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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연 Jun 02. 2024

'읍니다'의 시대, '습니다'의 시대

- 윤대녕, 무라카미 하루키, 황정은과 혁명.

1.

- 아마 이것도 나의 후일담 서사.


  헤드라인. 정치 의제. 종합면을 채우는 대부분의 기사는 살림살이와 정치 의제들. 살림살이를 논하는 사람들은 직업 정치인들. 종합면 다음에는 사회면. 사회면에 나오는 이야기도 정치와도 완전히 구분할 수 없는 이야기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조지 오웰의 한 구절을 빌려 왔다.


  신문을 보다, '탄핵'이라는 단어를 보게 됐다. '탄핵'의 기억은 특정 시기를 연상시킨다. 16년 가을부터, 17년 봄까지의 시간들. 그 시간 가운데 우리네 정서는 수년 전 봄까지도 확장되기도 했다. 그 시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시대의 조류에 어쩌다 올라탄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던 나는, 세상이 어디론가 명확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느꼈고, 머지않아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감했다. 역사적 정동의 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고 느꼈다. 차도에 차 대신 사람으로 가득 메워진 거리를 메운 북소리는 그런 착각을 주었다. '인가받은 예언자(부르디외에서 빌려왔다)'적인 한 마디를 속에 품고 싶었고, 스스로가 내린 예언이 어느 순간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서 깨닫는 것은, 이런 정서를 느끼는 나 역시도 후일담 서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정서를 가진 사람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다는 것. '후일담 서사'라는 레이블로 그런 역할을 담당해 온 문학의 갈래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


  이런 깨달음과 경험은, 나로 하여금 '혁명'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혁명'을 다룬 여러 이야기들에 민감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몽상가들(The Dreamers, 2003)'을 수도 없이 돌려봤었다. 작품 중간중간 나오는 시위하는 장면이 멋있다고 느꼈었다. 내가 있었던 현장 역시도 저런 유의 무언가였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혁명'과 '변화'라는 말에 얹힌 무게는 2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로 감당하기 너무 어렵다는 것 역시도 느꼈으나 동시에 그런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려는 부단한 노력의 태도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련의 모든 것이, '혁명'이라는 단어 하나에 응집되어 있다는 사실에 괜히 가슴이 설렜었다.


  지젝을 공부하다, 그가 2011년 Occupy Wall Street 현장에서 한 연설 영상을 보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 특히나 내게 하는 말로 들렸다.

There is a danger. Don’t fall in love with yourselves. We have a nice time here. But remember, carnivals come cheap. What matters is the day after, when we will have to return to normal lives. Will there be any changes then? I don’t want you to remember these days, you know, like “Oh. we were young and it was beautiful.”

주의하십시오. 자아도취에 빠지지 마십시오. 지금 얼마나 멋집니까. 하지만, 축제는 곧 범속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수 일이 지나고 일상의 영역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그때는 변화가 있을까요? "그때 우리는 젊었고, 순수했지"라고 오늘 같은 날들을 회상하지 말길 바랍니다.
- 슬라예보 지젝, 2011년 "Occupy Wall Street" 당시의 연설 中


  지젝의 이 말은 모든 후일담 서사를 관통하는 말일 것이다. Carnivals come cheap. 축제는 곧 범속해진다. 그리고 우린 거짓말같이 '리얼 월드'로 돌아왔고, 어제는 오늘과 같았으며 오늘은 내일과 같을 것이다. 이러한 지젝의 말은, 부르디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전복적인 의도가 때로는 풋나낸다고, 즉 몽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며 우리를 실망시키기만 한다.

- 출처 : 피에르 부르디외,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 中


  이런 권위있는 어른들의 한두 마디로 금방 마음이 식고 만다면, 내 심지가 굳지 않은 것인가. 혹은 나와 같은 젊은이들을 수도 없이 만나본 어른들의 경험과 데이터의 누적이 무서운 것일까. 이문열 소설의 어느 글귀처럼, 어쩌면 강제로 익기도 전에 병들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2.

- 윤대녕과 하루키, 그리고 혁명.


  윤대녕의 첫 소설집 '은어낚시통신'을 읽었다. 감각적인 문장, 유려한 문체. '소주에 탄 푸른 물감' 같은 익숙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소재들이 만드는 매력적인 세계. 카피라이터나 잡지 에디터를 했으면 안나 윈투어만큼 성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도회적인 문장을 쓴다.


  음악, 섹스, 차, 빛나는 것들. 명확한 거리의 지명, Boy Meets Girl, 있을 법한 상호명, 어디론가 옮기는 발걸음, 언젠가 우리 모두가 경험했을 법한 서울의 풍경. 커피와, 스테이크와, 돈까스와, 맥주와, 샤넬 화장품과 상호명은 잘 생각나지 않는 구두 메이커. 욕망하고 소비하는 것들의 전시. 이 모든 것을 어디에선가 본 것만 같아서. 초현실적이기에 더욱 와닿아서.


