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시간
8살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 부모님은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혼을 고민하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많은 고민을 하셨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혼을 해서 아이들을 고통받게 하는 게 맞는지 많은 생각을 하셨댔죠
아버지는 어머니가 알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오히려 더 뻔뻔하게 행동하셨습니다
집 주변 술집에 데려와 같이 술을 마시거나 동네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시기도 하는 등
결국 주변에 말한 적도 없는데 동네에 소문이 났을 정도로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모들이 아버지를 쫓아다니며 이게 맞냐고 따지기도 하셨다는데 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런저런 사건이 생기고 부모님이 이혼하게 된 후에 누나와 저는 당연하게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평소에도 사실상 어머니와 셋이서 지냈기 때문에 달라지는 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었죠
어느 날 아버지는 갑자기 비 오는 밤중에 저희를 차에 태워 할머니집으로 향하셨습니다
차 안은 고요하니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빗소리만 들릴 뿐이고 누나와 저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이런 정적을 깬 건 아버지의 한 마디였습니다
"이제 너네 엄마는 없는 사람이니까 연락도 할 생각 말고 입에 올리지도 마라"
이해할 수없었습니다 대체 왜 우리 어머니가 없는 사람인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몰라도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죠
할머니는 밤중에도 저희가 올 걸 알고 있던 거처럼 현관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미안하다며 말하던 할머니를 뒤로한 채 누나와 저를 남겨두고 아버지는 한동안 보이지 않으셨죠
할머니집에서의 생활은 초반엔 나름 괜찮았습니다
할머니가 저희를 불쌍하게 여기셨는지 이것저것 잘 챙겨주시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달래주셨어요
할아버지는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모르고 계셨기에 너네 아빠 언제 오냐 라며 장난을 치시기도 하셨죠
나중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할아버지는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되시고 많이 충격을 받으셨어요
끊으셨던 술을 마시셨고 술을 드신 후엔 저희에게 쌍욕을 하며 꺼지라며 화내시곤 했었죠
나중엔 진짜로 집에서 쫓아내셔서 술을 많이 드신 날엔 밖에 나가 할아버지가 주무시길 기다리곤 했었어요
부모님이 이혼하게 된 지 1개월도 지나지 않았을 어느 아침에 아버지는 새엄마라는 사람을 데려와 말했습니다.
"이제 너네 엄마는 이 사람이다"라면서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은 새엄마에겐 이미 자식 두 명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새엄마라는 사람은 누나를 아니꼽게 쳐다보곤 했었는데 누나의 고생길이 열리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아챘어야 했습니다
새엄마는 누나를 엄청나게 싫어했습니다 아빠 앞에선 웃으면서 아이 예뻐라 라며 가식을 떨기도 했죠
저와 둘이 있게 되면
"너네 누나는 왜 그러냐" "꼴 보기가 싫다" "내 딸은 저 나이 때 안 그랬다" 라면서 험담을 했습니다
누나가 아프기라도 하는 날엔
"아빠 관심받으려고 일부러 아픈 척한다" 라며
험담을 하셨죠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 점은 새엄마와 함께 살지 않는 것일까요?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 전에도 새엄마라는 사람과 동거 중이었습니다.
새엄마 자식들은 따로 집을 얻어주고 둘이서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누나와 저는 방치하면서 행복하셨나 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할머니는 변하셨습니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어 때리시기도 했고
나는 분명 아들을 잘 키운 거 같은데 여자 하나 때문에 집안이 망했네... 내가 어렸을 땐 어쨌네 저쨌녜라며
본인 신세한탄을 3~4시간 넘게 하시기도 하셨어요
아침에 이야기를 시작하시면 자기 얘기를 들으라며 학교를 못 가게 막기도 하셨죠
아침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보통 10시쯔음에 끝났기에 저희는 그때 등교를 했었어요 아무도 없는 등굣길은 조용하고 쓸쓸했습니다
나중에 할머니가 변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저희 집의 가세가 많이 기울어 많이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때쯤에 휴대폰이 정지가 되거나 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쫓겨나기도 했었죠
할머니에게 주시기로 했던 양육비도 밀리기 시작했기에 모든 일의 원흉을 저희로 여기셨나 봅니다
연락조차 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아무도 몰래 아침에 찾아오시곤 하셨어요
등교를 하며 오늘은 어머니가 오지 않았나 하고 주변을 둘러보곤 했죠
어머니가 오신 날엔 차를 보기만 해도 울곤 했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었거든요
우는 저를 보며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지금 많이 울어두자 나중엔 웃는 날만 있을 거니까 우리 셋이 살게 되게 엄마가 노력할게"
라며요 나중에 언제가 함께 살 그날을 꿈꾸며 대화를 꽃피우곤 했습니다
견디기 힘든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건 어머니뿐이란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저희는 자살 시도라고 해야 할까요 어찌하면 어머니를 볼 수 있을지 같이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점 극단적인 방법으로 변해갔죠
달리는 차에 뛰어들려고 하거나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 등..
많이 다치면 어머니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 차에 뛰어들면 엄마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뛰어내리면 많이 다치겠지? 그러면 엄마가 오지 않을까?"
"불에 탈 때 많이 아플까? 죽진 않으면 좋겠는데" 라며 누나와 대화를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 정도로 저희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가족 모두가 그랬을지도 모르죠 그만큼 힘든 시기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