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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만 Jul 01. 2024

여순의 삶

너라도...


너라도 .../116x91cm/콘테/2024


보성에 살았던 우리 집은 넉넉했고 나 또한 고등교육을 받았다. 중신아비가 우리 집에 와서 여수에 집안 좋고 인물 좋은 신랑감이 있다고 다리를 놓았다. 신랑 집안과 우리 집안은 서로 비슷한 처지라 어렵지 않게 열여덟에 결혼을 했다. 


신랑은 여수군에서 일하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1948년 10월 19일 여순이 나서 그는 인민위원회와 함께 여수군 일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 군 직원들은 상황이 험악해지자 나오지 않거나 조용히 사라졌다. 그는 면사무소를 돌아가게 할 수 있는 필수 인원이었다. 그렇게 7일 동안 여수 인민위원회 행정을 맡아서 일했다. 그는 10월 27일 반란군에 부역했다는 혐의로 진압군에 잡혀 총살당했다. 이후 군경은 우리 집에 계속 오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봉산동에서 몇 채 없는 기와집 이어서 눈에 띄었고 남편의 형제자매도 많아 시댁에서도 점차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시부모님은 남편이 부역 혐의자라 온갖 방법으로 찾아오는 경찰들의 환심을 샀지만 위협은 그치지 않았다. 큰아들을 잃은 시어머니는 나와 그의 형제들까지 위험해질 까봐 내게 친가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먼저 운을 떼셨다. 나는  시어머니께 인사드리며 3살 된 딸과 함께 모든 것을 남겨두고 여수를 떠났다.  보성으로 가는 내내 결혼 한지 수년 만에 낳은 귀한 딸 현희를 어떻게 홀로 키워야 할까? 생각하고 생각했다. 


친가인 보성에서도 부모님과 같은 마을에 살 수 없었다. 보성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이 잡듯이 빨갱이 색출에 혈안이 되었다. 나 때문에 친정 부모님까지 피해를 볼까 봐 친정에서 가능한 한 멀고 한적한 곳으로 옮겨갔다. 여순 나고 몇 달이 지난 다음 해 나와 현희는 안정을 찾고 마을에 정착을 했다. 이웃들은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다. 


일주일 전 친정으로부터 편지가 한통 왔다. 당숙아들 두성이가 찾아와 부모님께 딸이 빨갱이 혐의를 받고 있으며 지금 이 시기에 신고하면 바로 잡혀가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협박을 한다고 했다. 그놈은 논살 돈이 없으니 도와 달라고 해서 친정 부모님이 애를 먹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편지를 보자마자 이웃집 할아버지에게 현희를 맡기고 두성이를 찾아 친정으로 갔다. 그놈이 마침 부모님을 괴롭히기 위해 친정에 와 있었다.


“누나 숨어 댕기느라 힘들지 않았당가?” 


능청스럽운 목소리였다.


“누가 숨는다냐? 나가 왜 숨냐고? 나가 무신 죄가 있당가?”


“이우제에서나 빨래터에서 쑤군쑤군  누나 말이 나온당께.” 


“나가 지기미 조동이들 조심혀! 뭔 말을 그리 거짓깔로 조잘 대냐고 큰소리 쳤당께.”


“주성아 니 솔직히 말해라잉.”


“돈이 필요해서 고렇코럼 더러운 수작으로 우리 엄니 아부지 협박을 하면 쓰것냐?”


“니하고 나하고 어릴 적부터 처녀 때까지 동네서 함꾸네 살았는디 뭐 어쩌고 저째?”


“내 서방이 빨갱이고 나가 빨갱이라고?” 


“이놈아! 니가 그런다고 우리집에 돈이 나오것냐? ”


“절대로 니 놈한테 줄 돈 없고 줄 수도 없어야.”


“없는 사실을 종근다고 사실이 될성 싶으냐?” 


“어림도 없응께 꿈도 꾸지 마랑께!”


나는 내 귀가 울릴 만큼 그놈에게 소리쳤다.


“아따 그라지 말고 쫌 봐 주쑈!”


“나가 돈을 쪼가 빌려 다시 갚을 요량으로 그리 말한거랑께.” 


“글고 당숙한티 빨갱이 입에 올린 것은 이우제가 말한 것을 전했을 뿐이랑께.”


“나가 장가 간지 얼마 안 돼서 식구들 입에 풀칠해야 항께 논 좀 사서 식구들 믹일라고 그라니 누님이 당숙한테 말 좀 잘해주쑈잉?”


놈이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했다. 이놈은 어릴 때부터 그런 놈이었다.


“뭐 어째? 이 난리통에 돈이 어디있다냐? 그라고 니가 우리집에 와서 이러면 되냐?” 


“우리 엄니와 아부지가 니들 형제 믹여 살린거나 다름 없는디 니가 이러면 천벌 받을꺼여?” “니들이 베골아 우리집에 온거 한 두 번이냐고?” 


“짐승도 자기 기른 사람 물지 않는디 니가 사람이냐?”


나는 그 놈의 멱살을 잡아 틀었다. 그 두 놈의 형제들과 어렸을 때부터 온 산을 뒹굴며 놀아서 나는 그놈이 무섭지 않았다.


“한번만 더 우리 집 와서 그 소리 하면 니 죽고 나 죽자 알것냐?” 


