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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간을 겨눈 달빛

by 정말 Mar 18. 2025

  토요일 오전인데도 택배차는 골목을 누비며 물건을 배달하기에 바빴다. 택배차는 디젤 차량 특유의 낮고 웅웅거리는 엔진음이 가솔린차보다 두드러져 율미는 소리만 들어도 택배차가 골목에 도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택배차의 후진 경고음이 멀어질 때쯤 강현준이 탐정 사무실로 들어섰다. 살인사건으로 전환된 만큼 강현준에게 다시 한 번 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부탁한 터였다.    

 “찾는데 어렵진 않으셨어요?” 

 “요즘은 도로명주소가 잘 되어 있어서요. 집이 좋네요.”

 지난번 만남보다 다소 편안해진 눈길로 그는 마당을 훑었다. 

 “감사합니다. 직원 중에 은성호 씨라고 운전하시는 분에 대해서 여쭤볼 게 있어서요. 주말마다 본가가 있는 구례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주말마다 본가에 간다고 들었습니다.”

 “낯선 번호라 그런지 제가 두 번이나 전화했는데 안 받으시던데. 혹시 의장님 돌아가시던 주에 은성호 씨가 의장님을 모시거나 운행을 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개인적으로 두 분이 아는 사이라든가.”

 “그 주에 의장님을 모신 적은 없었고요. 은성호 씨는 현재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의장님 추천으로 채용됐다는 소문이 있긴 했어요. 개인적 친분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강현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직원들과는 관계가 어땠는지. 원만했나요?”

 “원만하다고 볼 수도 있고. 말이 없는 편이라. 맡은 일은 큰 문제 없이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조심스럽네요. 그런데 성호 씨가 무슨 연관이라도…….”

 “특별한 연관성을 찾은 건 아니구요. 직원들 중에 업무적으로 의장님과 연결고리가 있는 분은 다 만나보는 중이라서요.” 

 “그럼 1호차 기사인 김필영 씨를 만나보시죠.” 

 

 강현준이 건네준 전화번호로 곧장 전화를 걸자 수신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는 김필영. 그는 율미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은성호 그 자식 내가 2년 동안 옆에서 지켜봤는데 걔 정신이 조금 이상한 애예요. 찬찬히 조사해 보세요. 현준 씨가 몰라서 그러는데 별난 놈이라니까요. 내가 그 자식이랑 사무실을 같이 쓰거든요. 우리는 사무 보는 직원들하고 분리돼 있어요, 사무실이. 근데 그 자식 조퇴를 해도 간다는 말도 없이 가질 않나, 행사 차량 운행하다가 연락도 없이 사라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니까요. 뭘 믿고 그러는지. 하여튼 이상한 놈이에요.”

 김필영의 말대로 은성호가 의문에 쌓인 인물이고 더군다나 사망 전 장 의장 집 앞을 서성거렸다면 현재로서는 장 의장과 가장 접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안수정과 은성호 이 두 사람의 관계에도 접점이 있었을까? 

 의문을 안은 채 집을 나선 율미는 혜인의 공방으로 향했다. 오전에 장 의장의 변호사 확인을 비롯해 몇 가지를 부탁해 놓았는데 ‘임무 완수!’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공방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 ‘프리즘스튜디오 조수 채혜인’이라는 명함이 떡하니 올려져 있었다.  

 변호사에 따르면 장 의장은 알려진 것과 다르게 답변서에서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재판 전 조정 과정에서 가정 유지 의사를 적극적으로 어필할 계획이었다. 또 스포츠파크에서 통화한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은 안수정의 절친이자 몽블랑클럽 회장인 길효숙이었다.      

 “어때? 이만하면 명함 새길만 하지?” 

 혜인은 사건 조사가 신나는 듯했다. 서각교육을 끝내기 무섭게 율미를 돕겠다며 자처했고, 밤마다 자신의 추리를 메시지로 보내왔다. 그러나 대개는 추리라고 부르기엔 허술한 내용들이었다.  


 탐정 수사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혜인과 함께 율미는 주말의 휴식 대신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다시 한 번 에덴빌리지로 향했다.  

 몇 해 사이, 에덴빌리지는 도시인들에게는 전원 속 여유로운 안식처로, 문화 주민들에게는 성공과 품격을 나타내는 성이 되었다. 새로운 도로는 그 성으로 향하는 길답게 강렬하고 뚜렷했다.  

 마른 낙엽들은 밟기만 해도 바스러졌다. 자작나무 무리를 향해 걷다 보니 어느새 지난번에 발길을 돌렸던 자갈밭에 섰다. 자갈밭 맞은편에는 시루산 등산로와 이어지는 작은 샛길이 보였고 굽이진 시멘트 길을 따라가자 야트막한 내리막길 끝에 경찰 통제선이 보였다. 

