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되지 않는 말
그들은 왜 그럴까?
"그들은 왜 그럴까?"
이 질문은 어느 날 문득, 아주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며들었다. 아마도 '왜?'라는 물음은 내 천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물음의 근본은 다른 데 있었다.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혐오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 그것은 결국 나를 갉아먹는 일이었고,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이해를 선택했다.
나는 무조건 따뜻하거나 착한 사람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런 길을 택한 거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 용기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세상에 외치는 글이 아니라, 세상에 조용히 내미는 글을 쓰고 싶다. 마치, "이거… 읽어줄래요?" 하고 살며시 건네는 느낌으로.
내가 상처받았던 것 중엔 무시하는 시선들이 있다. 여자라서, 여자애라서, 젊은애가 왜 그러냐는, 그런 말들보다도 더 날카롭게 마음을 찌르는 건, 은연중에 비춰지는 그 시선들이었다. 아무 말 없이도, 그냥 존재만으로도 나는 깎여나갔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그런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그 칼날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그런 시선들이 더욱 깊게 박혔던 건, 아마 내가 시골에서 오래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골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그 '은연중의 무시'가 더 쉽게, 더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사실 나는 시골에서 아주 오래 살아왔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시골에서 살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중·고등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교 3년 동안은 ‘전주’에서 지냈다. 시골에 돌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도시는 나와 맞지 않았다. 화려하고 시끄러운 도심 속에서 나는 마치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껄끄러웠다. 쾌쾌한 매연, 눈부신 네온사인, 불쾌한 알코올 내음— 그 모든 것들이 나와 맞지 않았다. 편리한 건 분명했지만, 나는 조용하고 고요하고 차분한 시골이 더 잘 맞았다. 하지만, 시골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시골도 아직은 불편하기 일쑤였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쉽게 내뱉는 말들이 너무 무거웠다.
그런 현실 속에서 말은 나에게 너무 날카롭고, 너무 쉽게 사라지는 도구였다. 말은 내뱉는 순간 되돌릴 수 없지만 동시에 그 순간에 휘발된다. 사람들 기억 속에 어떻게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그 안에서 진심을 온전히 전하기란 참 어려웠다.
글은 달랐다. 글은 나를 진심에 더 가까이 데려가는 방식이었다. 내가 나를 듣는 방식이었다. 천천히, 정리하고, 눌러보고, 다시 꺼내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나조차도 몰랐던 내 마음의 결을 발견하곤 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에만 그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썼다. 미움 속에서도,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다. 보통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그 감정에 잠식돼서 글도, 말도, 삶도 점점 날카로워진다. 그렇기에 나는 미움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글을 썼다.
글을 쓰지 않던 과거의 나는, 왜 이렇게 미움받을까, 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없을까—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싫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글을 쓰며, 내가 당한 부당함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나는 나 자신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괜찮아. 무지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칼날을 휘두른 거야."
나는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무지에서 오는 공격이기에, 그 무지한 상대조차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 칼을, 조용히 내려놓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내 글이 닿았으면 하는 사람은, 나처럼 자기 자신을 미워했던 사람들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다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나는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해하려 애쓰고, 상처받으면서도 나를 다독이는 사람이고,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도, 미워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