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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ovah Sep 01. 2022

신화 속 낙원 같던 도시, 포지타노

10 - 내가 꿈꿨던 곳, 나의 유럽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이탈리아 포지타노


일찍 소렌토의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체크인을 한 후 이탈리아 남부의 또 다른 해안도시인 포지타노로 향했다. 여행 책자에서는 소렌토에서 약 1시간 거리라는데 실제로는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포지타노'라는 도시는 대학교 때 내가 존경하던 친구가 선물해줬던 '끌림'이라는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책을 보며 포지타노를 가는 꿈과 더불어 유럽 배낭여행을 같이 꿈꾸게 되었다. 사실 나는 '끌림'이라는 여행 산문 책을 읽으며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이 책에서 받은 감성을 이어가고자 했고 그러다 보니 인터넷의 스마트한 도움 없이 오로지 여행 책에만 의존하여 이 배낭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찾으면 물론 훨씬 완벽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아마도 열심히 완벽하게 관광하는 여행보다는 그저 여행 산문 책에서 작가가 느꼈던 그 느낌들을 느끼는 조금은 아날로그적인 여행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포지타노라는 도시를 '끌림'이라는 책에서 처음 발견했기에 당연히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으며 책을 읽으며 나만 아는 보석 같은 도시를 발견했다고 생각하며 설레어했었다. 그런데 직접 이 소렌토에 와서 포지타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현실을 알게 되었다. 포지타노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관광지였고 어느 여행사나 '이탈리아 남부 투어'라는 패키지가 있을 정도로 필수적인 관광 코스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가려던 날에도 역시 포지타노를 가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모여 있었고 심지어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포지타노행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앞에 깃발을 들고 엄청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 많은 한국인들이 다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여하튼 나는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게 무색할 만큼 보기 좋게 첫 번째 포지타노행 버스를 타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줄을 서고 30분 뒤에 다음 버스를 타고서야 숨은 보석 같은 곳은 아니지만 그 꿈에 그리던 유명한 보석 '포지타노'로 갈 수 있게 되었다.




포지타노로 가는 길은 아말피 해안을 따라 꼬불꼬불한 절벽 도로를 오랜 시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데 만약 성질이 급한 운전기사님을 만난다면 자칫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말피 해안 도로는 매우 스릴 있는 코스다. 그렇게 너무 예쁘지만 약간은 무서운 해안도로를 한참 달리고 나니 드디어 저 멀리서 책자에서 보았던 그 풍경이 보이는 듯했다. 낯선 곳, 낯선 길에서 잘 찾아온 것일까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설렘에 엄청 심장이 뛰었던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있다. 




포지타노는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이어진 곡선 도로에 고운 빛깔의 이국적인 집들이 층층이 들어선 거대한 고대 요새 성벽 같은 아주 신비스러운 비경이다. 그래서 그런지 방향 감각이 전혀 없는 나에게 포지타노의 첫인상은 새로운 모양의 도시가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매우 낯설고 어디가 중심가인지 조차 전혀 알 수 없는 어려운 도시였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기차나 버스에서 내릴 때는 그저 많은 관광객들이 내릴 때 함께 내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는 너무 한적한 곳에서 우르르 내리니 알 수 없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왠지 조금만 더 가면 딱 알아볼 수 있는 중심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중심가에 가기만 하면 내가 예약한 호텔은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생각으로 나는 홀로 버스를 좀 더 타고 갔는데 그만 마을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종점에서 내리게 되었다. 완전히 판단 미스였다. 참고로 나는 직감이 아주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여행 이후로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길치인 내가 어디서 내린 들 그곳이 어디인 줄 알았을까 싶다. 




막상 버스에서 내리니 마을은 너무 예쁜데 사람은 없고 간판도 이정표도 없었으며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의 현 위치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디로 방향을 정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두리번두리번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얼핏 가게처럼 보이는 곳의 가게 주인에게 내가 예약한 호텔의 이름을 보여주며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내게 그 호텔로 가려면 포지타노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고 그 버스를 타면 아마도 바로 호텔 앞에 내려줄 것이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내가 너무 신기해서 어떻게 호텔 이름만 보고 바로 어디인지,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말하기를 이 작은 동네에는 호텔이 몇 개 없다고 동네 주민은 서로 다 안다고 말했고 서로 기분 좋은 웃음을 교환했다. 이런 게 시골의 매력인가 보다. 그렇게 친절한 가게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가 무사히 탔는데, 버스비가 아주 비싸서 깜짝 놀랐다. 1.70유로였던가... 한국으로 치면 버스비가 2천 원이 넘는 셈이며 2013년 물가치고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비쌌던 것 같다. 




