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하늘로 돌아가다
고전음악의 대가 '모차르트'의 위대한 업적을 여기서 새삼스럽게 들추어 볼 것까지도 없지만 음악 역사상 지대한 영향력을 갖는 그의 많은 공적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소나타등 여러 음악형식과 교향곡이나, 협주곡이나, 현악 4중주곡 등의 실내악 등, 기악의 연주 양식을 개척하여 선배인 하이든은 물론 베토벤 등에 영향을 주었을뿐더러 근대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음악형식의 기틀을 닦았다는데 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모두들 모차르트를 천재의 모델 케이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일찍부터 천재적인 소질이 발휘되어 4살 때부터 찰스부르그 대사교, 즉 영주의 궁정악단 단원으로 있던 부친으로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작곡을 배워 이미 6살 때부터는 비인을 비롯 각 지를 순회하며 연주를 했고, 7살때에는 파리를 방문, 그리고 다시 런던을 거쳐 신동이란 경탄과 찬사를 받고 10살에야 고향에 돌아왔다. '모차르트'는 다시 13살 때 이탈리아로 연주여행을 떠나 15살에 귀국할 때까지 여러 곳에서 천재의 재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고향인 잘쯔부르크의 영주로부터 냉대를 받아 그는21살 때 새로운 일터를 찾아 파리로 갔었지만 여기서도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나 여건은 찾지 못해 신동이란 지난날의 화려했던 연주경력을 가진 '모차르트'도 실의를 안고 1770년 찰스부르그로 돌아왔다. 그러나, 1781년 그는 다시 고향을 떠나 빈으로 가서 거기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작곡과 연주, 그리고 교수로 나날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기악, 성악을 불문하고 모든 분야에 걸쳐 작품을 썼고 또 거의가 불멸의 명작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그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오페라, 종교음악 등의 규모가 큰 작품은 물론, 독주악기로서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중요한 작품을 쓰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 이 많은 작품의 양식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융합되어 있다. 이것은 '모차르트'가 어렸을때 부터 연주 여행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각양각색의 작품에 접했고 여러 가지 양식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파리 여행때 만하임에서 새로운 기악양식을 익혔고, 이탈리아 여행에서 오페라 양식을, 영국에서 요한 크리스찬 바흐로부터 새로운 피아노 작곡법을, 그리고 파리에서 만하임파인 쇼오버어트로부터 새로운 실내악 양식을 계시 받았었다.
또한 빈에서는 하이든으로부터 실내악 특히 "현악4중주곡"의 작곡법에 중요한 암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러한 요소를 막연하게 도입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동화하고 순화시켜 여기에 깊은 감정과 정서를 넣어 독자적인 양식을 수립한 것이다. 그의 선율은 무한히 아름답고 풍부하며 그의 형식은 명쾌하고 간결할뿐더러 화성은 밝고 섬세하다. 모차르트 의 음악이 일반적으로 명랑하고 쾌활하다는 것은 정평이지만 그 저류에 흐르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와 서정미는 때로는 절망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는 작곡가로서 또는 연주가로서 성공을 했고 사회적인 지위도 확고했지만 생활은 항시 곤란했고 끝내는 빈곤과 과로로 1791년 12월 5일, 35살이란 젊은 나이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모차르트'는 그 비극적인 짧은 생애에 600곡이 넘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