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딸이 있어야 해?
'딸이네요,
왜요? 딸이라서 기분 안 좋아요?'
헉.
화들짝 놀래서 꿈에서 깼다.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산부인과 정기검진 전날 이런 꿈을 꾸다니.
사실 나는 아들을 원하긴 했다.
이유는 없다.
시댁에 형님네가 딸이 둘이고 그냥 뭔가... 아들이 나와줘야만 할 것 같았다.
때마침 태몽이 아들 태몽이었고, 고기가 미친 듯이 땡겼다.
샤머니즘의 혼란 속에 모두들 아들 같다고 했다.
아들일 거란 소리를 너무 자주 들었던 탓인지 아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나 보다.
결론은 아들이 태어났다.
그때 그 꿈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산부인과 의사가 나를 빤히 보는데
내 마음을 들켜버려 당황하고 무서웠던 그 꿈 말이다.
꿈이 무의식의 반영이라면 내 무의식이 아들이 아닐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이 있어야 나중에 좋은데...'
친청엄마도 시어머니도 나를 걱정하신다.
나는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순간도 한 적이 없는데
딸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딸이 있는 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뭔가 좋은 게 있긴 한가 보다.
마음의 위안일까? 동성이라는 부분에서의 공감일까?
딸을 가지면 축하한다는 말을 이렇게 하는 걸 종종 봤다.
'그래~딸이 좋다'
사실 우리 엄마 시대만 해도 아들을 많이 원하긴 했다.
불과 30년 만에 이렇게 세상이 변했다.
그런데 나는 '그래~딸이 좋다'라는 말이 이상하다.
딸이라서 당사자는 안 좋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굳이 딸이 좋다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아들이라고 하면 그냥 축하만 하는데 딸이라고 하면 꼭 딸이 좋다고 말하는 것.
지금은 딸도 좋아야 한다는 말일까?
혹시나 당사자의 기분을 살피는 말인 걸까?
어떤 뜻이든 좀 어색하다.
예전의 아들을 선호하던 때의 생각이 아직 잔잔하게 남아 있어 그런 거라 난 생각했다.
이제 우리 애들이 클 때가 되면 그런 강조의 축하도 없어지겠지.
아들이든 딸이든 다 똑같이 축복이다.
둘째 딸로 태어난 나는 온 집의 실망을 안겨주며 태어났다고 한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아빠도 할머니도 다들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엄마는 맏며느리였고 꼭 아들을 낳아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 뒤 남동생이 태어났고 우리 집은 매일이 파티고 잔치였다.
나도 근데 그 모습이 좋았는데 알고 보니 씁쓸한 마음이 한 구석에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살가운 딸보다 아들 같은 딸로 자랐다.
엄마랑 영화를 보는 일도 쇼핑을 하는 일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 커피숍을 가는 일도
관심이 없다.
언니는 엄마한테 종알종알 이야기를 잘하는데
나는 엄마가 걱정할까 봐
엄마가 힘들까 봐
이 말, 저말 다 머릿속에서 필터링을 하다 보니 할 수 있는 말이 남아나질 않는다.
과한 배려심을 엄마가 원하는 건 아닌데.
잘 안된다.
다행히 언니와 남동생이 그런 부분들을 채워주고 나는 필요하면 용돈을 드린다.
첫째 아들 같은 캐릭터로 살고 있는 내게
딸이 있어서 좋은 것들을 상상하게 하니 영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해본 적도 로망도 없다.
모녀가 팔짱을 끼고 쇼핑을 하는 모습
화장품과 옷을 나눠 쓰고 입고 하는 모습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딸로서 환영받지 못했던 것에서 시작되었을까
한마디로 나 같은 딸은... 됐다.
이 예민한 성격에 나하나 세상 살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남편을 똑 닮은 아들은 예민함이라곤 1도 없는데 나에게는 그런 아들이 잘 맞다고 느낀다.
물론 만약에 만약게 나에게도 딸이 태어난다면 아마도... 내 영혼을 바쳐 사랑해 줄 것 같긴 하다.
나처럼 크지 않게, 정말 정말 세상 사랑스러운 공주님으로 말이다.
나도 잘 컸다.
근데 나 같은 딸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