그렇게 버스비에 놀람도 잠시, 버스를 타고 다시 포지타노 마을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는데 이국적인 풍경에 금세 기분 좋아졌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는지 버스에서 한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거셨다. 할머니는 나보고 혼자 여행 왔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하며 할머니는 여기에 사시냐고 물었다. 할머니 역시 그렇다고 답하셨고 나는 바로 이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 사시는 게 너무 부럽다고 말했더니, 할머니는 잠깐 머물다 가는 관광객에겐 새롭고 신비롭지만 평생 살기에는 너무 작고 특별할 게 없는 마을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괜스레 할머니 얼굴이 무료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아주 짧은 대화밖에 하지 않았는데 금세 목적지 정류장에 도착했다. 할머니 말대로 매우 작은 마을이긴 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를 타기 전 아주머니는 분명 버스가 바로 호텔 앞에 내릴 것이라고 알려주셨었지만 역시나 나는 버스에 내려서 도저히 호텔을 찾을 수 없었다. 방향이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아 마치 미로 속에 계속 갇힌 느낌이 들었다. 그 낯선 지형에서 나는 또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 마을은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잘 도와주는 것 같았기에 주변에 보이는 작은 슈퍼에 들어가 다시 한번 내가 예약한 호텔의 이름을 보여주며 여기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이 짧게 끄덕하더니 가게 안에 있던 어린 남동생에게 나를 호텔 앞까지 데려다주라고 말하는 듯했는데 이탈리아어를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지만 느낌이 그랬다.  그리하여 슈퍼 주인의 꼬마 동생이 어색하지만 친절하게 나를 호텔 입구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아무래도 시골 인심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길을 찾는 외국인들을 꼭 잘 도와주어야지라고 또 한 번 다짐해본다. 




그렇게 아름다운 남부의 작은 미로 속에서 어렵게 도착한, 너무나도 기대했던 포지타노의 호텔! 예산이 넉넉한 배낭여행은 절대 아니었지만 포지타노에서 만큼은 꼭 좋은 호텔에서 호화롭게 즐기고 싶었고 포지타노에서는 그런 여행 무드가 분명 어울릴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나름 거금을 들여 예약했던 곳이었기에 나는 그 어떤 숙소보다 많은 기대를 안고 찾아갔다. 




아주 큰 건물의 호텔은 아니었지만 입구부터 포지타노의 남부 느낌이 물씬 풍기는 타일로 장식된 문과 풍경을 가리지 않도록 건물과 호텔룸은 입구 아래에 있는 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호텔룸 역시 남부 특유의 타일로 꾸며진 예쁜 더블룸이었고 도시의 시원한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발코니가 있는 그런 멋진 호텔이었다. 비록 에매랄드 빛의 그란데 해변이 보이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 남부 분위기의 쾌적한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혼자서 오롯이 즐기는 호화로운 호텔 방 안에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난 뒤 나는 남부 해안 마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주황색 원피스를 입고 기대감을 가득 안은 체 포지타노 해변을 구경하러 나갔다.




