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다
박정희 사망 이후 각 군 수뇌부들은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구심점으로 국가의 보위와 안녕을 위해 일치단결하기로 결의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10.26 사건을 수사했다. 전두환은 10·26 사건 수사를 마치고 김재규의 단독 범행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는 계엄사령관 정승화가 김재규와 동조했다는 혐의를 내세워 12.12를 일으킨다. 이는, 정승화가 주요보직을 점거한 신군부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그들의 리더인 전두환을 동해안 경비사령관으로 발령하려 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12월 12일 오후, 전두환은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차규헌, 노태우, 황영시 등 규합한 동조세력을 장세동이 있던 경복궁 내 수도경비사령부 여하 제30경비단 단장실로 모이도록 한 후 시내 일원을 장악하기로 한 계획을 지시하도록 하고 최규하 대통령에게 가서 정승화 체포 재가를 제안하나 거절당한다. 그러나 그 시간에 허삼수 등은 수도경비사령부에 헌병대를 투입하여 정총장을 보안사로 강제 연행한다.
강제연행 보고를 받은 전두환은 다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 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한다. 그러나 이후 정총장 연행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이건영, 장태완, 정병주, 하소곤 등 자기 윗 상관들을 하극상을 감행하여 강제 연행한다.
이후, 하나회 회원이던 박희도 준장이 이끄는 1공수특전여단은 행주대교에 있던 30사단 병력을 무력화시킨 후 곧장 서울로 달려갔다. 얼마 후, 1공수특전여단은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공격, 국방부 50헌병대 경비병력으로 근무하던 정선엽 병장을 사살한 후 국군 수뇌부를 체포했다. 그리고 국방부 청사에서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찾은 후 최규하 대통령에게 끌고갔다.
최세창 준장이 지휘하던 3공수특전여단은 3여단의 영내에 있던 특전사령부 본부 건물을 완전히 장악하여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을 사살하고,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을 체포하였다. 노태우 소장은 자신의 지휘관이던 9사단 29연대를 중앙청 앞에 집결시켰다.
이후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에게는 세 차례 걸쳐 10시간 만인 13일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정총장 연행에대한 사후 재가가 이루어졌다. 12월 13일 오후, 노재현 국방부 장관이 담화문을 통해 10.26 사건 연류 혐의로 정승화 총장을 연행하고 이와 연관된 일부 장성 또한 구속됐으며, 정승화의 육군참모총장과 계엄사령관직에 이희성 육군 대장으로 임명되었음을 발표했다. 12.12 사건 이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사실상 이희성 육군참모총장을 직접 임명하고 6인 위원회를 통해 군부의 인사를 조정하여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권력 공백기에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
박정희 이후 다시 군부에 의해 국가가 유린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다시 발발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