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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김 Jul 12. 2024

싸이의 챔피언과 나의 챔피언

  ~ 하! 모두의 축제!! 서로 편 가르지 않는 것이 숙제 ~ 

  ~ 소리 못 지르는 사람 오늘 술래~

  ~ 다 같이 빙글빙글 강강수월래~~

      

10년 전 후배 따라 싸이 콘서트에 갔었다.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관중과 함께 뛰고 소리 지르는 순간 나는 챔피언이 되었다. 

   

심신이 느른한 장마철, 그날의 챔피언으로 돌아가고 싶어 앨범을 뒤적이다 빛바랜 사진 하나에 눈길이 멈췄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 한 나는 친구 따라 작은 학교에 갔다. 교문도 울타리도 없는 학교였다. 낮에는 공부하는 교실, 밤에는 태권도장으로 쓰이는 체육관 건물이었다. ‘천지재건중학교’라는 간판이 가난한 집 문패처럼 작고 초라했다. 


당시 육군 6사단은 병사 중 학력이 우수한 자를 선발하여 교사를 지원해 주었다. 대학교에 다니다 군에 입대한 선생님들은 열정과 패기가 넘쳐났다.     

  

여학생들은 말뚝 박기와 제기차기를 하며 놀았다. 남학생들은 교실 한쪽에 있는 복싱용 링 위에 올라가 코피가 터지도록 싸우곤 했다.

윤 선생님은 그런 악동들에게 기대를 버리지 않고 희망을 걸었을까? 어느 날 국어 시간이었다. 지겹게 말을 안 듣는 학생들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한동안 넋을 잃고 창밖을 바라보더니 책을 덮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업은 여기서 마치고 모두 밖으로 나가자” 평소처럼 큰 목소리면 익숙할 텐데 낮고 단호한 음성이 예사롭지 않았다. 말괄량이 아이들은 서로서로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을 따라 학교 뒤편 2km쯤 떨어진 금학산으로 걸어가며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야외 학습이나 소풍 갈 때 재잘거리며 걷던 그 길이 고난의 행군처럼 느껴졌다.


산기슭 하얗게 핀 싸리나무 숲에 이르자 선생님은 말했다. 가장 곧은 싸릿가지로 자신의 매를 하나씩 고르라고 했다. 그도 싸리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뭔가 대단한 각오로 우리를 혼내려나 보다.’ 덜컥 겁이 났다. 장난기 많은 미숙이는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지? 살아남지 못할 거야”라며 침묵을 깼다. 우리는 각자 맞을 매를 하나씩 골랐다. 


맨손으로 싸릿가지를 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닥다닥 달린 싸리 꽃을 훑어 내리고 꺾어야 하는데 잘리는 부분이 갈기갈기 갈라져 쉽게 꺾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통통하고 쭉 뻗은 싸릿가지를 골랐다. 아이들은 숲 속에서 하나둘 나오며 자연스레 줄이 이어졌다. 그때까지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교실로 되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뭘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정규 학교가 아니다. 졸업한 선배들은 직업훈련소나 공장에 취직했다. 우리가 3학년이 되니 선생님은 우리의 진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검정고시로 학력을 인정받고 고등학교 진학하기를 권했다. 한 자라도 더 가르치려고 수업시간표에 없는 보충수업을 강행했고, 야간에는 부잣집 자녀 과외수업을 해 번 돈으로 우리들의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줬다. 

     

교실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교탁에 자신의 매를 올려놓았다. 나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내 종아리를 주물렀다. 매의 충격을 막아보려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는 반장에게 아이들이 가져온 매를 모두 걷어 오라고 시켰다. 걷은 회초리는 40개가 되었다. 눈을 뜨면 용서하지 않겠다며 눈을 감으라고 지시했다. 숨을 죽이며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세차게 누구를 내리치는 소리가 났다. 그는 교단에 앉아 바지를 걷어 올리고 41개의 회초리 다발로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교단으로 뛰어나갔다.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도 무서워 나는 제 자리에 서서 엉엉 울기만 했다. 덩치 큰 남학생이 선생님을 뒤에서 부둥켜안았다.      


선생님은 너희를 잘못 가르친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며,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그의 종아리엔 피가 맺혔다. 겁에 질려 울기만 하던 여학생들도 모두 나가 매달렸다. 우리의 매로 우리를 때려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성난 파도와 같던 모습이 수그러들었다. 선생님과 우리는 서로 엉켜 눈물바다가 되었다. 용감한 반장 석태가 말했다. “다시는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홍수환 선수가 챔피언 먹던 그 명장면처럼.     

  

절망감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가르침에 대해 뜨겁고 순수한 열정을 보여준 귀한 선생님. 그 깊고 넓은 사랑은 나의 가슴에 챔피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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