 절벽은 고작 서너 명이 설 수 있을 정도로 아찔했다. 그 아래로 밧도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둘은 절벽과 연결된 길을 꼼꼼히 살피면서 혹시 경찰이 놓친 단서나 숨겨진 증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자갈밭 조경석에 걸터앉아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열심히 추적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움을 넘어 완전한 헛수고였다.            

 

 언론은 연일 장 의장의 사망 원인, 장례식 일정, 에덴빌리지의 물 공급 문제 등을 집중 조명하며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석우도 경찰서와 군청을 오가며 수집한 정보를 율미와 공유했다. 부검 결과 범행 시간은 토요일 밤 열 시에서 새벽 두 시 사이로 좁혀졌고 전화기는 장 의장 본가에서 범행 시간 이전부터 꺼져 있었다.    

 사망 원인은 자창에 의한 뇌간 손상과 익사.

 범행에 사용된 칼은 길이 15~20cm, 두께 0.7~1cm로 추정됐다. 흉기는 생명 유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간을 정확히 겨냥했고, 범인은 이 부위가 얼마나 예민한지, 정확한 타격이 필요한 곳인지 알고 있었다. 완벽한 무기와 정확한 타격, 숙련된 기술이 결합한다면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 범행은 성공했을 것이다. 

 뇌간은 움직임과 호흡, 말하는 능력을 제어하는 핵심 부위다. 장 의장이 물속에서 의식이 남아 있었다해도 헤엄쳐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뇌간을 정밀하게 찌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문가이거나 무수한 연습을 거친 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특히 여자의 힘으로 뇌간을 정확히 찌른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안수정은 용의선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율미는 장 의장이 추락 당시 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소리를 내어 도움을 청하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어둡고 차가운 물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오롯이 느끼며 무력하게 가라앉았으리라. 범인은 얼마나 잔인하고 냉혹한 인물이기에 그에게 이런 죽음을 강요한 것일까. 

 더구나 사건 현장과 인근 마을, 공원 입구에 설치된 CCTV에서 의심스러운 움직임은 발견되지 않은 데다 휴대전화기 복구에서도 건진 것이 없어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한편, 어라강 주변에서는 흉기를 찾기 위한 수색이 계속됐다. 잠수부들이 취수원 바닥을 며칠 째 뒤지고 있었지만 범행에 사용된 칼은 흔적조차 없었다. 경찰은 사건 다음 날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 점을 들어 흉기가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동시에 경찰은 에덴빌리지 자연치유특구 사업과 관련 장 의장의 개입 여부를 조사 중이었다. 장 의장이 소유한 일부 토지가 사업 부지에 포함된 점, 공사 금액이 천억 원을 넘어서면서 시행사 선정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점은 의장직과의 연관성을 의심케 했다. 

 한편 정진태 군수는 대체 수원지 확보 예산을 발빠르게 편성해 의회의 승인을 얻어냈고 이로 인해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주민들은 이번 성과가 국민기초당 차기 군수 후보 공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기초당 출신의 이동만 의원은 의원 사무실이 모여있는 층의 가장 끝방을 쓰고 있었다. 마을 이장 경력으로 당선된 그는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율미에게 악수를 건넸다. 진한 나무색의 책상에는 조례안과 동의안 등 각종 문서들이 올려져 있고 책꽂이에는 전년도 예산서와 사업계획서 등이 빼곡했다.  

 이동만 의원은 스피커폰으로 여직원에게 특별히 맛있는 커피를 부탁한 뒤 의회 커피가 웬만한 카페보다 맛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잠시 후 여직원은 이 의원만큼이나 환한 웃음을 띠며 커피를 내려놓고 조용히 걸어나갔다.  

 “그래 지금 장 의장 사건을 조사하신다고?”

 그는 은근슬쩍 말을 놓으며 헤어젤로 넘긴 가르마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왜 사람들이 그를 ‘이장 의원’이라고 부르는지 짐작이 갔다.

 “평소에 장 의장님과 각별하시다고 들었는데 마지막으로 장 의장님과 대화하신 게 언제시죠?”

 율미의 질문에 이 의원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요일이었지, 아마. 그날 우리 국민기초당 의원끼리 저녁 식사를 했거든요. 파할 무렵에 의장이 와서 잠깐 얘기를 나눴지요.”

 “혹시 어떤 이야기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늘 하는 얘기지, 뭐. 특별한 건 없었어요.”

 “그 늘하는 얘기가 뭔지 궁금하네요.”

 “의원들끼리 할 얘기가 뭐 있겠어요. 도와 달라. 의정활동 열심히 하자, 그런 얘기지.” 

