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파울리 < 아침식사 시간, 1887 >
햇살이 비쳐드는 식탁
하양 식탁보 위에 화려한 식기로 멋지게 차려진 테이블이 있다. 하양 앞치마를 두른 여인이 식기를 나르고 있다. 눈부시게 비쳐드는 햇살에 동그란 테이블위에 하얀 식탁보. 20여년전에 꼬모 호숫가에 있던 카페가 생각난다. 그림속의 지면 끝에, 나뭇잎들 너머에는 꼬모호수가 있을 것만 같다.
내 나이 스물여덟.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가 있던 이태리로 향했다. 친구는 패션공부를 하겠다고 퇴직금을 들고 혈혈단신으로 그곳에 가 있었다. 그 때 당시엔 그 나이도 많게 느껴져서 주변에서는 그녀를 만류했다. 그럼에도 용감한 그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년 뒤 나는 그녀가 있는 그곳으로 한 달간 여행을 다녀왔다. 그녀가 아직 국외체류허가증이 없어 이태리만 여행한 것이 아쉬웠지만, 너무 좋았다. 먼저 그녀가 거주하던 밀라노에 도착해서 일주일간은 그녀 집에 머물면서 밀라노 근방을 돌아다녔다.
근거리 여행
꼬모 호수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그녀의 룸메이트와 함께. 새 공포증이 있던 룸메이트는 비둘기가 우리의 주위에 몰려들자 질겁을 했다. 그림에서처럼 하얀 식탁보가 깔린 동그란 테이블에 셋이 앉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맛있는 젤라또를 먹었다.
베니치아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물위의 도시라니...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네들은 어쩜 그렇게 건축물들을 예쁘게 만드는지, 어쩜 그리 꽃은 예쁘게 피었는지, 햇살은 그리 눈부시게 사물의 색감을 살려주는지..
베네치아는 가면축제로 유명한 곳이어서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가면들이 즐비했다.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섬에도 갔다. 무라노섬에서 유리를 불여 녹여 유리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직접 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조그맣고 예쁘게 만드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기차여행
밀라노 근교 여행 뒤엔 기차를 타고 남부 쪽으로 내려가면서, 유명 도시들을 둘러보고 오기로 계획했다. 먼저 파르마로 갔다. 친구가 이곳이 이태리에선 음식으로 유명한 곳이라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가 8월이어서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았다.
그곳은 관광지가 아니어서 모두 휴가를 떠난 것이었다. 텅 빈 듯한 도시의 광장 앞에 다행히 문을 연 식당 두 곳이 있었다. 웨이터는 또 왜 그리 잘생겼는지, 감사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서빙을 받았다. 음식 맛은 역시 좋았다. 우리가 너무 욕심껏 시켜 남긴 것이 좀 아쉬웠지만 말이다.
그 다음 도시는 로마. 저녁 늦게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잔 뒤, 아침 일찍 성 베드로성당으로 향했다. 파르마와 다르게 이곳은 인파로 북적였다. 입장권을 사기 위한 줄도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현금을 다 써버린 나는 여행자수표를 바꾸기 위해 은행을 들어갔다.
줄은 그렇게 길지 않았으나,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만 할 뿐 고객응대를 하지 않았다. 줄은 줄어들지 않았고, 기다린 시간만 두어 시간이니 친구가 묘안을 내었다. 자기는 입장권 줄을 설 테니, 나더러 사설 환전소에서 여행자수표를 바꿔오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줄을 서기 위해 갔고, 나는 사설 환전소를 찾아갔다. 환전소 안은 어두웠다. 손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반원형 구멍이 뚫린 곳으로, 여행자수표를 건네주고 현금을 받았다. 주인은 인도계처럼 보였고,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미션완료 후, 줄을 서 있던 친구에게 가서 입장권을 사고 바티칸시국에 들어섰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천지창조, 피에타 조각, 돔 천장화, 계단마다 양옆에 늘어선 조각과 그림들. 신이 나서 감상하고 사진을 찍었다.
다 둘러보고 광장으로 나와 앉았다. 친구와 찬찬히 여행자수표 금액을 계산해보니, 수수료를 너무 많이 떼인 것이다. 기억에 약 2~30만원 가량 사기를 당했던 거 같다. 말도 통하지 않고 계산도 어수룩한 내가 만만히 보였나보다. 친구랑 다시 찾아갈까하다 무서워서 포기했다.
피렌체, 폼페이, 아씨씨, 나폴리, 카프리,베로나도 갔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오트란토에선 숙소를 못 구해 노숙까지 감행-주말과 겹쳐 현지관광객들로 모든 숙소가 만실이었다-했다. 레체역에서 벤치위에 수건을 깔고, 배낭을 베고 누워 하룻밤을 지새야했다.
스머프에 나올 것 같은 원뿔모양 집들이 가득한 알베르벨로에도 갔다. 원뿔집에 머물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온 동네를 뒤져 식당건물 2층의 숙소를 간신히 구해 묵었다. 노숙 안하게 된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며. 때마침 달이 빨간색이라 레드문이라며, 친구랑 사진을 찍고 호들갑을 떨었다.
다시 친구 집으로 돌아와 재정비 후, 북부의 친퀘떼레에 갔다. 에메랄드빛 아름다운 해변에서, 성인 중에 튜브를 타는 건 우리밖에 없었다. 이태리인들은 모두 수영을 잘하나 보다. 해변이 아닌 수심이 깊은 해안에서도, 호수 가운데서도 수영을 잘도 즐기는 것이었다.
똑같이 삼면이 바다인 반도인데, 우리가 완만한 해변만을 즐기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20여년전의 여행담을 꺼내놓으니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제 아이들도 자신의 신변처리는 할 만큼 컸으니, 또 다시 신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