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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Nov 29. 2015

20kg의 무게가 고단해질 때, 이방의 시장으로 향한다



어디에선가, 잡지를 넘기다가 <20킬로그램의 삶>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냥, 순식간에, 직감했다.

아, 이건 나의 이야기로구나,

나와 비슷한 궤적을 가진 어떤 사람의 이야기로구나......


'20킬로그램'의 의미가 단박에 와 닿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아마도.

훑듯이 읽어내려간 짤막한 글은, 아니나 다를까,

어쩌면 그렇게도 오롯이 내 생각을 똑 떼어다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던지,

당장이라도 글쓴이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단지 그와 나의 차이라면, 가방의 무게에 있어 내 쪽이 조금 더 나간다는 점 정도랄까......

번연히 알면서도, 늘 쓸 데 없는 것들이 많아 그렇다.

정작 싸가지고 가서는 숄더백에 챙겨 넣지도 않는 문고본,

늘 스케치 한 장 건지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무게만 차지하는 크로키 노트, 휴대용 물감,

기분 내킬 때면 쑤셔 넣곤 하는 묵직한 수동 카메라, 여분의 필름 뭉치, 

후우, 늘 같은 목록의, 같은 양상의 반복이다.

어느 때인가는 예정된 여행 일정이 미묘하게 맞물려

방 한구석에 그 큼직한 여행가방을,

근 한  달가량이나 방치한 채 그대로 놓아둔 적도 있다. 





오가면서 방 안에 우두커니 적잖은 자리를 차지한 여행가방을 문득 바라볼 때면,

내 방 침대 위에서도 나는 오갈 데 없는 외로운 여행자 신세가 된 듯한 기분이다.

여행지 숙소에서 으레 겪기 마련인, 서늘한 침대 커버,  맛없는 브렉퍼스트용 커피와 시리얼,

호스텔 부엌의 왁자지껄한 소란과 열기...... 들......

가방과 함께한 농축된 시간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른다.

그리고 늘 마음 한쪽에 가만히 자리하는 '떠나야 할 때'라는 숨죽인 울림.

언제쯤, 저 가방을 다시 꾸려야 하나?

이번에는 '개고생' 따위 없이 저 악몽의 '20kg 상한선'을 제대로 맞춤할 수 있을 것인가? 

늘 시험대에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네가 지금 소유한 모든 것들의

우선순위를 부여해 보라...... 라는 투의 일방적이고 거친 압박감.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여정길에 오를 당시

한 달 이상 짊어지고 걸을 수 있는, 내가 최소한으로, 급속하게 추려낸

나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들'은 정확히 9.2kg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 여행길에서, 어찌 보면 우리네 삶이란 참, 지지리도 쓸모없는 것들을

휘영청 이고지고, 좋다고 거들먹대며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부질없는 생각 잠시.


백해무익한 도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들과 공생하기 위해, 또는 자기만족을 위해,

또는 더 높은 자아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것'처럼 동반해야만 하는 수많은 소유물들.

너무 안락하고 풍요로워서, 그 달콤함을 차마 떨쳐내지 못하는 많은 것들.

옷핀 한 개, 실핀 굵기의 머리핀 하나, 성냥, 바늘 하나와 낡고 해진 굵은 끈이 

얼마나 값지고 유용한 도구들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지- 겪어보기 전에는 누누이 말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법이다. 절실함이란 그런 것이다. 





여행의 발랄함이 색채를 잃고, 부푼 생기가 풍선 공기처럼 슈우우...... 빠지기 시작할 때면,

시장을 찾는다. 관광지처럼 특화된 시장일지라도, 동네 주민들만이 오가는 쥐똥만 한

작은 재래시장이어도 상관없다. 환한 슈퍼마켓이 아닌, '시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분주히 몸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며, 그들의 성실함을 보며,

하루의 빵과 치즈를 벌기 위한 사람들의 뭇내가 얼마나 진하고 값진 것인지를

다시금 마음에 되새기고 온다. 가볍고 나풀대는 여행자의 감상일랑 잠시 접어두고,

삶을 유지하기 위한 타인들의 진지함이 얼마나 생생한 것인지를 배워가지고 온다. 


