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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Nov 19. 2024

[역사속의오늘사건] 1863년 11월 19일

링컨, 역사에 남을 게티즈버그 연설을 하다

1863년 7월 미국은 남북전쟁중에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약 150,000명의 병사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고작 인구 2,400명 밖에 안된 작은 마을 게티즈버그는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고 죽은 시체가 너무 많아 제대로 매장하지 못해 시체 썩는 내가 코를 찔렀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병사들의 시체를 매장하는 것이 주 일과였다. 


이 어마어마한 작업에 처음에는 공동묘지 부지를 매입하여 사망자 가족에게 매장료를 받아 매장해주기로 기획했으나 당시 판사였던 데이비드 윌스는 주지자에게 주 예산을 배정받아 국립묘지를 만들기를 청원한다. 


윌스는 묘지 헌정식은 10월 23일로 예정하고 국무부,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자, 하버드 총장, 부통령 후보 에드워드 에버레트를 연사로 초청하였다. 


그러나, 에버레트는 짧은 시간에 연설문을 쓰기 힘들다면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하였고 이에 11월 19일날로 연기하였다. 그리고, 이 연기한 기간 동안 윌스는 링컨 대통령을 초청한다. 연기가 안되었다면 링컨은 초청되지 못할 뻔 한 것이다. 


하지만, 에버레트에게는 준비기간이 40일이나 있었지만 링컨에게 초청장을 보낸 것은 고작 17일밖에 남지 않아 이는 어찌보면 무례한 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18일 펜실베니아주 게티즈버그에 도착한 링컨은 19일 단상에 올랐는데 이때 참석한 주지자는 당시 총 24주 중에서 6개주 주지사밖에 참여하지 않았고, 병사 시체 매장작업은 고작 절반 밖에 진행되지 않아 여전히 마을은 엉망인 상황이었다. 


연설은 에버레트가 먼저 단상에 올라 시작하였으며, 시간은 2시간에 걸릴 연설이었다. 그는 본래가 명연설가로 말 잘하기로 소문 나있었기에 이날 연설 역시도 명연설로 연설이 끝나자 모든 참석자들이 감동을 하는 등 반응이 좋았다. 

이후 단상에 오른 링컨은 짧은,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연설을 하는데 여기에서 우리가 잘 아는 명연설 문구가 등장하고, 이는 길이길이 민주주의의 하나의 레퍼런스가 되는 명연설이 된다. 이로인해 에버레트의 연설은 지금은 거의 잊혀져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문구 바로 그것. '여든하고도 일곱해 전'으로 시작되는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하나님의 보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당파에 대한 문제는 있어서 당시 민주당을 지지하던 시카고타임즈는 '멍청하고 평범한 일용직 잡부들이나 쓸만한 연설문으로 인해서 당대 지성인들의 얼굴이 불게  물들었다'며 그의 연설이 창피했다고 비판했지만, 공화당을 지지하던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완벽한 보석같은 연설문은 처음보며, 풍부한 감성, 명료한 표현, 단어마다 우아한 맛이 있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이 연설은 이후 모든 사회지도자들이 애용하고 인용하는 연설의 대표가 되었고, 우리도 이 연설을 교과서에서 그리고 시사, 신문에서 수도없이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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