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을 바라보는 아들 둘 엄마의 고백
"지금 네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치사하고 졸렬했는지 알아?"
눈만 뜨면 시작되는 사내아이들의 싸움에 기어이 끼어들고 말았다. 정확히 얼굴만 마주쳐도 시작되는 녀석들의 기싸움에 매번 노출돼있던 묵은 감정이 터지고 만 것이다. 아침부터 으르렁 거리는 녀석들을 참아주는 것도 한계치였다. 4살 터울이면 이렇게까지 싸우지 않겠지 싶었는데 둘째가 유치원에 다니는 시점부터 녀석들의 신경전은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아들 둘 엄마는 깡패가 된다더니,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깡패가 아닌 괴물이 되어가는 기분을 이따금 느끼고 만다.
시종일관 자신보다 약한 동생을 놀리고 하급취급하는 큰아이의 행동을 꾸짖었다.( 꾸짖었다 표현하고 싶지만 비난에 가까웠다 싶다.) 끝도 없이 형의 말에 말대꾸하고 덤비며 자신의 뜻대로 안 되는 분노를 물건 던지는 것으로 풀어내는 둘째를 꾸짖었다. (이 역시 협박에 가까운 혼냄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안에 나의 이성은 이미 화성으로 간지 오래이다. 갈라지듯 높아지는 목소리, 울그락 불그락 커져버린 눈과 악을 쓰는 입이 거울에 비치듯 느껴졌다. '아.. 나는 지금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시어, 애굽의 노예들을 구원하신 것과 같이 홍해를 갈라 길을 내어 주신 기적을 일게 하셨다. 눈치 빠른 큰아이가 상황파악을 끝내고 신발을 신고 나가자 영악한 둘째도 제 형을 뒤따라 나선다. 순식간에 현관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재빠르게 집을 탈출한 것이다. 텅 빈 거실에 홀로 남겨진 나는 헐크가 브루스배너로 돌아오는 허무와 혼란을 고스란히 느끼고 서있어야만 했다.
이성이 돌아오면 자괴감이 꼬리표처럼 따라 온다. 집안의 무거운 공기를 감당하기 힘들어 가방을 들춰 메고 집 앞 카페로 터벅터벅 걸어가며 생각한다. '우리 집의 문제는 형제간 서열의 문제가 분명해'
워킹맘으로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을 한 것이 죄책감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육아를 핑계로 회사에 짐스러운(=무능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자격지심에 100일 된 둘째를 지방 시댁에 맡기고 복귀해야 했고, 돌 무렵이 되어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온 둘째가 우리 부부에겐 늘 안타까운 존재였다. 그래서 더 사랑을 주어 품어야겠다는 생각들이 무의식 중 큰아이에게도 강요된 게 아닐까.
'아기니깐 양보해 줘' '너는 형이니깐 동생에게 그렇게 해야 해' '엄마랑 떨어져 지내야 했던 아기니 우리가 더 잘해주자'
마찬가지로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던 유치원생 큰아이에게 어쩌면 너무도 일방적이고 강압적일 수 있는 가족애가 현재 형제의 난에 큰 서사가 아닐까 싶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주변 형제 엄마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며 형에 대한 우대, 서열 관계의 명확성 등의 조언들이 문제의 키워드처럼 느껴졌다.
정말 그게 다일까?
카페에 들어와 찝찝한 기분을 중화하기 위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그다지 관련 없는 책이었지만 나의 의식이 그쪽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기에 책 속의 문장들이 묘하게 연결이 되는 듯했다.
'서열 사회이기는 한데요. 인간을 뺀 영장류 세계의 알파는 우리의 알파와는 달라요. 프란스 드발이 쓴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에 다르면, 수컷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두머리 수컷은 절대로 전부를 거머쥐지 않습니다. 나눕니다. 침팬지 사회를 예로 들면 동맹을 맺은 여러 수컷이 기존의 알파 자리에 있는 수컷을 두들겨 패 무너뜨리고 바로 그 동맹 관계에 있는 수컷 중에서 하나가 새로운 우두 머리를 차지합니다. 우두머리 침팬지가 협력한 동료 침팬지에게 권력을 나눠 주지 않으면 , 동료 침팬지들이 다시 다른 침팬지들이랑 동맹을 맺고 호시탐탐 노리다가 우두머리 침팬지를 몰락시킵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는 거죠... 동물들은 잘 알아요. 우리 인간이 오히려 너무 지나치게 승자 독식하죠. 혼자 다 가지잖아요. ' - 최재천의 공부 중
아이들의 관계는 서열의 관계를 넘어서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인정받기 위한 투쟁같이 느껴졌다. 상대방의 우위에 서서 힘이 센 녀석은 약한 녀석을 누르고 약한 녀석은 눌린 자신의 상황을 어필하며 엄마의 환심을 끌려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음을 참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개입을 하려 드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조금 더 영리하게 두 사내아이들이 동맹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 같이 괴물로 변해 아이들을 겁주는 강압적인 엄마는 더 이상 되고 싶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대개는 이야기하면서 많이 풀려요. 저는 기숙사 튜터를 하면서 들어주기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캐내려면 말을 잘 걸어야 하죠. 내가 말을 많이 해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자연스럽게 듣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먼저 말을 시작하게 주도권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제가 주도권을 가지면 아이는 묻는 질문에 답만 하지만, 아이가 주도권을 가지면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인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술술술 붑니다.'아! 요 녀석이 요즘 이것 때문에 그렇구나' 감이 오죠. 하지만 참는 게 참 힘들어요.'
-최재천의 공부 중
이 문장을 읽으며,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생각했다. 마침 금요일이니 치킨토론회 정도로 이름을 붙이고 속에 쌓인 얘기라도 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보고 아이들이 오늘 아침의 일들에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들어봐야겠다. 물론 대화의 주도권을 두 아이에게 쥐어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마지막 명심할 뼈 때리는 책 속의 문장 하나 더!
'1초는 부족합니다. 1분은 참아야죠. 침묵을 내가 깨지 않도록 이 악물고 참아야 해요.'-최재천의 공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