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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 아줌마 Jun 14. 2024

셰어 하우스 0104

4. 캐묻지 않는 아내의 시선

아들 : 이건 아니죠. 오해의 소지가 커요.

  나 : 그 정도야?

아들 : 아마 이모한테 보여주면 당장 이혼하라고 할걸요. 내 친구들만 해도 그 이상한 집에서 당장 나오라고 할 거예요. 그냥 딱 문제 많은 셰어하우스처럼 보여요.


  아내와 남편의 시선으로 끄적끄적 쓴 글을 읽은 아들의 반응이다. 그런 글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많아서 별로란다. 당장 이모한테만 보여줘도 이혼하라고 할 테고, 자기 친구들에게 보여줘도 그 이상한 집에서 당장 짐 싸서 나오라고 할 거란다. 이 집의 구성원인 자기가 읽어도 문제 많은 셰어하우스 같은 느낌을 받는데 하물며 외부인이 봤을 때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이야기였다.     


 셰어하우스라? 틀린 말은 아니다. 결혼하면서 남편과 주거 공유를 시작했고 지금도 서로의 영역을 터치하지 않는 선에서 공용하는 부분이 있으니 셰어하우스라 부를 만하다. 결혼 후 1년 만에 거실의 TV를 없애 버린 이후로 한 번도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TV를 본 적이 없으니 화기애애한 가족에 대한 기억도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끔 공원이나 동물원 등을 함께 여행했던 기억과 저녁 식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오늘도 각자의 공간에서 뭔지 모를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네 사람이다. TV를 볼 때도 각자의 컴퓨터와 패드를 이용한다. 방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보일러 좀 켜 달라는 소리를 전화로 하는 둘째 아들, 이렇게 셰어하우스에서의 삶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듯 흘러간다.     


 왜 이런 형태의 삶이 불편하지 않을까? 처음 좁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겼을 때 뭔가 숨을 쉴 수 있는 숨구멍이 생긴 것만 같았다. 무더운 한여름에도 시원한 거실보다는 좁은 방에 문을 닫은 채 들어앉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내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좁아서 에어컨을 켜도 금방 꺼야 하는 이곳에선 거친 숨을 쉬어도 코를 골아도 청소하지 않아도 머리카락이 뭉쳐 굴러다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온전히 내가 될 수 있는 공간이기에 좁아도 좁다고 느껴지지 않고 아늑하다.   

   

  잠시 셰어하우스를 나가지 않고 23년 동안 유지해 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대체 나는 왜 캐묻지 않는가?      


  우선 복잡하고 머리 아픈 걸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다. 말주변도 없는 데다가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나올 대립과 긴장을 이길 자신이 없다 보니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캐묻지 않게 되었다.      

 둘째, 평생 일을 하며 큰 욕심 없이 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로를 옭아매며 피곤하게 사느니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하면서 각자의 일을 하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 피곤해도 계속 일을 할 것이기에, 또 앞으로도 계속 일해야 생활이 유지되기에 즐겁게 일하고 있다.   

   

 셋째, 물론 남편에 대한 믿음도 포함되겠지만 삶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 때문이다. 열심히 살면 신께서 선한 쪽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근검절약이 몸에 밴 생활 태도와 쓰는 것보다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다. 여기에 어려서부터 대가족 속에서 어려운 집안의 맏며느리로 큰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불평하거나 따지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영향도 있다. 역설적인지 몰라도 나만의 공간이 아늑하고 편한 이유는 그 공간이 가족이란 셰어하우스 안에 있기 때문이다. 문을 닫고 좁은 방 안에 처박혀 있다가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남편이든 아들이든 부를 수 있다는 단순한 한 가지 사실이 의외로 편안함과 안도감을 준다.          


     나 : 정말 문제 많은 셰어하우스처럼 보이네.

   아들 : 근데 절대 나쁘지 않아요. 남들 눈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간섭받지 않고 각자의 공간에서 자기 일 열심히 하는 거 그거 아주 좋은 거거든요.     


   문제 많은 셰어하우스로 보일까 봐 걱정하자 자기는 이렇게 사는 것도 편하고 좋다는 아들의 말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다행이다. 혹시라도 정말 문제 많은 셰어하우스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했는데, 나만 이런 셰어하우스 형태가 편한 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니란다. 다들 그런대로 각자의 삶에 만족하는 눈치라 안심이다. 아무리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된 곳이라 해도 셰어하우스는 다양한 것들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얼마 전, 마스크 없이 지하철을 탔다가 코로나와 독감에 걸렸다.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는 나에게서 작은아들에게로, 다시 남편에게로 옮아가며 온 가족을 힘들게 하고 있다. 덕분에 셰어하우스는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배려가 필요한 공동체임을 깨달으며 오늘도 좌충우돌 꿋꿋하게 행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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