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사용 설명서

햇빛이 드는 방에서 발견한 가능성의 풍경, 물건의 가득함 대신 공간의 가

by cantata

01.37042161.1.jpg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oi)_햇빛이 드는 방

햇빛이 드는 방에서 발견한 가능성의 풍경

함메르쇠이의 <햇빛이 드는 방>을 바라보고 있으면, 대부분 ‘비움’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비우고 싶다’라는 충동이 올라온다. 방안은 바닥의 회색과 문과 창틀의 흰색이 주를 이루며, 가구는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 공간에 유일한 존재감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다.

바닥에 스며든 햇빛은 조용히 사라져가는 먼지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그 순간 관람자인 나는 텅 비었지만 공허하지 않고, 무엇이든 담길 준비가 된 무한의 상태임을 깨닫는다.


그 순간 내 집을 둘러 보았다. 요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사서 쟁여 둔 그릇과 조리도구들, 언젠가는 쓰겠지 싶은 마음으로 모아둔 재료와 포장 용품들로 가득했다. 나의 생활 공간은 작은 창고가 되어 있었다. 버리고 싶지만 ‘혹시’를 생각하면 버릴 수 없고, 정리는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함메르쇠이의 비어 있는 방을 마주한 순간, 비어 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무한 가능성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깊게 파고들었다.


물건들로 빽빽이 채운 가득함보다, 여백이 주는 가득함이 훨씬 자유롭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느꼈다. 그림에 보이는 방은 이사하는 날 살던 집을 나오며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집의 풍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구를 모두 실어 보낸 뒤의 텅 빈 거실의 풍경, 그곳으로 한 줄기 햇빛이 들어오면 끝과 새로운 시작을 동시에 품는다.

물건 중심으로 채워진 삶을 내려놓고, 공간이 가진 가능성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책 한 권을 읽으면 도서관이 되고, 찻잔에 차를 담아 올려두면 카페가 되며, 식탁을 펼치면 맛있는 공간이 된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지만, 사실은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이것이 바로 함메르쇠이가 보여준 ‘텅 빔의 힘’이다.


물건의 가득함 대신 공간의 가득함을 선택하기

내가 물건에 집착하고 채우는 이유는 단순히 소유욕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불안함을 쌓아두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 혹은 부족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통해 물건을 채우며 달래려는 마음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물건들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공간을 더 힘겹게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함메르쇠이가 보여준 방은 이런 의문을 조용히 묻는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가득함은 무엇입니까?” 물건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 삶인가, 아니면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로 완성되는 삶인가. 그림 속 방을 바라보며 떠올린 나의 답은 후자였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삶을 넓게 만든다. ‘비우기’가 단순한 정리 과정이 아닌, 삶의 방향을 바꿔 줄 선택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소박한 음식이 생각나는 그림

그림을 보고 있자니 조리법도 단순하고, 단정하고 소박한 음식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한 풍경, 그림 속 빛처럼 조용하게 퍼지는 맛.


색이 강하지 않고, 냄새가 요란하지 않으며, 씹히는 소리마저 침착한 음식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한다. 그런 음식이야말로 여백의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해 주지 않을까 싶다.

— 조용한 방과 어울리는 함메르쇠이 플레이트

고소한 콩물에 띄운 꿀떡

재료: 콩물, 꿀떡, 소금

1. 시판용 콩물을 준비한다.

2. 냄비에 콩물을 붓고 따뜻하게 데운 후 소금으로 간한다.

3. 시판 꿀떡을 몇 알 띄워 준다.


구운 두부(3~4조각)

재료: 단단한 두부 1/3모, 지짐기름 약간, 간장 한 방울, 들기름 한 방울, 깨소금

1. 두부의 물기를 충분히 닦아낸후 약간의 소금을 뿌려준다.

2. 달군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른 후 약불에서 천천히 노릇하게 굽는다.

3. 간장과 들기름을 ‘한 방울’만 떨어뜨린 후 깨소금을 넣는다.


백김치 한 점

1. 김치를 씻어 준비한 흰빛에 가까운 배추김치 한두 조각만 곁들이면 맛의 결이 고요하게 이어진다. 자극 대신 깊이가 남는 조합.


연한 둥굴레차

1. 맛이 도드라지지 않는 구수한 둥굴레차를 연하고 따뜻하게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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