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중인 나의 변명 아닌 기록
나는 무능하다.
“나는 무능하다”
적어도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의문이 먼저 들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런 말을 하지?” 그리고 곧 상처가 밀려왔다. 그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늘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해온 건 어른들이었고, 나는 그 말에 한 번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으니까.
그 순간에도 나는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라고.
나는 그 사람들이 미운 게 아니었다. 그들은 무지에 비롯하여 내게 그런 말을 건넨 것일 테니까. 그들은 나를 깎아내리려 한 게 아니라, 단지 그들이 아는 방식으로만 사람을 판단했을 뿐이다. 더군다나 그 말이 틀렸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그런 말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웃고 있는 나 자신이 미웠다. 그 무기력한 내가 싫었다. 마치 무능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혐오한다.
그런 나를 나는 이해한다. 어쩔 수 없었다. 방어기제가 작동했던 거다. 대학교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사업 준비생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준비생이라는 것 자체가 아직 능력이 없다는 것이니까. 때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아직 도약하는 중이었다. 아직 날아오르기엔 준비가 덜 된 시기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꼈고 지금도 그렇다.
도태될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 말이 자극이 되었고, 나는 자격증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나는 자격증을 3년에 한 번씩 따는 이상한 징크스 같은 게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1학년, 그리고 졸업 후. 그게 나의 속도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 리듬이 깨졌다. 연속으로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사실 다른 공부에 밀려 자격증 공부를 소홀이 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뿐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자존과 회복, 인정받고 싶은 마음 같은 게 뒤섞인 내 결핍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오래 남는 이유는, 사실 그 말이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기 때문이다. 그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에 더 아픈 것이다.
사람들이 해준 말이 내게 ‘도움이 되기 위한 말’이었단 걸 나는 안다.
그러면서도 그걸 받아들이는 자존심과 상처 사이의 간극도 내가 감당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나의 객관적 사실에 있어 상처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항상 자신감 있게 나아가는 건 아니다. 매 순간 고민하고 흔들린다. ‘내가 진짜 멍청한 걸까? 내가 이렇게 배움이 느린 사람일까?’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시간은 내 편이고, 다음 시험도 내 앞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에 확실히 배우는 것이,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공부한다. 조금 더 알고 싶고,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 그래야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또다시 무능하다고 말할 때 그 말에 웃어 넘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한 문장을 건넬 수 있을 테니까.
왜냐하면, 결핍이 없다는 건 어쩌면 ‘배워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니까. 간절함이나 채우고 싶은 갈망이 있어야 더 빨리 배우고 빨리 달려가려고 하니 말이다.
‘변화’는 불편함이나 부족함에서 비롯되기에 내가 변화하기 위해선 그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핍이 없다고 해서 아예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도나 깊이에서는 확실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같은 것을 보더라도 ‘결핍’의 유무에 따라 다르게 비친다.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중요하다. 결핍이 있는 사람은 그걸 통해 자기 안에 있는 공백을 메울 실마리를 찾으려 하고, 그래서 더 예민하게 보고, 더 깊이 파고들고, 더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그건 단순한 ‘지식’이 아닌 ‘절실한 경험’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결핍이 없는 사람은 그게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표면만 건드리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빠져들 이유가 없으니까 깊이가 얕아지는 것이다.
얼마나 빠져드는가, 얼마나 노력하는가, 그건 ‘배움’의 양이 아니라 ‘배움의 태도’의 차이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그 결핍이 사회적이든, 내면적이든, 형태와 방향은 달라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다.
결핍은 나의 약점이 아니라, 성장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결핍은 나를 흔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