호텔에서 나가기 전에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들려 관광 지도를 받고 길을 나서면서 지도를 보았는데... 이럴 수가! 알고 보니 포지타노는 Oneway! 하나의 길로 다 이어지는, 도시보다 마을에 가까운 매우 쉽고 작은 곳이었다. 처음 소렌토에서 버스를 타고 왔을 때 남들이 다 내리는 절벽 위쪽에서 내려서 출발했다면 아마도 그냥 길 따라 걸어가다가 자연스럽게 이 호텔을 발견했을 것이다. 괜히 아래쪽에 내려서 거꾸로 올라오니 방향치인 내가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겠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웃기고 허탈했지만 또 그냥 이렇게 자주 헤매는 내가 나쁘지 않아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는 포지타노의 환하고 밝은 분위기가 주는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나는 포지타노의 마을 가장 꼭대기 호텔에서 출발하여 가장 아래 해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하나의' 길로 다 이어진 마을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발걸음에 제법 자신감이 생겼다. 포지타노의 위쪽은 사람이 거의 없고 조용하며 그늘이 거의 없어 온통 환하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차가 한대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지만, 한쪽에는 파스텔톤의 절벽 마을이 계속 한눈에 보이고 다른 한쪽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이국적인 상점과 집들이 들어서 있어서 앞만 보며 걸을 수도, 빨리 걸을 수 없는 온 마을을 잇는 그런 매력적인 길이다. 




그리고 좀 더 내려가다 보면 자줏빛의 등나무와 레몬 나무가 캐노피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져 그늘진 구불구불한 산책길들이 나타난다. 햇살이 아주 적당히 뜨겁지 않게 예쁜 눈부심으로 들어오는 아주 매력적인 산책길이었다. 이탈리아의 '라 돌체 비타 - 달콤한 인생'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맛볼 수 있는 게 바로 여기 포지타노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쭉 걷다 보면 풍경만큼 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포지타노의 특산물인 리넨과 실크로 만든 옷들이다. 남부 지역답게 시원한 리넨 소재들의 옷을 파는 부티크들이 즐비해있는데 그 마저도 해안 마을스러운 분위기를 한 껏 풍긴다. 또 골목골목 작은 전시회라도 열린 듯 남부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걸려 있는데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면 마치 도시 전체가 야외 전시장인 듯 느껴졌다. 햇살이 반짝이듯이 새어 들어오는 거리의 전시장은 포지타노의 그림들만을 위한 조명인 것만 같다. 




동네를 한 껏 즐기다 보니 어느새 가장 아래의 해안가에 도착했고 그곳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앞에는 청록빛 바다고 뒤에는 파스텔톤의 다채로운 건물들이 절벽에 붙어있고 휴양 온 사람들이 낙원에 온 듯이 물놀이를 한껏 즐기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바다 수영을 할 줄 몰랐고 그게 지금까지도 마음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나도 이 지상 낙원을 한껏 즐기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바다수영을 배워서 다시 포지타노에 오겠다고 여러 번 다짐하며 눈으로 보는 풍경들을 사진에 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조금 달래 보았다. 




가장 꼭대기에서 가장 아래의 해안가까지 쭉 걸어서 돌아다녀보니 이제 포지타노 어디든 발길이 닿는 대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무언가 좀 더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포지타노 전체를 훑어본다는 느낌으로 큰길 중심으로 걸어 보았으니 이제는 좀 더 구석구석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작은 계단들도 주저 없이 성큼성큼 걸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약간은 길을 잃어서 헤매다 보면 숨은 풍경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발길이 닿는 대로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허기가 저셔 간단하게 피자 한 조각을 먹었다. 나는 이탈리아 남부에 왔다면 피자와 레몬 젤라토를 먹어야 한다는 클래식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허기를 달래고 잠시 한적한 곳에 앉아 풍경을 보며 쉬다 보니 조금씩 해가 지기 시작했고 포지타노에도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당일로 방문했던 많은 관광객들이 돌아가고 비교적 한적한 바닷가가 되었다. 상점들 주변에 하나둘씩 불이 켜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음악이 들리니 해변가에 한 없이 앉아있고 싶어졌다. 아주 이국적인, 낯설지만 아름다운 곳에서 바다가 보이는 포지타노 도시 안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고 해질 녘에 조용한 포지타노를 보니 이 도시가 더욱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게, 하루가 끝나가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이런 보석 같은 곳을 왜 내가 겨우 1박만 머물 생각을 했는지 행복한 후회도 하면서 포지타노에서는 누구에게 엽서를 써볼까, 누가 남부 마을과 가장 어울릴까 생각하며 밤을 보냈고 한 여름밤의 꿈같은 포지타노의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나에게 포지타노에서의 하루는, 마치 책을 보다 잠들어
신화 속 낙원에 잠시 방문한 꿈을 꾼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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