  그런 이유로, 하루키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도회의 명확한 지명, 쉬지 않는 여로. Boy meets girl. 술과 음악. 먹는, 입는, 향유하는, 소비하는 욕망. 그리고 그런 욕망들이 광고 카피 마냥 매력이고 감각적으로 묘사되는 문장. 많은 지점에서 유사함이 느껴졌다.


그에 따르면 윤대녕이나 이응준은 하루키 문학의 어떤 측면을 진지하게 소화 변용해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둔 경우.

https://m.hankookilbo.com/News/Read/199706040087255338
- 출처 : 하루키 표절 비판/초여름 문학계 또 강타, 1997.06.04.


우리 문학 역시 이 방향으로 갈 것이다, 거대담론이 소멸하고 일상·자아·욕망·사랑·성을 다루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모델이 하루키가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구효서, 윤대녕, 장정일 등 새롭게 등장한 소설들이 실제로 그러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5515.html
- 출처 : 한국 문단의 목에 걸린 가시, 2009.08.06.


이 소설(은어낚시통신)은 민주화라는 목표를 상실한 1990년대 한국의 청춘들을 사로잡았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게 한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008252057571&pt=n
- 출처 : 우리는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꾼다, 2010.08.31.


>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표절 자체보다는 독자들이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반응한 ‘하루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남진우는 이것을 1990년대 한국 소설의 특징인 ‘댄디즘’으로 재정의한 후, 질적인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구효서, 박상우, 채영주, 배수아, 은희경, 윤대녕, 장태일, 김영하, 이응준, 조경란 등에서도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1707171756015
- 출처 : ‘하루키적인 것’들의 총체적 재활용, 2017.07.17.


90년대에는 잃어버린 자아 찾기를 주제로 한 문학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테면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1994)은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를 희구하는 다양한 개인들을 묘사하며 90년대적 주제의식을 가시화했다. (중략) 이런 상실과 절망의 정서는 일본 전공투 세대의 후일담 격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읽혔던 배경이기도 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717225.html
- 출처 :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거나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나서거나, 2015.11.12.


  비평가들은 90년대 하루키적 조류에 올라탄 사람들의 목록에 윤대녕을 올렸었다. 그리고 이후 많은 업계의 전문가들이 유사성을 발견하기도 했으니, 내 감각이 썩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다. 두 작가 모두 그저 욕망하는 것들을 매력적으로 전시해 둔 문장 모음집에 그쳤다면 하루키는 노벨문학상 컨텐더가 될 일은 없었을 것이고, 윤대녕은 '90년대의 페르소나'라는 극찬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둘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거대 서사의 시대가 끝났노라고 선고한다.


"서형, 학교 다닐 때 운동권였소?"
  그 말투 속에는, 나도 그때는 돌멩이 깨나 던졌더랬소, 라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따라서 그 빈정거림이란 자조적이기에 앞서 자괴적으로 들렸고 자괴적이기에 앞서 숨긴 상처를 들춰낸 자에 대한 분노처럼 들렸다. 나는 그의 말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이미 타협했지 않은가. 명함과 양복과, 구두와, 은행 신용카드와, 운전면허증과, 최저생계비와, 예금통장과 기타 가정이라는 또 하나의 질서체계에서 가장의 권위를 부여받는 대신 일찌감치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도장을 찍은 자들이 아닌가.

- 윤대녕, <그를 만나는 깊은 봄날 저녁> 中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지만, 1969년까지만 해도 세계는 단순했다. 전투 경찰 대원에게 돌을 던지는 정도의 일만으로도,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나 자기 의사 표명을 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속화된 철학의 바탕 아래 도대체 누가 경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도대체 누가 자진해서 최루가스를 뒤집어쓰려고 하겠는가?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구석구석에 그물이 쳐져 있다. 그물 바깥에는 또 다른 그물이 있다. 돌을 던지면 그것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 정말 그런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中


  종언이 선고되고, 이전 시대와 다음 시대를 둘 다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차에는 지금 삶에서 거역하다 파면된 것들, 상처받아 불구가 된 것들, 혹은 사살된 욕망 같은 것들이 실려 있죠. 아시겠어요?"
"어느새 장의차에서 달리는 공동묘지가 됐군요."

- 윤대녕, <은어낚시통신> 中


"그러나 사회적으로 나는 완전한 제로야. 서른넷인데 결혼 생활에 실패했고, 변변한 직업도 없어. 하루살이야. 임대 아파트 대출 자격에도 못 미쳐. 지금은 함께 잘 상대도 없고. 앞으로 삼십 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해?"

