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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맷 Jul 02. 2024

낮잠과 금붕어



지난주는 낮잠을 자주 잤다. 이상하게 감기가 안 떨어져서 약 먹으면 바로 누워 잤다. 일단 자면 30분 정도로는 불가능해서 집에서는 누워있지도 않고 낮잠도 잘 안 잔다. 일어나면 해가 한참 기울어있어서 가뿐해지기는커녕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많았다. 몇 번 자보니까 낮잠을 현명하게 자려면 일찍 자고 일어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늦은 아침 먹고 열한 시반쯤 잠들었다가 한시에 일어난 날이 가장 개운하고 시간도 덜 아까웠음을..


이사를 한지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 아직 집이 어색한지 자다 일어나면 낯선 천장 보면서 여기가 어디지 한다. 이사 온 집은 해가 잘 들고 침대가 있는 방은 창문이 네 폭이나 있어서 오후 내내 밝다. 커튼을 달지 블라인드를 달지 아직 끝나지 않은 선택을 모로 누워서 더 이어갔다. 전 세입자가 선반이나 액자를 달면서 뚫어놓은 구멍들을 구경하면서 저걸 가리려면 그림 같은 거라도 걸어둬야 하나 한참 고민하기도 했다. 리히텐슈타인이 마티스 그림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린 금붕어 그림 같은 걸 걸어둘까. 그건 돈이 많아지면 조각 버전 레플리카를 사서 거실에 두고 싶었는데.. 방에 붙일 포스터를 고르는 건 너무 어려워서 매번 생각만 하고 사실 한 번도 한 적이 없긴 해.


Henri Matisse, The Goldfish, 1912


리히텐슈타인으로 가면 너무 귀여워지니까 아예 마티스의 오리지널 금붕어를 적당한 크기로 걸어볼까도 생각해 봤다. 마티스 그림으로 방을 꾸미는 건 흔해져 버려서 이것도 안 하고 말지 싶다. 그래도 초록초록한 식물이랑 빨간 금붕어 대조가 싱그럽고 예쁜 그림이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의 한 장면처럼 갖가지 식물이 가득한 해가 잘 드는 썬룸 안에 1920년대 아르데코 스타일 스틸 테이블 두고 앉아서 금붕어를 바라보는 호사로운 평화를 내가 누리는 것만 같아. 이건 포스터까진 아니더라도 엽서 크기로 뽑아서 책상 앞에 붙여놔도 좋겠다.


20세기 초반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건 파리 예술가들한테 유행이긴 했는지 마티스도 모로코 여행을 길게 했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부터 마티스는 새빨간 금붕어를 자주 그렸는데, 탕헤르 여행 중에 현지 사람들이 어항 속 금붕어를 구경하면서 시간 보내는 걸 인상 깊게 보고 와서 그렇다는 추측이 있다. 고양이한테는 어항이 텔레비전이라고 수조 속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고양이 사진을 여러 개 본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이국적인 금붕어를 물속에 넣고 평화로운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는 게 이색적인 여가였나 보다. 나는 금붕어를 키울 부지런한 성정도 아니고 물고기는 강이나 바다에 있는 게 맞지 싶어서 어항 속에서 살랑거리는 지느러미를 구경하는 취미는 없다. 그보단 턱이 높은 세탁실에 쪼그리고 앉아서 세차게 돌아가는 세탁기 속 물거품 같은 걸 가만히 지켜보는 걸 좋아해.


Henri Matisse, Arab Coffee House, c. 1912-13


눈앞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알록달록한 물고기를 보는 건 백 년 전에는 마음에 위안이 되었나. 탕헤르 사람들이 카페에 눕거나 앉아서 한적하게 금붕어를 보고 있는 게 꽤 부러웠던지 금붕어는 마티스 그림 열 점에나 걸쳐서 그려지면서 고요하고 평화로운 정서를 표현하는데 좋은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 강렬한 붉은색 때문에 색 쓰기 좋아하는 양반한테 딱 맞는 소재였기도 했을 것 같다. 빨강과 초록을 과감하게 쓴 마티스의 유명한 그림은 수두룩한데 유난히 빨간 금붕어는 리히텐슈타인 눈에도 들어왔다.


리히텐슈타인은 본래 신문광고나 로맨스 만화, 전쟁 만화의 한 장면을 소재로 써서 캔버스에 크게 옮겨 그리던 미술가였다. 그 당시 조야했던 인쇄물의 특성을 상징하는 벤데이닷(ben-day dot, 인쇄업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벤자민 데이가 당시 인쇄물에 잉크 뭉침을 해결하기 위해 잘게 쪼갠 망점으로 색면을 표현해 낸 공법)과 음영을 표현하기 위한 빗금, 굵고 검은 윤곽선과 CMYK의 제한된 색상만으로 자기 스타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마 <행복한 눈물 Happy Tears>(1964)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유명할 것 같은데, 감정과잉의 만화 장면을 캔버스로 크게 옮겨오는 그림을 그리다 나중에는 모네, 피카소, 몬드리안, 마티스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작품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업도 했다.  



Roy Lichtenstein, (L) Goldfish Bowl, 1981 / (R) Goldfish Bowl Ⅱ, 1978


리히텐슈타인의 마티스 오마쥬는 금붕어였다. 그래서 이렇게 모던하고 깜찍한 금붕어 판화랑 2D처럼 보이는 입체조각이 나왔다. 누가 봐도 마티스네 금붕어를 누가 봐도 리히텐슈타인이 했군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마쥬의 정석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사람은 스타일이 있어야 돼. 괴테는 ‘스타일은 인간 내면을 반영한다’라든가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타일’이라는 요지의 말을 한 걸로 알려졌는데, 리히텐슈타인은 그 중요한 걸 모더니즘이 박살 나던 적절한 시기에 캔버스에 만화 한 컷을 뻥튀기하면서 뚜렷한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이런 천재 작품을 내 방에 걸어도 되나... 하는 마음은 사실 전혀 없지만 미색의 벽과 구멍들을 보면서 저게 걸린 내 방을 상상해 봤다. 그림 보단 역시 거실이 있는 집을 갖게 되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연필꽂이 같은 조각 복제품을 두고 싶으니까 참아본다. 일단 구멍은 메꾸미로 메꿔놓고 벽에 포스터를 걸어두는 건 다음에 기약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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