미안해하던 놈이 안색을 바꾸며 속내를 드러냈다.


“허메 왜근다냐?”


“손 잠 놓고 이야기 하쑈!”


얼굴에 핏기가 없어 하얗게 떠서는 그놈은 더욱 큰소리로 말했다.


“음마 참말로 말하는 뽄세가 느자구 없네잉.”


눈을 부릅뜨고 내가 잡은 손을 휙 뿌리치면서 그놈이 말했다.


“누나는 나가 살려 준거 모른 당가? 지금 보성지서에서는 빨갱이들 잡아 실적 올린다고 순사님들이 눈을 부릅뜨고 찾고 댕기는디 모른당가?”


“몇 일전에도 순사들이 당숙네 찾와서 누님을 찾았는디 나가 누님은 빨갱이 아니라고 포돕씨 돌려 보냈당께. 은혜도 모른당가?” 


“허버지게 많은 돈 쪼까 부탁하는디 고걸 못들어 준당가?” 


“당숙이 이 동네서 방구께나 끼는 양반인디 조카를 도와준다고 곡간이 빈답디여?”


연뱅 뒤져도 그 돈 지고 갈라나..“


“나가 느그집가서 느그 아부지한테 댓거리 할거나?”


“당장 우리집서 나가랑께!”


이놈은 어렸을 때부터 비열한 구석이 있었다. 톡 쏘아주면 그 때서야 고분고분 말을 듣는 놈이었다. 오늘 내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 어머니는 계속 시달림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눈 딱 감고 한번 돈을 준다고 만족할 놈이 아닌 것은 내가 그 놈의 성정을 이미 잘 고 있었다.


누나 이러면 후회 할 것인디! 


괜찮것어?


두성이는 내눈을 쏘아보며 입가에 비열한 주름을 그으며 실소하고 있었다. 


두고보쑈?


이 놈의 집구석 피눈물 나게 할것인께!


어머니와 아버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따끔하게 말했으니 이제는 그놈이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말하고 부모님들을 안심시켰다. 나는 시름에 잠겨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춥디추운 아침이었다. 갑자기 두 명의 경찰이 방안에 들이닥쳐 두꺼운 솜이불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현희는 겁을 먹고 소리도 못 내고 두려워했다. 나는 그들이 들이닥치는 순간 두성이가 생각났다. 


나는 당당하게 소리쳤다.


“뭤 땜시 그런다요?” 


“아무리 경찰이라고 요렇코럼 들어와도 된다는 법이 어딧다요?”


“뭐시여? 


“빨갱이한테 법이 어딨어?” 


그는 당장 우악스러운 손으로  밖으로 끌고 나갔다. 밖은 춥고 눈발이 한 올 한 올 날리는 서슬 퍼런 아침이었다. 


“내가 무슨 잘 못을 했다고 이런다요?”


“뭐여 몰라서 그런 거여?”


“이 빨갱이..”


“난 절대로 빨갱이가 아니요!”


“아니긴 뭐가 아니여? 뭐가 무서워 여그 꼴착까지 기어들어 왔다냐?”


“니 서방이 빨갱이질 하다가 총살당하고 니년도 빨갱이라 여수서 여그 보성까지 도망 온 거 다 알고 왔당께?” 


“최순경 뭘라고 댓 구를 한다냐 그냥 끌고 나가서 쏴버려!” 


“여그서 쏴버리면 동네 사람들한테 뽄을 못 뵈긴께 저짝 마을 입구 철도길 가상으로 가자고.”


허옇게 질린 현희는 꺽꺽 거리며 아무 말 못 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 이제 어찌해야 하나? 저것이 혼자 남아 어찌 살아갈거나. 


이놈들은 아이와 마지막 이란 것을 알면서도 인간의 정리를 하나도 봐주지 않았다. 나는 끌려가면서도  차분히 말했다.


“현희야 무서워 말고 거기 가만히 있거라.”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말고 방에 있어라와.”


나는 현희에게 차마 다시 오겠다는 말은 못 했다.


그들은 나를 이 마을 초입 철도길 가로 데려 갔다. 기차는 순천과 목포를 이어주는 철길이다. 나는 끌려가면서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어매! 어매! 어매! 끌려가면서 그렇게 크게 울부짖었다. 또한 이렇게 황망하게 끌려가는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철길 가에 섰다. 현희가 있는 우리 집이 가까이 보인다. 저 어린것이 어찌 살까? 아~~ 현희야 이 어미가 너를 지켜주지 못하고 이렇게 여기서 쓰러지겠구나. 나는 무슨 잘 못이 있어 이 싸늘하고 무서운 논가에 서있는 것이냐?


이내 뜨거운 불덩어리가 내 가슴에 박혔다ㆍ나는 풀썩 쓰러졌다. 내가 쓰러진 후에도 총소리는 계속 마을 앞 논 전체를 울리며 계속 메아리쳤다. 차디찬 얼음이 깔린 논이 느껴졌다 ㆍ


눈이 점점 감겨온다. 


소리가 점점 작게 들리며 시야가 좁아진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저 뽈갱이년 집도 태워 버려!


텅 빈 내 눈 속으로 이내 연기가 피어올라가는 것이 비친다. 


아~~ 아가 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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