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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애 Jun 19. 2024

칼 라르손_사회는 생명체다.

                                                   칼 라스손 <바느질하는 소녀>, 1911


바느질하는 여인

 

노란 벽의 작업실에 빛이 환하게 쏟아진다. 빛이 밝게 비쳐드는 작업실에서 어예쁜 여인이 바느질을 한다. 나도 한때 이랬던 때가 있었다. 결혼 전 청담동소재 **웨딩에서 일할 때이다. 전공은 달랐으나,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취업훈련과정으로 양장기능사과정을 이수했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학생처럼 꼬박 3개월을 들었다. 아쉽게도 양장기능사 시험에는 쓴 고배를 마셨다. 여러 군데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냈고, 그 중 2곳에서 합격소식을 전했다. 동대문 스포츠의류회사와 청담동 **웨딩이었다. 

 

청담동 웨딩샵

 

두 곳 다 매력적이었으나, 청담동 웨딩드레스매장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그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력서를 낼 때의 포부와 다르게 일은 매우 고되었다. **웨딩은 드레스를 직접 제작하는 매장이었다.

 

매장의 경영자이면서 디자이너인 선생님이 드레스를 디자인을 하신다. 패턴기능사선생님이 디자인에 맞는 패턴을 뜨고, 양장기능사선생님이 패턴대로 옷을 제작하신다. 비딩하시는 선생님은 드레스위에 반짝이는 비즈를 아름답게 수작업으로 장식하신다.

 

나는 그곳의 막내였다. 아침에 출근하면 매장오픈과 함께 매장청소로 하루를 연다. 청소 후 믹스커피를 한 잔 타서 자리에 앉는다. 화려하고 값비싼 레이스를 올이 풀리지 않도록 수놓아진 모양대로 자른다.

수놓아진 레이스 위에 보석 같이 반짝이는 비즈들을 수작업으로 꿰메어 단다. 완성된 드레스의 밑단을 공그르기로, 드레스 바깥쪽에 표나지 않게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한다. 매일 바늘 끝을 보며 바느질하다보니, 덤으로 안구건조증도 얻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포장, 발송하는 일도 내 담당이었다. 주문 들어온 드레스를 깔끔하게 다림질하여 박스에 포장해서 업체주소를 적어 발송했다. 또한 매장을 찾는 신부손님을 맞이했다. 우리 매장은 드레스를 직접 제작하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고가였다.

 

대부분의 고객은 신부가 아닌 웨딩홀이나 웨딩촬영업체 같은 곳이다. 그래서 업체고객이 착창 모습을 궁금해 하시면 피팅 모델도 했다. 그 때는 날씬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간혹 열리는 웨딩박람회와 웨딩잡지 촬영 때도 일도 도왔다. 간식을 사오는 등의 잔심부름들도 도맡았다.

 

게다가 근무시간은 평일 오전10부터 오후8시까지, 토요일도 오후 5시까지였다. 반면 고된 업무에 비해 급여는 매우 적었다. 아마도 당시 최저시급에도 못 미쳤을 것이다. 배우는 견습생이라는 이유에서다. 보통회사의 수습기간이 3개월인데, 이곳은 1년 후에야 급여가 인상됐다.

 

그래도 좋은 점은 내 결혼식에 **웨딩의 예쁜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스코리아 김예분이 입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아주 연한 핑크색의 예쁜 비즈가 빼곡히 수놓인 드레스였다. 어깨끈을 떼어서 탑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했는데 끈으로 입어서 아쉬웠지만.

 

웨딩드레스샵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 그림에서처럼 우아하게 바느질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도 그렇게 우아한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실제 일은 겉보기와 매우 달랐다. 후에 동대문에 취업되었던 동료수료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그녀도 일이 너무 고되어 퇴사했다고 한다.

 

사회라는 유기체

 

비단 웨딩업계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경력단절이 되어 긴 시간동안 육아를 해오며, 사회로의 복귀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했던, 그 때의 현실을 떠올리면 막상 두려워진다. 업무능력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긴 업무시간과 업무량, 상사의 눈치 보기, 동료와의 일의 경계 등의 문제들로 얽히는 것이 더 걱정된다.

 

나의 개성이란 것은 무시되고, 그냥 그 자리에 맞는 부품이 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거대한 사회라는 기계에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해버리는 느낌. 지금도 여전히 사회에 나가면 그런 느낌으로 일을 해야 할까? 아이들도 학령기를 마치고 사회인이 되면, 그런 느낌으로 사회생활을 하게 될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 삶의 타당성(어떤 판단이 가치가 있다고 인식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지나온 나의 사회생활의 타당성을 찾아보려 했다. 물론 일차적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사회를 딱딱한 기계가 아닌 하나의 유기체,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보면 어떨까? 보통 흔히들 그렇게 표현하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기계처럼 딱딱했으니까.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며, 서로에게 기여하고,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런 생명체 말이다.

 

그래도 전보다 나아진 점은, 내가 일을 함으로써 이 사회에 기여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거다. 조금씩 일을 하며 사회에 기여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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