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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만 May 23. 2024

여순의 삶

재가(再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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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한테 여그서 살자고 하는디 어떻게 아부지를 죽인 그놈하고 살 수 있을까? 그렇게 그놈하고 이 집구석에서 산다면 차라리 콱 죽어버려야지 절대로 여그선 살 수 없지.


집도 불타고 아부지도 돌아가시고 인자 학교도 못가네.


동무들은 잘있것지?


동네에서 나를 따라 댕기며 못살게 굴던 영수도 인자는 나를 피한다.


그 멀마가 우리집안이 빨갱이 집안이라고 손꾸락질 하덩마.


난리 나기 전에 우리 집에 오던 이우제 아줌마, 아저씨들도 모두 우리를 보면 눈을 피한당께.


이따금 쌀이 똑 떨어졌다고 쌀 좀 빌려 달라고 하던 쫑포댁도 그리고 무슨일이 있어도 종길이를 갤차야한다고 월사금 꾸러 왔던 종길이 아부지도 우리를 피한당께.


선주집이라고 불리던 우리집은 관려연락선(여수 시모노세키간 연락선)을 타고 일본 가서 공부하고 오신 아부지가 큰 배로 고기를 잡았다. 부유한 우리집은 동네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또 어려운 문서를 작성하거나 면사무소일이 있는 사람들은 아부지에게 먼저 상의를 할 만큼 동네 사람들은 아부지를 의지했다.


그런데 동네에서 유독히 아부지를 싫어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순사 김승길 이다.


이놈은 일정 때 순사를 하던 놈인데 해방되고 사라졌다가 어느 날 다시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자는 아부지가 사람들을 모으고 선동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아부지가 빨갱이가 된 것이다.


지난해 10월 말에 종산국민학교에 끌려간 아버지는 11월경에 만성리에서 돌아가셨다고 했고 기별 와서 시신 찾으러 갔는데  끄슬러진 시신이 한데 엉겨붙어 찾을 수 없었다. 그 후로 남은 우리들은 모질게 살아가야했다.


김승길 그 짐승 같은 놈은 불탄 우리집에 찾아와 엄마랑 이야기를 하더니 결국 우리엄니를 이곳에 데려와 살게 되었다. 


나는 이제 학교도 갈 수 없고 지낼 곳도 없다. 


화양면 나진에 계신 할머니댁에 동생 길현이랑 살아 갈 수밖에는 없다. 


동생을 학교라도 보내려면 동정 한일은행장 집에 식모살이라도 해야 한다.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은 엄니가가 왜 아부지를 잡가서 죽인 그 놈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엄마도 할머니도 이웃들도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화장대 위에 엄니가 쓰던 동동구리무를 엄니 모르게 썼던 것을 알고 나가 미워서 그런 것일까?


나가 어른이 된다면 반드시 그 놈을 죽여부러야 쓰것다. 


진즉부터 가심 속에 날카로운 칼 하나를 심어 놓았다.


아부지를 죽이고 엄니를 빼앗아 갔고 우리집과 나의 꿈을 깨버린 그 놈을 절대 용서 할 수 없당께. 


앞으로 나는 절대로 여그에 오지 않을 것이여. 


엄니에 엄짜도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인자 마지막으로 엄니를 한번 불러 본다. 엄니! 엄니! 엄니!


이제 나는 동상 길현이만 생각하고 살아 갈거다. 


나는 엄니 아부지도 없는 혼차다.


그 누구에게도 지대지 않고 살아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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