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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ovah Mar 11. 2020

계속 걷고 싶은 파리

06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파리는 좋았다.

2013 7 11 파리 여행의 마지막 . 나는 여느 때처럼 숙소에서 파리의 중심까지  1시간 거리를 기분 좋게 걸어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되는 거리를 그때는 힘든지 모르고 다녔던  같다. 같은 길을 걸어도 처음 걸어갈 때와  번째 걸어갈  매번 다른  보였고, 파란 하늘과 파리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낮은 오래된 건물들, 분주하지 않은 사람들 그런 파리의 무드가 너무 좋았던  같다.


첫날에는 파리가 너무 좋아서 욕심내며 다녔었는데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나도 파리의 여유를 배운 듯이   느리게 걸을  있었다.  것이 너무 많아 주변을 두리번거렸었던 지난 2일에 비해 마지막 날에는 나도 파리 거리가 아주 익숙한  걸으며 분위기를 즐기며 다닐  있었다. 고작 3일이었지만 같은 길을 여러  걸으며 익숙해지는  기분이  좋았다.



너무 좋았던 , 파란 하늘과 초록 네모 나무가 멋들어지게 늘어서 있는 샹젤리제를 걸으며 고대하던 오랑주리와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오르세와 오랑주리    너무 욕심났었지만 나는 도장깨기 하듯 미술관을 보고 싶지 않았고 일정상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고흐와 마네 그리고 모네의 작품이 너무 보고 싶었고  미술관  인상파의 작품이 있다는 정도만 알았던 당시의 나는 어디든 좋겠지라고 생각하며 나왔었다. 그러나 막상 밖에 나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오르세와 오랑주리를 놓고 정말 고민이 됐었다. 최고의 선택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검색해볼 핸드폰도 없던 나는 페이퍼 지도만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오랜 고민 끝에 나의 선택은 오랑주리였다. 물론 후회되지  선택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오랑주리. 루브르와 달리 오랑주리의 입구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왠지 그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랑주리 주변에 별거 없는 그 한적한 분위기도 좋았던 것 같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오랑주리에서 나는 유독  세잔의  그림이 마음에 너무 끌렸고 한참을 바라보았던  같다. 인상파인  세잔의 그림을 보며  세잔이 바라본 당시의 시각을 느낄  있는  좋았다. 그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기에 이렇게 그렸을 테니깐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르누아르의 풍경화를 보고 있었는데 문득 옆에 다른 작가의 풍경화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풍경화가 매우 다른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아주 아름답지 않은  다른 하나는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에 담아냈다.  그림을 동시에 바라보며 생각해보니 두 그림의 느낌이 그렇게 달랐던 것은 아마도 풍경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작가의 눈이 달랐던  같고, 보는 눈이 다른 것은 아마  작가의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랐던  아닐까?



그리고 나는 미술관을 걷다가 소틴의 그림에 멈추게 되었다. 그림은 일그러지고 엉망이었다. 그림을 보며 내 머릿속의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소틴이 담고 싶은 건 뭐였을까? 그가 그린 사람들의 마음이 일그러졌기 때문에 일그러진 그림을 그렸을까? 아니면 그가 마음에 어떤 아픔을 담고 있기에 그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저 깊이 숨기고 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표출하거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다. '아픔이란 가슴속에 간직하고 죽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예술가가 위대한 것은 가슴속에 간직하는  아픔이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때문인  같다. 그것이 내가 예술가를 그리고 유독 고흐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내면의 아픔을 표현할  있는 것도 어쩌면 엄청난 능력을 넘어서 용기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이 표현한 작품을 매개로 나는 공감이란  하게 되고 넘어서 위로를 받게 된다. 루브르만큼 크진 않지만 천천히 작품을 깊게 감상할  있었던 멋진 오랑주리를 나왔는데 작품들에게 받은 감동이 꺼지지 않아 당시 나는 오랑주리의 미술관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참을 생각에 잠겼었다. 행복을 느꼈다. 행복이 이렇게 쉽게 느낄  있는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것 온전히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24 만에 비로소 깨달았다.



파리에서 마지막 날이었던 이 날은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함께 파리에서 맛있는 것을 먹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오랑주리에서 나와 샹젤리제 거리에 야외 테라스가 있는 식당에서 고급스러운 파리 음식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고급스럽지도 맛있는 곳도 아니었지만 당시에 23살에 가난한 배낭 여행자들에게는 정말 호화로운 식사였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수다가 끊이지 않는 시끄러운 파리 사람들 속에서 비둘기와 함께 먹은 식사였지만 파리여서 다 괜찮았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용기 내서 와인도 마셔보기로 하고 웨이터에게 추천받아 와인을 한 잔 주문했다. 와인이라고는 교회 성찬식에서 주는 설탕이 들어간 포도주가 전부였던 어린 나에게 당시 파리에서의 와인은 충격적으로 맛이 없었다. 나중에 30대에 꼭 다시 온다면 프랑스 와인을 제대로 도전해보리라!




그렇게 인상적인 파리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바토무슈를 타기 위해 센 강으로 향했다. 혼자서 12시간씩 걷던 파리를 새로 사귄 여행지의 친구들과 함께 걸으니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 느껴졌다. 8,9시 즈음에 해가 질랑 말랑한 묘한 하늘빛과 섞인 분홍빛 하늘도, 시원하게 부는 바람도 참 좋았다.



파리의 밤에, 센 강의 유람선 위에서 보는 파리의 모습은 너무나도 낭만적이었다. 어릴 때 에버랜드의 지구마을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마치 거기에서 보던 모형들이 내 눈앞에 아주 커다랗게 지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마냥 너무 예뻐서 사진을 마구 찍다가 어느 순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을 찍느라 내 눈에 내 기억에 담지 못하는 거 같아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눈에 담기 위해 사진기를 내려놓고 바토무슈 야외 의자에 앉았다. 앉아있으니 어느 순간 파리의 어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고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렇게 반 바퀴를 도니 드디어 해가 완전히 지고 예쁜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멀리서 불빛과 함께 에펠탑이 나타나는데 정말 그 순간은 어떤 영화나 소설의 절정에 다다른 한 장면 같았었다. 그렇게 나의 첫 파리 여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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