 “그러니까요. 맨날 보는 얼굴인데 저녁 자리까지 와서 같은 얘기를 하셨을 것 같진 않아서요.”

 “아이고 우리 탐정님, 한 마디도 지지 않으시는 걸 보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성미시구만. 그냥 그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진짜 특별한 건 없었으니까.”

 그는 손에 쥔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실눈을 뜨고 율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함과 동시에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광대뼈 밑에서 멈춰 있던 입꼬리가 내려가면서 조금 전까지 넉살 좋던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혹시 에덴빌리지 자연치유특구 조성 사업 인허가에 무슨 문제라는 있나요? 게시판에 글도 올라와 있던데요.”

 “환경단체야 원래 개발의 개자만 들어도 일단 반대하고 보는 게 일이니까. 잘 진행될 겁니다.”

 “그리고-”

 “아, 제가 약속이 있는 걸 깜박했네요.”

 이 의원은 갑자기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을 끊었다.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언제 시간이 맞으면 또 뵙죠. 그때는 제가 시간을 넉넉히 비워놓겠습니다.”

 조금 전과 달리 깍듯한 존칭까지 쓰며 율미의 괜찮다는 손사래에도 이동만 의원은 복도까지 배웅을 나왔다. 1층으로 내려온 율미는 의회사무과 입구에 은성호 얼굴을 확인한 후 조직도 전체를 촬영했다. 그때 피켓을 든 환경단체 회원들이 의회 건물 밖에서 웅성거렸다. 

 그들은 ‘꼼수 환경영향평가로 주민을 우롱하는 자연치유특구 전면 재검토하라!’, ‘막대한 산림훼손, 누구를 위한 자연치유특구인가?’라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조금 전 이동만 의원이 재실등을 끄고 배웅이랍시고 복도를 지나 뒷문으로 나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침 주차를 하던 박 의원은 회원들과 마주치자 그들을 설득하며 함께 의회로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일부 회원이 의회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박 의원과 눈이 마주친 율미는 가볍게 목례한 뒤 차를 돌려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율미는 노트북을 켜고 문화군의회 회의록에서 자연치유특구 검색어를 넣자 스무 건도 넘는 회의 목록이 만들어졌다. 285회 임시회. 286회 임시회. 290회 정례회……. 

 율미는 관련된 모든 회의록을 복사해 폴더에 저장했다. 단순하고 지루한 회의록 다운이 끝나자 이번에는 게시판으로 가 환경단체 회원이 올린 게시글도 긁어왔다.   


 자연치유특구 사업은 자연 치유와 친환경 농업을 기반으로 에덴빌리지에 새로운 관광 플랫폼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였다. 올해 초 중앙정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었으며, 사업비는 총 1,280억 원. 공사 기간만 5년이 걸리는 문화군 최대 규모의 장기 프로젝트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역 경기를 살리는 중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사업에 반발하며 졸속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될 경우 사업 백지화를 위한 반대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공사 예정지인 시루산은 참꽃마리와 벌개미취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지로 개발이 진행될 경우 생태적 균형이 붕괴되고 광범위한 환경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들은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설계를 변경하는 꼼수를 쓰지 말고, 정밀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히 시행하라고 촉구하며 문화읍내 곳곳에 현수막을 게첨했다. 

 회의록에서 장 의장은 자연치유특구 사업의 문제점과 환경훼손 우려보다는 지역 경기 활성화를 위해 조속히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며, 인허가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문화군청에 요청했다. 자신의 부지가 포함돼 있어서일까, 그는 자연치유특구 사업을 적극 찬성하는 지역구 의원으로 비쳐졌다.  

 

 율미는 장 의장과 관련된 사람들의 SNS 흔적도 추적했다. 먼저 장 의장은 재선 후 꾸준히 의정활동 보고서를 블로그에 올려왔다. 가장 최근 게시글은 자연치유특구 지정에 대한 환영 글이었으며, 문화군 발전을 위해 더욱 힘쓰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안수정은 농협 홍보 자료나 몽블랑클럽 봉사활동 단신 기사에 잠깐씩 등장했을 뿐, 개인적인 게시물은 없었다. 길현숙과 은성호는 SNS를 하지 않았고, 강현준의 인스타그램 역시 여행과 맛집 후기 등 지극히 평범했다.

 한편 정진태 군수는 목요일 오후 에덴빌리지 주민들과 만나 취수원 문제 해결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취수원을 폐쇄하고, 과거 취수원으로 활용되었던 송운강에서 임시 급수를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는 긴급 수질 검사를 직접 시행한 뒤, 이동식 펌프와 기존 설비를 보완해 급수 네트워크에 연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대한 서두르면 일주일 내로 시운전이 가능할 것이라며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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