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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여행자 Jun 25. 2024

차 한 잔을 하자는 의미

차의 언어와 대구 소지 티룸

차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음료다. 살기 위해 먹는 음료가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시는 기호식품. 그래서 차에는 외교 프로토콜처럼 차만의 언어가 있다.


차 한 잔 드릴까요?
손님으로 대우하겠단 말이다.

차 한 잔 합시다.
할 이야기가 있단 말이다.

차 한 잔 해야지.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차를 열 잔이나 마셨어.
사람 만나느라 바빴다는 말이다.

나중에 차 한 잔해요.
안녕히 가시라는 말이다.

시간 있으면 차 한 잔 할래요?
가슴이 설레고 있다는 말이다.


그저 차를 한 잔 내렸을 뿐인데 물속에서 풀려난 찻잎들이 아우성이다. 가끔은 쓸쓸한 맛이 나는 커피 한잔보다 뜨거운 물에 우려낸 차가 좋을 때가 있다.

대구 북성로에 있는 전통찻집 소지 티룸. 차의 다양한 언어를 현대적으로 듣기 좋은 아지트다.


차 한 잔 해야죠?

대구 동성로에서 술 한잔을 마시고 나서 차의 언어를 부렸다. 당연히 커피를 생각했다. 전통차는 어떻냐는 말에 좋다고 했다. 밤 8시가 넘었는 데 문을 연 집이 있어요라고 했더니 걱정말란다. 어느 적산가옥 앞 작은 표식마저 없는 두툼한 문 앞에 섰다. 이곳이 무엇인지, 영업을 하는지 마는지 단번에 알 수 없는 상황. 분명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데리고 오는 집이다. 일단 문을 열었다. 낯선 세계로 가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높다란 계단이 나타난다. 적산가옥들은 보통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팔라서 난간을 붙잡아야 한다. 보가 드러난 목재 천장 아래 넓은 바가 보인다. 귓가엔 비밥 재즈가 흐르는 곳. 응. 여기가 전통찻집?

어서 오세요.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차에 관한 애정이라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두 남자가 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공간에서 전통차를 다룬다. 바에 앉으면 메뉴가 도착한다. 잘 모르겠다면 말을 건면 된다. 차를 좀 추천해 주시겠어요? 차분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큐레이션을 받을 수 있다. 식사는 했는지, 평소에 좋아하는 차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 맛을 좁혀나간다. 차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보여진다면 점장의 반짝이는 눈빛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단골이 됐다.

이날은 백차를 권해줬다. 老백호은침. 2013년생 복건성 출신. 다구를 준비한 마스터가 앞에 와 뜨거운 물로 잠들고 있던 차를 서서히 깨운다. 한 주전자의 차를 즐기고 나면 다시 뜨거운 물을 채워준다. 점점 부드러워지는 맛. 고약한 술냄새가 빠지고 온몸에서 은은한 차향이 날 때까지 차를 마시고 또 마시면 된다.


전통찻집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목적으로 익숙한 자리와 넓은 바를 놓고 따뜻한 조명과 재즈로 공간을 채웠다. 술 한 잔 마시고도 찾아와 차를 즐길 수 있게 밤 12시까지 문을 연다는 것은 이집의 매력. 다만 폐점시간이 좀 바뀔 수 있으니 연락해 보고 가는 것이 좋다. 이런 전통찻집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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