그리고 갈수록 그런 여행이 늘어난다...... 는 것은, 나이가 조금은 들었기 때문인지,

여행이라는 마성의 '단물'을 이미 쪽쪽 빨아먹을 대로 빨아먹은 터라

숨은 쓴맛이 바닥에서부터 그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장의 풍경은 내게 있어 늘, 효능이 그럴싸한 좋은 영양제이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La Boqueria은 관광 스팟이라 해도 끄덕여질 만큼

너무 알려진 곳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동네 주민들과

아침 일찍부터 문 연 바를 찾은 영감님네들이 늘 자리한다.

다만 점심 나절부터는 물결처럼 몰려들기 시작하는 관광객들로

정신없기가 이루 말할 수가......





<피노쵸 바Pinotxo bar>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미 전 세계에 알려진,

이제는 알아서 절로 사진 포즈를 잡아주시는 주인 영감님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운영해오고 있는 카페 겸 타파스 비스트로다. 타파스라 하기에는 조금 무색하리만치

제법 비싼 가격이 약간 불편하기는 한데, 뭐 여행을 온 이상 이 정도의 사치라면

부리지 않는 것이 도리어 미덕이 아닐지도. 

여하간 그래서인지- 아주 일찍부터 문을 여는 이곳을 이른 시간에 찾는다면,

익히 보아온 것과는 달리 소박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커피 한 잔에,

명물 '추초Xuxo'--- 또는 따뜻한 크로와상을 곁들여 짧은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네 사람들,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진한 적갈색 에스프레소와

유백색 우유 물결이 유리잔 안에서 감미롭게 뒤섞이는 장면은...... 언제나 멋스럽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더없는 조화.

결국 어느새 나도 모르게 커피 한 잔...... 역시나다.































궁금함을 못 이기고, 호기롭게 메뉴판도

보지 않은 채 주문한 그 유명하다는

'병아리콩 요리'는 헛,

정말이지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조리 실력을 자랑할 만 했...... 으나,


...... 계산서는 살며시 엎어두고.


큼직한 병아리콩이 갓 쪄낸 감자마냥

포슬포슬하니 입 안에서 녹아내린다.

건포도, 허브, 잘게 자른 고기를 넣어

향 짙은 올리브유와 함께 버무려낸

요리 솜씨는 간을 기가 막히게 잡았다.

꿀떡꿀떡 넘어간다.









또 하나의 명물- 추초!!!

뭔가 했더니, 크로와상 반죽을 튀겨

속에 커스터드 크림을 넣고,

겉에는 설탕을 술술 뿌려낸 

다디단 빵이다.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들이라면

으레 하나씩은 곁들이는 이것. 

갓 튀겨와 따끈따끈한 채로 내준 추초를

한 입 딱! 물었을 때의

바삭함...... 부드럽고 따뜻한

농축된 계란 크림의 맛......


꽤나 단맛이 강하고, 큼직해서

하나를 온전히 다 먹기에는

조금 힘이 부치긴 하지만.

손은 기름과 설탕 범벅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박스에 담겨 배달되어 온다. 너무 이른 시간에 방문하면,

가게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초조한 기다림을 동반해야 할지도.









시장통을 구경한다. 


생과일을 갈아내는 주스가게는 너무도 많아

뭐 굳이 따로 찾을 필요가 없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하몽을 썩썩 도려내

샌드위치를 만들어 내는 가게들도 여기저기다.


뭐니뭐니해도 관광객들을 가장 유혹하는 곳은

눈앞의 재료들을 선택해 원하는 대로 조리해주는,

길게 자리잡은 바 형태의 비스트로들이지만.

빈자리 찾기가 레이스처럼 진행된다.












































































































체감온도는 가장 낮지만,

생명의 열기가 유독 펄떡대는 장소는

역시나 해산물 코너.

굵고 붉은 새우들과 두툼한 아귀,

눈 어귀가 푸르게 빛나는 고등어......

비린내가 낯설지 않다.



































































































































열정과 생기, 친근함, 

정작 우리와 다르지만 익숙한 

생활의 풍경들이 있다.


이렇게 오늘은 또,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비축하고 돌아와     


...... 내일을 기약하게 만든다.

20kg만큼의 고민을

싹 다 덜어낼 수 있을 정도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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