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글쓰기(6)
‘세상 모든 것은 기사다’
20년차 정도 된 기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수많은 기사를 썼고 또 남의 기사를 수많이 읽었으니 당연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정도 경륜이 되어도 사실 신문 지면에 내놓을 괜찮은 수준의 '쓸 거리'를 지속적으로 찾기는 참 어렵다. 특히 남의 글을 워낙 많이 읽다보니 특별한 소재나 특별한 시각을 찾기가 더 까다롭다. 소재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취재다. 하지만 이 정공법으로도 내 기준에 맞는 쓸 거리를 얻지 못할 때가 적지 않다. 질문이 허접할 수도 있고, 하필 고른 취재원이 답변을 거부하거나 성의없는 답변만 늘어놓을 수도 있다. 또 온라인 글쓰기를 하는 이들이 기자처럼 매번 자기 시간을 내서 취재를 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소재 고갈에 대응하는 나름의 소소한 방법들을 나열해본다.
소재가 고갈됐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하는 방법은 'NO도 기사가 된다'는 나름의 격언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이게 내 시작점이다. 통상 글의 소재를 찾을 때 뭔가 쓰고 싶은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상대에게서 'YES', 즉 긍정을 기다린다. 일례로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용의자로 예상되는 인물이 포착됐다. 열심히 쫓고 취재했는데, 이 사람은 범인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 단계에서 글을 포기한다. 다른 용의자가 포착될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예상이 틀린 것, 즉 'NO'를 소재로 글을 쓴다. 내 예상은 왜 틀렸지? 왜 범인이 아닌 사람이 왜 용의선상에 오른 거지? 험상 궂은 외모 때문인가? 외면만 보고 섣불리 범인라고 믿는 세태 때문인가? 실제 기자들은 취재원에게 질문을 던진 뒤 ‘그게 맞다’는 대답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선배들은 ‘아니다’라는 답도 기사라고 알려준다. 결국 오감을 열고 글의 소재에 제한을 두지 말라는 의미다. 언론계에는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기사가 되지 않아도 사람이 개가 물면 기사가 된다’는 고전 같은 말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개가 사람을 문 사건에 더 많은 이들이 공분하며 관심을 보인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시각에 따라 좋은 글의 소재는 바뀐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글의 소재나 주제가 틀에 박혔거나, 너무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기승전결을 세워놓고 계획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가끔은 틀에서 벗어나 아무 거나 써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무의식 속 무언가가 나도 모르게 꿰어 나올 수 있다.
다음으로 나는 소재가 달리면 엉뚱한 상상을 한다. 야구에서 3할이면 우수한 타자인데 반대로 보면 그는 10번 중 7번이나 아웃을 당한다. 10번을 도전해 3번만 좋은 소재를 찾아도 훌륭한 글쟁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상상을 수없이 쓰레기통에 넣다보면 나름의 소재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국회를 한 번 떠올려보자. 국회 내 도로는 차가 빠르게 다니는 2차선 도로인데 왜 신호등이 없지? 정쟁만 일삼는 화상들이인데, 혹시 다 학벌 높은 분들이라고 교통법규를 알아서 지킬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사실 도로교통법상 시설 내 도로까지 경찰이 관리할 여력이 없어서 신호등을 두지 않은 것이지만 나만의 논리를 무작정 만들어 보는 것이다. 국회 앞은 각종 농성으로 시끄러운데 국회 안은 왜 이리 고요하지?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은 건가?
2008년 3.1절에 기사 소재가 없어 고민하는데 우연히 11명의 장관내정자가 임명됐다는 다른 보도를 읽었다. 질문은 시작됐고 내가 던진 많은 질문 중 하나는 '이분들은 집에 태극기를 걸까?' 였다. 엉뚱한 질문으로 장관 임명자 자택들을 찾아 태극기 검사를 했고, 결과 5명이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았다는 기사가 나갔다. 당시 부자내각으로 불리며 오블리스 노블리주가 강조되던 때였기 때문에 기사는 호평을 받았다. 또 언젠가 한 고위직 인사는 한 때 유행하던 차량 홀짝 운행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이틀간 그가 진짜 홀짝제를 지키는지 확인해봤다. 그가 정직한 사람일 확률이 훨씬 크니 헛수고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차량번호 끝자리가 짝수인 차량과 홀수인 차량 등 2대를 번갈아 운행하는 편법을 썼고, 이 기사 역시 반향이 컸다.
글을 쓸 소재가 없을 때 글을 쓰는 여러 방법을 떠올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인터뷰, 르포, Q&A 등으로 쓸 수 소재가 있을까하고 글의 형식을 먼저 정하다보면 갑자기 실마리가 풀릴 때도 있다. 일례로 구청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수확물을 기부하는 경우는 꽤 많다. 국회 옥상에는 양봉장도 있다. 역시 꿀을 기부한다. 하지만 구청 옥상에서 텃밭을 일구는 사람을 누굴까. 그래서 한 구청 공무원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구청 작물들, 서리해 가세요"라고 말했다. 독거노인들이 지나다 마음껏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구청의 옥상 도시농업과 작물 기부는 구정 홍보지만, 실제 작물을 키우는 구청 공무원 인터뷰는 좋은 글의 소재가 됐다. 어느 날 타원형 방울토마토를 먹다가 동그란 방울토마토가 있는데 왜 타원형을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그 이유가 기사가 될까 싶었지만 개발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동그란 모양의 방울토마토의 경우 껍질이 과육과 쉽게 분리돼 이에 끼고, 맛도 달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수백 번의 교배 끝에 타원형을 만들었다고 했다. 역시 네이버를 찾기보다 인터뷰로 신품종 농작물 개발의 뒷얘기를 접근한 사례다.
당대의 대형 이슈는 당연히 글감이 되니 이런 것들을 탐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식이 글의 소재를 찾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느낀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글을 썼거나 쓰고 있을테니 나만의 시각을 담은 차별화된 소재를 뽑아내는 게 쉽지 않아서다. 또 현재 진행 중인 대형 이슈는 사안의 결과가 어디로 갈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지금은 맞지만 나중에 틀린 글을 쓰게 될 확률이 높아 데일리 뉴스가 아니라면 더욱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소재 고갈에 대응하는 마지막 방법은 인터넷 서핑이다. 생각지 못하는 세밀한 분야까지 연구소들이 있고, 연구자료나 통계자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들이 많다. 이런 자료들은 생각이나 철학을 담기 보다 자료 자체로 제공된다. 정치적 해석은 자료는 물론 제공 기관의 신빙성과 중립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런 원자료 혹은 가공자료들을 읽다보면 관심 있는 소재가 떠오른다. UN부터 통계청, 국회입법조사처는 물론 대기업들의 경제연구소나 각종 학회까지 자료는 늘 방대하다. 문제는 진주을 꿰어야 할 실, 즉 내 생각의 크기와 깊이이고 이런 이유로 글을 잘 쓰려면 다른 좋은 글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