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tscars - yeule 리뷰
yeule
2023. 11. 20
Best Tracks 들불, 낡은 괴담, 클라우드 쿠쿠 랜드, JUVENILE, 충동 1분, 허물
Review by BlackMatter
★★★★☆ 4.5/5
치유되지 못한 상처
치유됐을지도 모를 상처
치유된 줄 알았던 상처
처지고 퍼져서
몸 전체가 상처로 뒤덮이면?
그래도 재생한다면?
이와이 슌지,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사랑은 눈을 가린다. 결핍은 집착을 낳는다. 사랑과 결핍이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깨진다. 깨져버린 우리에게 남은 것은 상처다. 투박하고 얕은 찰과상이 아니라, 스스로 베어버린 깊은 절상이다. 사이보그도 상처에 아파할까? 아픔을 넘어서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그들이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자신을 정의하는 수많은 수식어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사이보그라 자칭하는 yeule은, 여전히 아파한다. 각각 기계와 인간을 나타내는 ‘Wires and blood’, 이 상반된 두 단어의 병렬은 병렬 회로가 그렇듯 필연적으로 같은 종점을 지나가는 것이다.
이 회로들과 혈액이 흘러 지나쳐가는 곳들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여성성에서 비롯한 트라우마와 자해, 완벽주의 그리고 신체 이형 장애 등 내면 깊은 곳에서 발생한 자신에 대한 혐오부터 시간에 따른 사랑과 감정의 그라데이션과 같은 아주 보편적인 주제에 이르기까지, 선명하게 다른 듯 보여도 실은 얽히고설킨 이 혈관들은 결국 모두 상처라는 종점에 이른다. 자칫 과히 감정적이게 느껴질 수 있는 이들을 묘사하는 데에 있어 yeule의 리릭시즘은 암호화된 코드와도 같다. x w x에서의 금이 가버린 비스크 인형과 404 Error, 1집의 Poison Arrow에 대한 레퍼런스를 담은 sulky baby의 독화살, ghosts의 유령, dazies의 썩어버린 데이지 꽃. 내내 우리에게 닿아오는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결코 직설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상처들의 서정성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사운드에 대한 yeule의 탐구와 함께하며 더욱 빛난다. softscars의 프로듀싱은 The Smashing Pumpkins, Pixies, Avril Lavigne, Slowdive, The Jesus and Mary Chain 등 각 시대와 장르를 풍미한 뮤지션들에게서 흘러나온 얼터너티브 락에 대한 영감과 Aphex Twin, Grimes 그리고 yeule 본인의 앰비언트와 글리치 팝 그리고 로파이가 조화롭게 혼합되는 교차에 위치한다. 감정의 표출에 중점을 두는 드림 팝, 슈게이즈, 얼터너티브 락, 팝 펑크 등의 장르를 자신의 가장 유약한 모습을 표출하는 데에 사용하는 영리함과 그 장르적 변화에 맞춰 드림 팝 싱잉에서 벗어나 락 보컬과 스크리밍을 사용하는 적응력, 그리고 자신의 근원과도 다름없는 글리치적 요소를 여전히 곁들이는 철저함까지. yeule은, 이토록 뚜렷이 또 사력을 다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하고자 한다. 상처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코딩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공유하는 고충 중 하나는, 바로 코딩에서 발생하는 에러와 글리치들의 원인을 알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것을 제거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고쳐졌어야 함에도 다시금 반복되는 글리치들, 분명 작동되지 않아야 하는데 멀쩡히 돌아가는 프로그램들. 원인을 찾았음에도 해결은커녕 윤회에 빠져드는 것은 상처 또한 마찬가지다. 단 한 번만 손목을 긋는 사람은 없다. 단 하루만 거식증에 걸리는 사람도 없다.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또 이별하는 사람은 더더욱이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상처들의 근원지를 마음속으로 스스로 깨닫고 있다. 아플 것을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상처의 굴레, 그러나 또다시 상처받는 우리는 어제의 우리와 같지 않다. 상처와 상처 그 사이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 깨달아 나간다. 그렇기에, 상처는 꿰매고 가려야 할 흉측한 것으로 거부되는 게 아닌, 삶의 진행과 성장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softscars를 통해 yeule은 말해온다. 6번째 트랙에 fish in the pool을 수록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yeule이 가장 애정하는 감독 중 한 명인 이와이 슌지, 그리고 그 감독의 작품 중 ‘coming-of-age film’, 즉 ‘성장 영화’였다는 하나와 앨리스 속 피아노 연주곡을 앨범의 정중앙에 수록한 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뚜렷하다. 곡 중 내려쳐지는 건반 하나하나가, 곧 하나하나의 상처가 나타내는 성장의 교향곡이라는 것이다. fish in the pool을 기점으로 앨범의 후반부에 위치한 트랙들은 이 인정과 성장의 서사를 담는다. software update에서 반복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며, 사랑으로 겪은 애통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과 희생을 약속하는 inferno, 논 바이너리 정체성을 인정하는 cyber meat, 사별한 고통을 감내하며 재회를 비는 aphex twin flame. 팝 펑크 트랙 cyber meat를 제외하면 한층 서정적이고 안온히 흘러가는 앨범의 후반부는 전반부에서 발랄하고 파괴적으로 발광하던 감정과 극단적 대조를 이루며 심정의 변화를 나타낸다. 청각적으로 마주하는 성장의 과정이다.
불완전성과 사랑, 결핍에서 피어난 상처에서 성장에 이르기까지, 상처마다 아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다르기에 우리가 이들에 무던해지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나 상처는 언제나 재생하고, 그렇지 못하면 각양각색의 흉터로 남아 성장을 위해 우리의 피부 위 저마다의 기록을 새긴다. 그러니 더 이상 흉터에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더 이상 흉터를 가리기에 급급하지 말자고. 더 이상 흉터에 지레 겁먹어 물러나지 말자고. 때로는 넓고 때로는 깊은, 때로는 일시적이고 때로는 영원한 이 상흔 속에서 찾아지는 불완전성의 미학에서, 그저 또 한 발자국, 언젠가 부드러워질 또 하나의 상처를 찾아 나서자고. softscars는, 이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