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이야기(1)_들어가며
4월이었나 5월이었나. 사실 10년쯤 지난 과거인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날씨가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졌던 면접장의 에어컨 촉감만 생생하다. 그날은 S전자의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어영부영 인적성 검사를 통과한 나는 면접 전날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고, 급히 장만한 수트와 넥타이를 어색하게 걸친 채 그 회사 서초사옥에서 긴장하며 대기 중이었다. 그날 면접만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귀대해야 하는 처지였다.
나는 군인 신분이었다. 6월 말 전역을 2~3개월가량 앞둔 ROTC 출신 중위. 몇천 명 가량인 전국의 중위들은 하나같이 짧은 머리와 어색한 수트를 군복처럼 입고 여기저기 면접을 기웃거렸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제대하면 뭐 먹고사나. 내가 과연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와중 내 이름이 불렸을 것이고 난 제식을 연습하듯 어색하고 뻣뻣하게 진행자를 따라나섰을 것이다.
면접장소 바로 앞 의자에서 진행자가 긴장하지 말라며 이런저런 말을 걸었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껏해야 사원이나 잘 쳐줘도 갓 대리정도 되었을 직원. 당시 그가 어떤 심정으로 내게 말을 걸었을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약간의 측은지심과 관심, 이 과정을 몇 년 전 다 겪어본 자로서의 여유와 우월의식. 보통 현직자들이 본인 회사에 지원하는 취업준비생을 만날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때문에 그는 당시의 불쌍한 나를 보며 본인의 현재 지위에 대한 안정감을 확인받고, 차마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본인의 여러 불안 요소들을 떨쳐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 대상이 오늘이 지나면 영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렇게 기억나지조차 않는 짧은 대화 후 면접장에 들어선 나는 2~30분가량 면접을 진행했다. 여러 얘기가 오갔겠지만 기억나는 질문은 단 두 개이다. 먼저 자기소개, 자기소개야 당연한 첫 번째 질문이었지만 (참고로 최근의 면접 트렌드는 고리타분한 1분 자기소개는 안 하는 분위기이다) 그게 기억나는 이유는 지원자들의 대답이 천편일률적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지하수 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뚝배기 같은 사람입니다' 한 명은 뭐더라... 아마 당시에는 특정 개체에 자신을 빗대어 설명하는 게 면접 트렌드였던 모양이다. 분명 어떤 대기업 출신의 면접 강사가 만들어낸 근거 없는 트렌드였겠지. 면접관들은 그걸 참고 들어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튼 면접특강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무식쟁이 군인인 나는 그들처럼 대답하지 못했고, 나를 바라보는 다른 지원자들에게 감정적 위안을 또 제공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스티브 잡스'를 이야기했다. 면접관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프로답게 표정을 바꾸며 본인들도 사실은 전부 아이폰을 쓴다며 휴대폰을 꺼내 보이는 기지를 발휘했다. 아마 그 장소에 모바일사업부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면접이 마무리된 며칠 후 나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내 학교 동기는 '미친새X 아니야 이거'라고 일갈했고, 난 거절당한 아픔을 잊기 위해 낄낄대며 그에게 합격 축하 메시지를 전했던 것 같다.
(그 형은 나와 같은 날 면접을 봤고, 10년쯤 지난 지금도 S전자 직원이다.)
당시는 아이폰5가 출시된 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고, 그 회사는 아직은 완성도가 낮은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던 상황이었다. 당시의 내가 위험부담을 안고 경쟁사의 수장을 굳이 얘기했던 이유는 그게 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아이폰이 야기한 세상의 변화에 관심이 많던 나는, 스티브 잡스의 타계 소식에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었다. 나름의 추도하는 의미에서 그에 관한 책, 다큐멘터리 등도 몇 편쯤 구입했더랬다. 지금의 난 비록 다른 회사를 다니지만 인사담당자로서 꽤나 많은 면접경험을 갖게 되었고, 지금의 내 관점에서 생각해 봐도 그 답변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그 답변이 합격권이었던 나를 탈락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대기업 정서상 신입사원에게 제1로 요구되는 역량 중 하나는 '조직적응력'이고 내로라하는 우수 지원자가 몰리는 그 회사에서 굳이 특이한 대답을 한 그날의 나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으로 보였을 그날의 나를 굳이 굳이 뽑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즈음 나는 여러 회사의 인적성과 면접을 보았었다. 그중 특별히 기억나는 또 다른 면접은 모 의류(유통) 회사의 면접이다. 그 회사는 특히 장교출신을 선호하는 회사로 조직문화 측면에서 매우 악명이 높았는데, 나는 그걸 익히 알고서도 경험 삼아 면접에 응시했었다. (하지만 만약 다른 곳이 다 떨어졌다면 거기라도 갈 심산이었다. 그게 취준생의 절박함이니까)
4:4 정도 되는 다대다 면접이었고, 면접관 4명 중 외국인이 포함돼, 그 사람에게는 영어로 질의응답을 진행했어야 했다. 여느 회사와 다름없는 30분가량의 질의응답이 진행되었고, 문제는 면접이 다 끝난 이후였다. 4명 중 중간서열쯤으로 보였던 여성 면접관은 생뚱맞게도 지원자의 술담배 여부를 질문했다. 그 회사는 기독교 회사로 술담배 하는 직원을 뽑지 않는다는 도시전설은 익히 들은 바 있었으나, 막상 그 질문을 실제로 들으니 크리스천인 나로서도 어안이 벙벙했다.(대체 회사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것과 직원의 흡연여부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지원자들은 모두 본인은 비흡연자며 "만약 그래야 한다면 술도 끊을 수 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면접관의 피드백이 더 압권이다.
“채용 검진 단계에서 도핑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며, 그때 본인이 답한 흡연여부가 거짓임이 드러나면 채용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채용이야 아무리 기업의 재량이라지만,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다고 느껴졌다. 결혼상대를 고르는 것이라면 흡연여부뿐 아니라 집안 재산, 부모 이혼여부 등까지 다 탈탈 털어서 따져보는 게 맞겠지만, 월급 주고 일 시킬 직원을 뽑는 자리에서 무슨 흡연 여부까지 묻는단 말인가. 요즘 같아서는 흡연이 직무수행 역량과 상당히 무관하다고 입증된다면 채용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이슈가 발생할 것이다. (또한 흡연여부는 개인의 민감정보 아닌가... 수집 시 동의도 받아야 한다. 무튼 말도 안 된다.) 면접장소가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면접이 끝나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실소가 나온다. 모두 겉으로는 "이딴 회사는 합격해도 안 간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내심 '그래도 여기라도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시기니까. 취준생의 마음이란 그 정도로 절박하다.
그 면접의 합격 여부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히 다른 상식적인(?) 회사에서 면접 합격 통보를 받은 후 내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졌으니까.
(그 회사는 얼마 뒤 연장수당 체불 비슷한 이슈가 불거져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업무시간에 담배도 안 피우는 성실한 직원들 뽑았으면 돈은 제때 줘야 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