국가나 시대에 따라 다르다. 어떤 국가에서는 2000cc 차량을 갖춘 사람을, 다른 나라에서는 문화적 교양을 갖춘 사람을 중산층이라고 지칭한다. 경제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사회, 문화, 경제, 정치적 개념이 골고루 반영된 명칭이다. 정부가 중산층을 소득세 인상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하는 순간, 소득세가 인상되는 총급여는 중산층의 시작점이 됐다. 하지만 어떤 이는 1억원의 연 수입에도 본인을 중산층이라고 여기고, 다른 이는 같은 소득으로 고소득층으로 느낀다. 

  정부는 후에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빼고 소득세 인상의 기준을 총급여 5500만원으로 상향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중산층 증세의 문제를 시정하라 했으니 잘못된 용어의 선택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용어를 잘못 선택한 예는 또 있었다. 청와대 고위 관료가 이 와중에 ‘거위깃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가 체면을 구겼다.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도록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 바람직한 과세 원칙이라는 의미로, 세금을 많이 걷으려고 무리하게 세금을 걷다가는 국민이 크게 저항한다는 뜻이다. 사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적 경제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이를 전달하는 해석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국민을 아무것도 모르고 세금만 내는 거위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 역시 용어 선택의 문제였다. 

  이외 콘텐츠가 담고 있지 않은 의미를 억지로 넣은 제목이나 이름도 경계해야 한다. 실제 한 기관은 단순히 홍보 사진을 찍으러 가는 재래시장 탐방에 대해 ‘시장 상인과 진솔한 대화’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냈다가 호되게 혼났다. 경제여건이 안 좋은 상황이어서 몇몇 기자가 보도자료 제목을 보고 현장에 따라갔더니 서민경제를 살려내라면서 항의만 줄기차게 하는 상인들에게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모습만 봤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는 2015년 8월 ‘가방끈 짧은 치매 증상 할머니, 시인(詩人) 되다’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 곳의 치매지원센터가 시인 교실을 열었고 이 수업을 들은 치매 증상이 있는 할머니들이 시를 지어 전시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좋은 미담이지만, 실제 이 수업은 치매예방을 위한 과정이었다. 즉, 치매 증상이 있다는 표현은 과장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수업에 참여한 이들은 치매가 걱정돼 수업을 들었을 뿐 본인이 치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이 보도자료대로 기사가 나갈 경우 할머니 시인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도 항의할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이 보도자료의 제목은 “치매 막으려 쓴 시가 작품이 되었네” 정도였어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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