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제목 | ⟪흐릿함을 쓰다듬으며 건네는 말⟫
작가 | 고우리
장소 | 온수공간 1F
기간 | 2024.10.02-10.27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고우리의 작업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을 다루며 이를 신체성과 물질성 실험을 통해 시각 화하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은 일상적인 감정의 미세한 결들을 포착하고 그것이 서로 얽히는 과정을 섬세한 물리적 표현으로 드러내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위의 작품과 같이 캔버스의 천을 도려내어 천이라는 벽 뒤의 미지의 공간을 드러내기도 하고 천과 천을 덧대어 바느질하면서 실밥을 풀어내기도 하는 표현방식의 묘사를 자세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이 지닌 강점은 단순히 감정의 시각화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작가 자신의 신체와 행위를 매개로 하여 감정의 흔적을 물질화함으로써 일종의 심리적 기록을 회화적 방식으로 재현한다는 점에 있다.
고우리는 캔버스를 단순한 평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천의 물리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탐구하며, 찢어지고 뜯긴 천 의 형태를 통해 단순한 선과 색의 조합을 넘어선 복합적 상징체계를 구축한다. 작가의 손과 발과 같이 신체를 활용하여 그려낸 천 위의 궤적은 물감의 형태나 천의 결을 따라 무작위적이면서도 의도적인 방식으로 쌓으며 관계의 불완전성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암시한다. 이로써 작가의 작업은 단순히 추상적 감정의 표현을 넘어 물질성 자체를 통해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목적성을 지닌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고우리의 작업이 다루는 인간관계의 서사는 지나치게 관조적으로 보일 수 있어 관객이 작업의 맥락을 읽어내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관계의 복잡성과 미묘함을 탐구하고자 하지만 그 표현 방식이 지나치게 상징적이고 암시적일 수 있어 작품이 지닌 감정의 맥락이 명료하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찢긴 천과 실밥이 늘어진 묘사는 관계의 단절 혹은 연결을 암시할 수 있으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적 서사를 담고 있는지는 모호하게 남아 보이기도 한다.
결국 고우리의 작업은 인간관계의 물리적 흔적을 회화적 언어로 재구성하고자 하나 그 과정에서 감상자와의 해석적 거리를 좁히는 데 실패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는 작가가 선택한 물질성과 형식의 실험이 다소 자기 언어에 머물러 있어, 관객에게 더 큰 해석의 폭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상의 접근성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는 작품 내에서 서사의 단서를 더 명확하게 제시하거나 감정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체계의 재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보완할 수 있게 전시장의 아카이빙 공간에서는 작가가 상주하며 관객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실질적인 공간에서 작가가 관객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게 되었으며 관객과 작가의 임계 거리에 관한 생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전시장에 항상 상주하지 못할 경우의 한계를 감안할 때 관계의 불안정성을 다루는 예술적 시도를 통해 감정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탐색하는 데 중요한 목적을 이루었지만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서사적 구조를 확립하는 점에 서 좀 더 구체적인 방향성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작업이 더 넓은 해석적 가능성을 갖기 위해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