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 vs 제너럴리스트(2)
지방 발령. 업종과 규모를 막론하고 직장인으로서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에서는 인력 순환이 불가피하고, 이는 비단 본사와 지방사업소 등 근무 장소뿐만 아니라 직무 간에도 흔히 일어난다. 특히 유통업의 경우에는 3~4년에 한 번씩 반드시 근무장소 직무를 전환할 기회를 부여한다. 회사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이를 순환배치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기적 순환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개인감정을 배제한, 순환배치의 객관적 필요성은 무엇일까?
먼저 신입사원이 배치받은 부서에서 적성과 흥미를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대부분 부서배치는 회사의 권한이므로 개인의 선택권이 제한적일 뿐더러, 신입사원은 아직 자신의 강점과 적성을 잘 모를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적성이 맞지 않는 것 외에도 더 큰 문제는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이다. 이는 업무적성 불일치보다 훨씬 더 큰 문제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당장 1 ~ 2년은 어떻게든 참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업무 비효율을 방치하는 것은 회사와 개인 모두에게 큰 손해다. 견디지 못한 직원이 이직이나 퇴사할 경우, 그동안 투입된 교육비용 등이 전부 손실로 전환된다.
둘째로 관리자로서의 매니징 역량 증진을 위해서는 다양한 부서의 업무와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측면이다. 한 부서에서만 계속 일하면 전문성은 증진될 수 있지만 시야가 좁아진다는 단점도 있다. 한국의 경우, 승진하여 직급이 올라가면 대부분 예외 없이 단위조직을 관리하는 부서장 역할을 맡게 된다. 문제는 부서장이 되는 순간 실무자와 전혀 다른 역량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부서의 프로젝트,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부서원 개개인의 역량을 고려하여 적절히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타 부서 및 경영진과의 업무협업 및 갈등을 조율하는 능력 또한 필수적이다. ‘내 업무’에만 매몰되어 온 실무자에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다양한 부서의 업무를 경험해 본 사람은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부서 간 협업과 갈등조율을 비교적 원활히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매너리즘과 관행 타파 관점이다. 예를 들어 영업담당자의 경우 부서이동이 없으면 오랜 시간 같은 협력사와 일하게 되는데, 여기서 이 직원과 협력회사 간 불필요한 커넥션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혹은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이 업무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장기간 기존 관행을 답습하고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많은 경우 판을 뒤흔드는 역할은 새로 영입된 인재가 담당하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은 <초격차>라는 책에서, 삼성전자 권오현 前 회장은 사일로 현상(silo effect) 타파를 위해 부서 간 배치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제가 취하는 방식은 ‘제품 개발의 왕’을 그 사일로에서 차출해 ‘제조의 왕’ 자리에 앉혀 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게 전광석화처럼 인사 발령을 내버립니다. 당연히 ‘제품 개발의 왕’은 당황하겠지요. 왕의 자리에 추대되어 왔지만 그는 개발 부문에서만 왕이었을 뿐 제조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 새로 추대된 왕은 어쩔 수 없이 그 사일로에 속한 부하 직원들의 말을 듣기 시작합니다. 소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격적으로 교차 배치를 하다 보면 또 다른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납니다. 자신이 언제 어느 사일로로 배치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일로들끼리 사전에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합니다. 개발, 제조, 마케팅이 서로 대화의 채널을 열게 되는 것이지요. 미리미리 다른 사일로와 협력을 하게 합니다. 안타깝지만 자발적으로는 이런 채널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제가 관찰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었습니다.” - 권오현 저, <초격차> 中
굳이 다른 팀으로 갈 것도 없이 본인 팀 내에서도 모든 정보와 히스토리를 꽉 쥐고 부하직원에게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된다. 특히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하다. 본인이 나는 정보를 타인에게 공유하는 순간 본인의 존재가치가 희석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권오현 회장의 통찰대로, 만약 그런 사람들이 몇 년 뒤 부서이동을 해야 한다는 현실을 마주한다면 어떨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본인이 가진 정보를 누군가에게는 공유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나도 다른 부서에 관한 정보를 청취할 수 있으니까.
이렇듯 전환배치가 직장생활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보니, 부서 적응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인사철이 되면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신경만 곤두세울 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인사팀에 친한 사람이 있는 경우 그 사람을 통해 본인의 고충을 상담하거나, 희망하는 부서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 빈자리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등.
전환배치를 희망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를 체크해야만 한다.
첫 번째는 희망 부서의 충원 계획 또는 인원 변동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유관부서 간 본인의 평판이 어떠한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마케팅 부서에 있는 직원이 구매부서로의 전보를 희망한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구매팀에 공석이 없고, 구매팀장이 이 마케팅 부서 직원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얘는 누군데 T/O도 없는 우리팀에 전보를 신청했지?' 라고 생각하고 말 뿐이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판이다. 이직이든 부서이동이든 이동의 종류를 막론하고 많은 경우 그 향방과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평판이다. 이직 시에도 레퍼런스 체크를 하듯, 사내 부서이동의 경우에도 부서장들도 당연히 평판체크를 진행한다. A가 우리 부서로 오고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서장은, 팀원들을 시켜 A가 어떤 직원인지에 대해 조사해볼 것이다. 평상시 근무태도는 어떠했는지, 유관부서와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인사는 잘하는지, 심지어 어떤 경우 주량이 어떻게 되는지 등 이 사람이 평소에 형성한 모든 것이 평판이 되어 거취를 결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고성과자의 거취뿐 아니라 저성과자의 거취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된다. 어느 부서장이든 고성과자는 뺏기지 않기 위해, 저성과자는 어떻게든 내보내기 위해 애쓰기 마련이다. 이 과정은 마치 프로야구의 FA 과정과 유사하여 'A를 내가 받을테니, 대신 B는 다른팀으로 보내달라' 식의 흥정이 진행되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