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겨진 시간
집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의 중학교를 가게 된 누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누나의 방황이 시작된 것 같아요
옷이 점점 짧아지거나 입이 험해지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도 많이 늦어지곤 했었죠
할머니에 대한 불만도 많아져서 원래 할머니를 위로해 주거나 얘기를 들어주던 누나는 이제 무시하거나 대들곤 했습니다
할머니의 얘기 중에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거나 화를 내는 등 제가 알던 누나는 없어진 거 같았어요
저와도 많이 싸우기 시작했죠
왜 본인의 편을 안 들어주나 네가 행동을 잘못해서 내가 혼나니까 제대로 살라고요
점점 집안의 분위기가 어두워지자 할아버지는 술을 더 드시기 시작하셨어요
술을 드신 후에 행동도 점점 괴팍해지기 시작하셨기에 견딜 수 없었던 저희는 따로 원룸을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
학교 주변의 작은 원룸이었는데 이때의 생활은 오히려 편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도 저희에게 미안하다며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시는 듯했고 누나와 할머니의 대립도 점차 줄어들었었죠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누나와 저는 아버지가 불러 아버지의 집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게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어 급히 장례식장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대동맥에 문제가 있으셨던 할아버지 셔서 술이나 담배를 드시면 안 되셨는데 술을 다시 드시게 된 게 문제가 됐나 봅니다
그날도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식사를 챙기러 원래 집으로 향하셨는데 그때의 집은 너무나도 참혹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대동맥이 터져 집이 피바다가 된 채 돌아가셨다고 해요
이때 저희는 죄책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희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예전의 모습을 찾는 듯했던 할머니는 저희를 다시 탓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만 아니었어도 할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거다 라며요
누나는 할머니와 대화조차 하기 싫어 새벽에 학교를 가고 밤늦게 집에 들어오곤 했기에
할머니의 원망은 온통 저로 향하기 시작했죠 저도 죄책감으로 인해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냥 이렇게라도 할머니의 기분이 풀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갈수록 누나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던 어느 날 한 사건이 생기게 되었는데
누나가 술을 마시고 경찰서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매우 분노하셨습니다 당장 누나 보고 꺼지라며 집에서 쫓아내셨죠
누나는 흔쾌히 알겠다며 집을 나섰습니다 저에겐 귓속말로 저에겐 지금 나오지 말고 조금은 기다렸다가 나오면 엄마와 함께 살게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었죠
어쩌면 계획적으로 일을 치른 것 같았어요
눈치를 보던 저도 누나를 따라가겠다며 집을 나서서 누나에게 전화하려던 그 순간
할머니가 제 손을 잡고 집으로 끌고 가시기 시작했어요
지금 너까지 가면 너네 아빠 죽을지도 모른다면서 화를 내셨죠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면 어떡하냐 지금 너네 엄마랑 살게 돼도 쓰레기 집에서 살게 될 거다 등등
안 좋은 얘기를 하시며 저를 끌고 가셨어요
저는 이때 할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누나에게 향하지 않을 것을 굉장히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 제 목숨을 바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시간이 흐르자 할머니의 모든 원망은 저에게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만 아니었으면 너네 할아버지가 죽지 않았을 거다"
"집안이 이런 꼴이 된 게 너네 때문이다"
라며 너만 아니었어도 우리 집이 이런 꼴은 안 봤을 거라며 얘기하시곤 했었어요
의지할 수 있는 누나조차 사라지고 할머니의 원망도 더욱 심해지니 저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농약을 사와 함께 마시고 죽자고 하시거나 식칼을 들고와 그냥 같이 죽어버리자며 저에게 협박을 하시곤 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할머니의 원망을 견딜 수 없어 어머니에게 연락해 제발 이 지옥에서 날 꺼내달라며 울곤 했었어요
조금만 견뎌달라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눈물로 젖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