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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Dec 16. 2024

[역사속의오늘사건] 755년 12월 16일

당나라 체제를 바꾼 안사의 난이 발발하다

무위의 화 이후 혼돈에 빠진 당나라를 다시 중흥 시킨 이는 현종이었다. 현종의 그러한 치세를 개원의 치라 불렀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 양귀비에 빠지게 된다. 그는 밤낮으로 양귀비와 놀고 먹으며 그녀가 말하는 것은 다 들어주었다. 백거이(白居易)가 〈장한가(長恨歌)〉에서 노래한 바와 같이 정사는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궁정에서 환락의 생활에 빠졌다.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재물은 말할 것도 없고 권력조차 넘겨주는 일을 서슴없이 행한 현종은 여산(驪山)의 온천에 있는 별궁을 수리하여 화청궁(華淸宮)이라 하고, 사시사철 그곳에서 지냈다. 현종은 정치를 고력사 등의 환관들에게 넘겼고, 이로 인해 양국충 등 외척과 환관들의 본격적인 환관-외척정치가 시작되었다. 

현종은 양귀비에게 빠져있었고 그로 인해 현종이 넘겨준 정치권력을 손에 넣은 재상 이임보는 양귀비를 조종하여 독재정치를 하였다. 현종은 명신 장구령의 충언은 무시하고 이임보만 절대적으로 신임하였는데 그로 인해 746년 과거 응시자를 전원 탈락시키는 사건을 내는데 그는 그보다 우수한 관리가 나오면 그의 정치가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임보가 죽고 난 후에 양귀비의 사촌인 양국충이 재상이 되는데 현종은 양국충뿐 아니라 양귀비의 언니들 세 명에게도 호화 저택을 하사하고, 그 친척들을 고관으로 임명하는 등 환관과 외척들의 전횡과 부패 속에서 제도와 관리들은 타락할 수밖에 없었으며, 권력 다툼은 결국 755년 안녹산에게 난을 일으킬 명분을 주게 된다. 


당나라는 이때 지배체제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측천무후 때 억압된 귀족 세력이 현종 때에 다시 집권했다. 구집권층과 지주, 상인층 출신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안사의 난으로 8년 간의 전란에 시달려 많은 농민들이 죽고, 나라의 정치 제도는 무너지게 되며 당 왕조의 지배력도 크게 떨어져 당은 쇠퇴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 전란으로 인해 전국의 인구는 293만 호로 13년 전의 890만 호에 비해 70%의 인구가 감소하게 된다. 753년 52,880,488명의 인구가 764년에는 16,900,000명으로 기록되었다. 


결국 당나라는 조세 제도는 양세법, 군사 제도는 모병제로 바뀌었다. 수많은 반란 속에서 절도사 세력이 성장하였고, 중앙정부에서는 환관과 외척들이 권력다툼을 벌이게 된다. 


세계 제국 당나라의 체제를 뒤집어버린 안사의 난의 시작인 안녹산이 반란을 한 날이 755년 12월 1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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