-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中


  끝나버린 시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다음 시대. 다음 시대의 목표 : 부재함 속에서 생존하시오. 그런 토대 위에 올라 있는 개인은  '상처받아 불구가 돼'었고, '완전한 제로'임과 동시에 '하루살이'와도 같은 삶만이 약속될 뿐이겠지. 전공투가 끝나고, 반독재 민주화가 막을 내리고. 명확한 구호가 없음의 의미는 지배 담론이 부재하고, 거대서사가 불가능한 시대로의 이행한다는 것일 테다. 그런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을 독해했기에, 이런 무용해 보이는 이야기들 밖에는 할 수 없었기에, 오직 가능한 것은 욕망을 욕망하는 이야기뿐일 것이다. 이런 맥락이 선행했기에, 세계의 핍진함을 그대로 녹여내는. 그리고 위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를 고대하고 기다리고 소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설의 이름에 걸맞은 작고 잡스럽고 무용한 이야기가 당연히 천박하고 범박하고 경박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90년대 하루키 인베이전을 그렇게 비판했겠지.


  이 두 이야기가 후일담의 일반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혁명이라는 것의 속성이 으레 그러한가? 어째서 후일담 서사는 죄다 뒷골목 나트륨등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의 빛깔 같을까. 전공투나, 반독재 민주화나 결국에는 '성공'으로 끝나지 않은 실패담이기에 다 이런 모양인 것인가.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의 색깔은 어떠할까. 진행형인 우리의 이야기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의 혁명(이라고 여겨지는 때의) 후일담은 무엇이라고 평가될까.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성공한 혁명의 후일담은 어떤 빛깔과 질료와 텍스쳐를 가지고 있을까.


3.

- 동시대적 후일담.


  88년 문교부 고시를 통해 '읍니다'를 '습니다'로 고쳐 쓰기로 했고, '읍니다'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하지만 여전히 '읍니다'를 쓰는 사람이 많다. '읍니다'를 밈으로 쓰는 사람을 제하고, 언어생활에서 실제로 '읍니다'를 사용하는 사람이 사라지려면, 명이 다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습니다'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읍니다'의 목소리가 더 큰 것만 같다.


  수많은 작가들은 뜨겁다고 여겨지는 시대가 이미 끝을 고했음을 선고했다. 애초에 그랬다. 그리고, 그 시절을 상징하는 또 다른 사람도 선고의 막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왜 우리의 오늘은 그러할까. 축제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80년대판을 10년대 후반에 그래도 변주하는 느낌을 지금에서야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남은 뒷정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은 우리네 축제라고 여겨졌던 것이, 그 시절 축제의 스핀오프, 내지는 속편 정도 되는 이야기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6년 가을에서 17년 봄의 시간으로 돌아가자. 아니면 14년 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혁명 비스무리한 무언가, 하지만 혁명은 아닌 어떤 시기. 이제는 그 밤들을, 차 없는 차도의 시기를 돌이켜도 괜찮을 것이다. 똑같은 사건을 놓고, 서사를 구축해야 하는 사람과 서사를 '재 구축'해야 하는 사람들 간에 묘한 공존이 있었던 시기였을까. 읍니다의 세계가 습니다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함께 서기 시작한 시기가 아닐까.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은 "우리"의 후일담 서사이다. '습니다'의 후일담 서사이다. '디디의 우산'에 수록된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각각 16년 하반기와 17년 하반기에 발표된 작품이다. 'd'의 경우는 굉장히 동시대적인 텍스트이고,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경우에는 사건의 정서가 많이 휘발되지 않은 가까운 시점의 후일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건의 시기로부터 별로 떨어지지 않았기에, 그 시기의 정서를 비교적 온전히 보존해 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은어낚시통신'과 '댄스 댄스 댄스'는 10년 이후의 후일담이라는 점에서 '디디의 우산'의 특별한 점이 나타나는 것이다. 동시에, 중요한 지점을 짚는다. "탄핵이 선고되고 나면, 혁명이 성취되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혁명을 부르짖기 위해 광장에 나왔지만, 우리의 모든 동선은 권력이 통제하는 대로 움직일 뿐이라는 사실. 자유를 호소하는 장소에서 우리의 행동거지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과연 혁명이 가능할까.


조배야 이것이 혁명이로구나, d는 생각했다. 우리는 우회한 것이 아니고 저 차벽이 만들어낸 흐름을 충실하게 따라 찌꺼기처럼 여기 도착했구나. 혁명은 이미 도래했고 이것이 그거 아니냐고 d는 생각했다. 혁명을 거의 가능하지 못하도록 하는 혁명...... 격벽을 발명해 낸 사람들이 만들어낸 혁명......

