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2023년 2월 15일
하루에 2번
응급실을 방문하고 모르핀 주사를 연거푸 2번 맞고
다시 수원으로 내려온다.
집으로 가져온 약으로 버티긴 쉽지 않다.
잠시 졸음이 밀려와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뜨기를 반복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서울로 향한다.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린다.
운전에 겁 많은 내가 속도를 내어 질주한다.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 앞
휠체어에 탄 그를 무릎담요로 따뜻하게 덮어준 뒤,
늘어진 줄에 서본다.
그리고 오늘은 입원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응급실 당직 의사는 또 왔냐며 나를 위아래로 쳐다본다. 그리고 핀잔을 준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합니까 되물으니
늘 주던 주사를 처방해 준다.
웬일로 오늘은 CT도 찍어보자고 한다.
편하게 누울 수도 없는 상황에 웬 CT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이런 처방을 내려줌에 감사하고 검사실로 향한다.
도저히 누울 수 없는 상태의 남편을 살짝 잠을 재워
검사를 한다. 폐에 물이 생겨, 입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병실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원하던 입원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는 병원에서 원하는 환자는 아니다.
더 이상 해줄 꺼라고는 모르핀뿐이니,
돈이 안 되는 환자이니 우리가 반가울 리가 없다.
2인실 입성
내가 누울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심에 감사하며
나도 잠시 눈을 붙인다.
응급실에서는 보호자에게 의자 하나 허락해 준다.
좁은 커튼 안에 앉아서 잠시 쪽잠을 자고 나면
어느새 응급실을 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따뜻한 방에 다리 펴고 누워 본 게 언제인가
누울 수 있으니 호강이다.
남편이 아파도 즉각적인 처치를 해줄 수 있으니
나도 이제 숨을 좀 돌려본다.
며칠 후
더 이상 피검사도 안 한다고 한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다.
내일은 병실도 이동하라고 한다.
간호사실 맞은편,
절대 가고 싶지 않았던 그 방,
임종실
나는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내가 남편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나를 고민한다.
그의 몸엔 방사선치료로 그어진 파란 선이 있다.
그 파란 선이 눈에 들어온다.
간호사에게 얻은 거즈에 따뜻한 물을 적셔 몸을 닦아본다.
입 안이 헐어 생긴 선명한 핏자국도 아프지 않게
최대한 살살 닦아준다.
이도 살살 닦아본다.
머리도 얼굴도 깨끗하게 닦아준다.
건조한 병실로 입술이 터지지 않게 립밤도 발라준다.
아이처럼 보송보송한 얼굴의 내 남편, 참 이쁘다.
눈 한번 떠주면 좋겠는데 병원에 들어와서는 줄곧 잠만 잔다.
그의 자상한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싶은데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2023년 2월 28일 그리고 3월 1일
달콤한 바닐라 라테를 한 잔 먹으면 모든 피곤이 사라질 것 같은데,,
남편 혼자 두고 이 방을 나갈 수 없다.
밥도 나가서 먹을 수 없다.
미리 사두었던 소시지와 베지밀 음료수, 과자 몇 개가
나의 허기를 달래준다.
언제 어떻게 호흡 장치에서 소리가 날지 모르는 상황에
잠을 푹 잘 수 없다.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를 들으며 잠을 깨어본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집에서 걸려온 전화 소리에 잠이 깬다.
며칠 후면 아이들 개학인데 엄마 없이 할머니가 아이를 등교시킬 게 걱정이신가 보다.
개학 준비를 좀 해주고 왔어야 했는데 그 흔한 알림장과 연필을 좀 여유 있게 사다 두고 오면 좋았을 텐데 아무런 준비를 해 두지 못해 나도 맘이 편치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을 내려둔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야간 당직 간호사가 교대 후 환자의 기본적인 체크를 하러 들어온다.
나에게 잠을 좀 잤냐며 인사를 건넨다,
오늘은 별일 없을 거라며 푹 자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준다.
10분 후 경고음 소리가 울린다.
나는 몇 번의 경험치가 있어 능숙하게 간호사를 호출하고 장치를 다시 세팅한다.
다시 안심하고 누웠다.
경고음이 또 울린다. 간호사를 다시 호출한다.
간호사가 아무렇지 않게 세팅을 다시 한다.
아직 간호사가 문밖을 나가지도 않았는데 경고음이 다시 울린다.
간호사가 표정이 어둡다.
보호자님 준비하셔야겠는데요.
순간 눈물이 막 쏟아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화기를 들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시 끊었다.
목사님께 전화를 건다.
새벽인데 감사하게도 바로 받아주신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울면서 애원했다.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신다.
하나님 불쌍한 이 영혼을 받아 주세요.
띠띠띠띠----------------------------------
사람의 감각 중 가장 마지막까지도 청각은 살아있다고 한다.
그의 귀에 나의 입술을 가까이 대며 마지막 이야기를 전한다.
나의 남편이어서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의 아빠여서 감사했습니다.
항상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한다고 자신했는데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더 받았습니다.
그대의 사랑을
아이들에게도 더 많이 나눠 주겠습니다.
우리에게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줘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 최선을 다해 잘 키우겠습니다.
울지 않고 씩씩하게 있을게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곳에서 편안하게 쉬어요.
잘 가요 내 사랑
그대가 나를 떠나간다.
저 멀리 멀어져 간다.
더 이상 잡을 수도 닿을 수도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아프지 않은 그곳으로,
편안한 그곳으로 그대가 가는 것이니
나 너무 슬퍼하지 않겠으나
그대가 없는 그 빈자리를 나 무엇으로 채울 수 있으리오.
오늘은 특히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멘트가 생각난다.
이선균의 나지막한 울림 있는 그 말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그대,
그곳에서 편안함에 이르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