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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Dec 13. 2024

초원과 하늘 사이, 가을의 제주를 걷다


목장에서 나온 우유 한 잔을 맛보기 위해 걷던 길의 풍경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 머릿속에 그렸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제주 외곽 지역의 도로 풍경이 펼쳐졌다. 2차선 도로의 양옆에는 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차는 어쩌다 한 번씩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조금 걷다 보니 인도를 구분짓는 선 안쪽의 공간이 급격히 좁아지기 시작했다. 발을 붙이고 걸을 수 있을 정도이기는 했지만 이따금 뒤에서 오는 차가 내 옆을 지나갈 때 중앙선을 살짝 넘어 곡선을 그리며 간 것을 보면 내 어깨는 인도 구분선을 이미 넘어간 것 같았다.


날씨는 좋았다. 가을답게 하늘은 청명하고도 높았고,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많았다. 흔히 맑은 날을 두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라고 표현하고들 하지만, 나는 구름이 한 점이든 두 점이든 있어도 좋은 것 같다. 파란 배경에 더해지는 하얗고 부드러운 색채는 참 매력적이다. 하얀색이라는 색은 마치 빛깔이 없는 색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을 때 하얀색은 ‘없음’의 색이 아니라 ‘있음’의 색이 된다. 아득히 멀어 모양조차 짐작되지 않는 평면의 하늘에 매일 다르게 덧칠되는 입체적인 하얀색이 나는 좋다. 도로 양옆에는 수목과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인도를 걷던 도중, 촘촘히 심어져 있던 나무가 서로 조금 떨어져 있는 부분이 있었고 그 틈을 통해 건너편의 초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초원을 바라보니 그 위의 하늘은 내가 서 있는 아스팔트 도로 위의 하늘보다도 훨씬 부드러운 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구름들은 확실한 형체를 가지고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 빛과 그림자를 한몸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 구름의 모양이 왠지 소의 형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의 머리나 몸, 다리가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커다랗고 강건해 보이면서도 만지면 폭신함이 느껴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질량감이 소의 부피를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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