- 황정은, <d> 中


  황정은의 <d>에서는 박조배의 입을 통해 혁명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혁명이 곧 일어날 것만 같다고. 세상의 끝이 올 것만 같다고. 하지만 박조배의 입을 통해 생각보다는 세상이 쉽게 망하지 않음이 언급된다는 것이 퍽 아이러니하다. 혁명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상태는 계속될 뿐이다. 마치, "최종심급의 고독한 순간은 오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어...... 나는 그때가 최악일 거라고 생각했다.

- 황정은, <d> 中


  역사적 현장을 지나간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 속, 혁명의 한가운데를 지나간다고 여기고 있을 순간 속. 곧 혁명이 도래할 것이라는 똑같은 내용의 "인가된 예언자"적 발언을 모두가 하고 있을 때. 그녀 혼자 다른 이야기를 한다. "과연 혁명이 가능한 것인가". 이런 어조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 분명해지고 구체화된다.


2017년 3월 10일.
오늘은 어떻게 기억될까.
(중략)
사람들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탄핵이 이루어진다면 혁명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지. 동학농민운동, 만민공동회운동, 4.19혁명과 87년 6월 항쟁까지, 한번도 제대로 이겨본 적 없는 우리가 이기는 것이라고. 이 나라 근현대사에서 우리는 최초로 승리를 경험한 세대가 될 것이라고. 탄핵을 바라며 거리로 나선 사람 모두에게 그 경험은 귀중하고 벅찬 역사적 경험이 되어줄 것이고 그리고...... 그렇지 내게도 그러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를 받는 것...... 저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지난 계절 내내 새로운 문장을 써왔고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제 그 문장은 완성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날일까. 혁명이 이루어진 날.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혁명은 마침내 도래한 것일까.

-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中


  "탄핵이 이루어진다면 혁명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모두가 기대했다. 그리고 탄핵은 이루어졌고, 모두가 승리했노라고, 혁명은 완수되었노라고 여겨질 순간이 도래했다. 그리고 그 순간으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은 순간, 감동이라고 여겨질 정서가 아직은 채 가시지 않았을 순간. 황정은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 정말로 이렇게 혁명이 이루어진 것일까 라며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다시 '탄핵'이란 단어가 언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17년 3월 10일에 혁명이 만약 완수 되었다면, 다시 탄핵 이야기가 나오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우리네 혁명은 유효기간 6년짜리였다는 이야기인가? 속된 말로 그 편이 더 "짜친다". 혁명 따위는 완수된 적이 없었다고 여겨지는 것이 더 나을지도.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네는 단 한 번도 승리를 경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 탄핵이라는 말이 쉽게 나와도 되는 이야기인가, 그런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


  결국, 황정은의 쓸쓸한 그 말이. 혁명은 도래한 것일까라는 담담한 말이. 뜨거운 열기 속 혼자 다른 곳을 보고만 있는 것 같은 그 정서가 되려 옳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했듯, '후일담 서사'는 패잔병들의 이야기만 같을까. 레짐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레짐을 운용하기 바쁘지, 회한에 젖을 여유도 이유도 없다. '후일담 서사'는 패잔병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혁명'이라는 단어 하나가 가지는 전체주의성, 그 안에서 묵살되는 목소리와 그로 인해 고개 들지 못하는 수많은 의제들. 그로 인해 하나의 의제만 다룬, 순수하다고 여겨졌던 광장은 사실 보이지 않는 폭력성을 담지했다는 감각을 여태껏 왜 인지하지 못했을까.


모두가 좋은 얼굴로 한가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나온 자리에서 분란을 만드는 일을 거리끼는 마음이 내게 있었고 그래서 결국은 그 팻말 앞을 그냥 지나쳐 왔는데 오늘 밤 집에 돌아가서 이 일을 계속 생각할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내가 그 말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말하자면 그걸 말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자꾸 할 것 같다고. 우리가 무조건 하나라는 거대하고도 괴로운 착각에 대해서도.

-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中


  앞으로 '후일담 서사'의 과제는 혁명과 같은 하나의 단순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을 것이다. 더욱 다양한 영역에서 주변화된 영역을 조명하는 데에 있겠지. 14년에서 16년 가을. 그리고 17년 봄까지. 이때를 성역으로 여길 이유가 없다. 이 시기를 다룬 다른 후일담 서사가 궁금하다. 상상력의 지평을 조금은 넓힐 수 있는 시간으로 20년대가 기능했으면 좋겠다. 이때를 다룬 다른 후일담 서사 문학 작품이 있을까. 조야한 정보 조사 능력의 담지함에 선행하여, 동시대 텍스트 쫓아감이 다소간 미진한 요즈음, 적어도 내 눈에 들어온 후일담 서사 텍스트는 없다. 부디, 이 글에 대한 개정판을 쓸 수 있게. 촛불에 대한 후일담 서사를 발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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